[글로벌 라운지] 미국의 새로운 투자 트렌드

왜 젊은 투자자들은 월가 대신 실리콘밸리로 몰려갈까? 할아버지 세대에 세워진 증권사에게도 여전히 희망은 있을까?
올해 32세인 보 루(Bo Lu)는 밀레니얼 세대(1980~1997년에 태어난 세대)로 기존 은행과 증권사에겐 경계의 인물이었다. 그는 이민 1세대로 일곱살 때 부모와 함께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 왔다. 그는 모니터와 마더보드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그의 첫 직장은 마이크로소프트였다. 그와 시애틀에 있는 엔지니어 친구들은 얼마 후 그동안 저축한 초기 자금을 투자할 목적으로 자산 전문가를 찾아 나섰다.
놀랍게도 그들은 단 한명의 자산 전문가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고객으로 맞으려 하지 않았다. 루는 “우린 당시에 정말 돈이 없었다. 하지만 돈을 모을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래서 루는 자신만의 해결 방안을 찾아냈다. 2010년 그는 퓨처어드바이저(FutureAdvisor)라는 온라인 투자 플랫폼을 공동 설립했다. 이 플랫폼은 알고리즘을 활용해 이용자의 돈을 다양한 ETF에 분산투자 하도록 조언을 해준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이용자의 위험 성향에 따라 자동적으로 자산을 재조정해 주식투자의 세계를 헤쳐 나가도록 돕는다. 한마디로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개인별로 투자를 설계하는 것이다. 루는 “우리 친구들처럼 외면 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이 회사를 설립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퓨처어드바이저는 5년 만에 7억달러의 운용 자금을 모집했다. 이 무료 서비스의 이용자들 중 4분의 1은 35세 미만이다. 한 거대 자산 운용사가 이 회사의 이 같은 장점에 주목했다. 지난해 8월 블랙록(BlackRock·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 운용사)이 퓨처어드바이저를 인수하면서, 단숨에 스마트폰 세대와의 거리를 좁혔다. 블랙록의 수석 매니징디렉터인 로버트 페어는 “우리는 소매와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할 만한 DNA가 충분치 않았다. (하지만) 블랙록에 적합한 인수 대상을 찾기만 한다면, 성장 계획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수는 밀레니얼 세대의 돈과 충성을 놓고 벌이는 전투의 분수령이었다. 이 세대는 대학 졸업 후 성인이 되면서 좁아진 취업문과 상당한 개인 채무에 직면한다. 게다가 이들이 보유한 부의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 펀드 업계의 글로벌 연합체 ICI에 따르면, 미국 전체 가구의 뮤추얼 펀드 자산 규모는 15조9000억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이 가운데 5%만이 밀레니얼 세대 몫이다. 많은 재무 전문가들이 그들을 후순위로 생각하는 건 그냥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리서치 업체 코퍼레이트 인사이트(Corporate Insight)에 따르면, 전체 재무 상담사 가운데 30%만이 40세 미만 고객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자산관리 업계가 고액 연봉자와 부유한 은퇴자의 순자산 운용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에, 새내기 젊은 투자자들의 은행 계좌 관리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들은 밀레니얼 세대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이미 미국 전체 인구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향후 소득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부의 창출 잠재력 또한 크다. 2020년 무렵이면 밀레니얼 세대는 7조달러의 유동 자산을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블랙록의 로버트 페어는 “현재 인구비중의 중심이 베이비부머에서 밀레니얼로 넘어가는 엄청난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며 “이는 치열한 시장 점유율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전쟁은 대부분 ‘로보 어드바이저’라 불리는 앱과 웹사이트가 결합된 기술로 실현되고 있다. 웰스프런트(Wealthfront), 베터먼트(Betterment) 그리고 루의 퓨처어드바이저 같은 신생기업들이 젊은 투자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모든 업체의 특징은 비슷한 편이다. 수수료가 낮고, 최소 계좌 예치금 조건이 낮거나 없으며, 투자 포트폴리오 자료를 휴대폰으로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자산 운용사들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티디 에머리트레이드(TD Ameritrade)의 트레이더 그룹 매니징디렉터인 니콜 셰러드는 “이번 전쟁에서 선두를 유지하지 못하면, 우리 업계는 큰 변화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회사처럼 전설적인 증권사들이 앞다퉈 자체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이들은 밀레니얼 세대가 결국 다양한 서비스를 원하고, 그에 부합하는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 확신한다.
셰러드는 2015년 8월24일에 일어난 ‘사건’을 인용했다. 당시 다우지수는 2008년 이후 가장 큰 조정을 겪으며 하루 거래일 동안 1000포인트나 폭락했다. 그날 인덱스 펀드의 강자 뱅가드(Vanguard)는 상담 문의가 9%나 증가하는 것을 경험했다. 셰러드는 “투자자들은 여전히 생명줄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자산 전문가들과 직접 상담하길 원한다”고 지적했다.
과연 첨단 기술이 전통적인 대면 상담을 이길 수 있을까? 한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들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회사는 가차 없이 버린다. 링크트인(LinkedIn)과 시장 조사업체 입소스(Ipsos)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 10명 가운데 7명 정도는 비금융 회사(애플이나 구글)가 제공하는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써볼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X세대(1970년대생)들은 47%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실험정신이 강한 사람들은 상담 책상에 앉아 있는 인간만큼이나 알고리즘이 도움이 되는 세상에도 적응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전통적인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피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이다. 밀레니얼들이 모바일 환경에서 벗어나 대면 상담을 원할 때, 풍부한 경험을 가진 기존 증권사들이 그들 곁을 지킬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세대 간 갈등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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