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차량에 뿔난 차주들…
‘원인규명·조기진화’가 상책

지난 1월2일 BMW 2013년식 SUV 차량인 ‘X6’모델에서 올해 첫 화재가 발생할 때만 해도 BMW코리아에 어떤 후폭풍이 몰아칠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해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모든 자동차 화재 건수가 자동차 결함이든, 방화 범죄든, 추돌사고에 의한 것이든 5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아마 BMW코리아의 경영진들도 단순하게 5000건의 화재 건수 중에 자신들은 아주 작은 1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X6 차량의 화재는 BMW 화재 사태의 첫번째 발단이 됐다.

X6 화재 발생 이후 지금까지 BMW의 각종 모델에서 차량화재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BMW 화재 사태’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BMW 화재 사건만도 40건이 넘어서고 있는데, BMW코리아가 뒤늦게 해당 모델들에 대해 대대적인 안전진단을 선언했지만 사태가 사태인 만큼 정부도 직접 나서 BMW 리콜 대상 가운데 서비스센터에서 안전진단을 이행하지 않은 차량에 대해 지난 16일부터 운행정지 명령을 발동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번 BMW 리콜 규모는 42개 디젤 차종 10만6317대로 수입차 업계에서는 사상 초유의 리콜이다. 문제는 안전진단을 완료한 차량은 16일 현재 9만대가 아직 안되고 안전진단을 마치지 못한 차량은 운전자에게는 안전진단을 위한 운행 이외에는 운행정지 대상 통보가 발송된다고 하니, 앞으로 소비자들의 반발과 BMW 화재 수습 이슈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BMW는 수입차 시장에 있어서 고급차의 대명사로 오랜 기간 군림하며, 최대 경쟁자인 벤츠와 함께 줄곧 선두자리에서 달렸다. BMW와 벤츠가 전체 수입차 시장의 55% 넘는 점유율을 가지고 있고 그 가운데서도 BMW는 수입차의 대명사로 성장해 왔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BMW의 명성에 금이 가고 일부 네티즌들은 BMW를 “비엠더 ‘불’ 유”라 조롱하며 단순한 자동차 결함에 대한 지적을 넘어서 브랜드 이미지 하락까지 치닫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효준 회장과 520d의 위기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은 지난 6일 ‘BMW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고 지난 13일에는 국회에 직접 가서 국회의원과 정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BMW 화재에 대해 또 한번 더 고개 숙여 사과하고 그 원인과 각종 의혹과 대책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했다.

정부가 자동차 화재에 따라 특정 자동차 회사의 경영진을 호출해서 이렇게 긴급 간담회를 개최한 것도 한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김효준 회장은 한국 수입차 브랜드 업계에 있어 독보적인 행보로 BMW를 최고의 자리에 올렸던 수장이었으며, 수입차의 위상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상징적인 인물이었기에 그의 국회 간담회는 관련 업계에도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일단 김 회장은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이 디젤 차량의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쿨러 누수현상으로 인한 냉각수에 결함이라고 다시 한번 입장을 밝히고, 최대한 빠른 시일에 리콜을 통한 안전진단 및 부품교체를 약속했다.

이번 EGR 결함으로 유독 가장 많은 화재가 발생한 모델이 있었으니 바로 ‘BMW 520d’ 시리즈다. 520d 화재를 겪은 차주들이 모여 BMW를 상대로 형사소송을 내기도 했다. 참 아이러니 한 것이 지금의 BMW의 명성을 바로 이 520d가 구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일등공신이자 간판모델이란 것이다. 마치 현대자동차의 소나타 모델처럼 말이다. 7월 BMW 520d의 신규 등록대수는 523대로 6월 963대보다 45%나 감소했는데, 그 원인은 잇따른 화재에 따른 판매량 감소로 예측이 된다.

BMW는 520d의 인기를 업고 한국 시장에서 독보적인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520d가 왜 잘 팔렸는지를 아는 것이 BMW가 어떻게 한국 수입차 시장에 안착하고 성공했는지 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520d의 연비는 리터 당 14km다. 한국GM의 경차 스파크를 떠오르게 할만큼 연비가 우수하다. 520d는 길이 5미터에 무게 1.7톤에 달한다. 2.0리터 디젤 엔진에 8단 자동 변속기까지 갖춘 성능 위주 프리미엄 준중형 차다. 그런데도 고연비를 자랑한다. 승차감도 만족스럽다.

2011년 상반기에 520d가 한국 시장에 데뷔하기 전까지만 해도 BMW의 주무기는 가솔린 엔진을 단 528i였다. 520d는 디젤 차량은 승차감에선 가솔린 차만 못하다는 인식의 벽을 넘어섰다. 520d 이후 디젤은 더 이상 SUV나 트럭용 엔진이 아니었다.

520d가 연비와 승차감에 더불어 한가지 더 갖추고 있는 장점은 바로 BMW라는 브랜드 가치다. 어느 나라에서나 BMW는 사회적 지위를 뜻한다.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BMW를 탄다는 만족감이야말로 어쩌면 BMW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520d는 브랜드 만족감과 경제성과 고성능이라는 3박자를 갖췄다. 그런데 지금 그 성공신화를 타고 고속주행을 하던 김효준 회장과 BMW코리아가 큰 위기에 정면충돌을 한 것이다.

80배 판매 성장 속 승승장구 했지만
BMW코리아는 한국의 수입차 역사에서 중요한 행적을 남겼다. 1995년 국내 진출 후 23년간 국내 수입차시장을 주도하며 80배 이상의 판매성장을 기록했는데, 지금까지 누적 판매 대수만 40만대가 넘는다. 현재 매년 6만대가 넘는 자동차를 팔고 있는 BMW코리아는 수입차 업계 ‘최장수 CEO’로 통하는 김효준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그는 원래 지난 2016년 임기만료를 앞두고 CEO 생활을 청산하려고 했었다. 직접 CEO 후계자를 인선하는 작업도 진행했으나 BMW 본사 측에서 그에 대한 신뢰가 두텁고 한국시장을 더 맡아달라는 뜻을 받아 다시 CEO를 수행한 것이다. 이번에는 회장이란 직책으로 승진을 하면서 말이다. 18년째 BMW코리아를 이끈 최장수 CEO가 탄생한 배경이다.

김효준 회장에게는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도 있었다. 지난 1995년 BMW코리아 출범과 함께 한 김 회장은 특히나 1997년 IMF 당시 독일 본사에서 한국 철수를 계획하는 등 상황이 악화됐으나 당시 전무였던 그가 적극적으로 한국시장을 지켜야한다는 내용으로 설득하면서 철수를 백지화시켰다. 오히려 그때 본사에서 2000만달러의 지원자금을 투입하는 걸 이끌어내면서 2000년대부터 한국의 수입차 시장을 장악하는 원동력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것이 발판이 돼 그뒤 김효준 회장에 대한 독일 본사의 신임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는데, 그는 BMW그룹 최초의 현지인 사장으로 선임됐으며, 2003년 아시아인 최초의 본사 임원과 2013년 그룹 수석부사장 등 본사 등기임원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후에도 본사의 두터운 신임 덕분에 BMW는 국내 수입차 중 가장 적극적인 국내 투자를 이룰 수 있었다. 아시아 최초인 영종도 드라이빙센터 유치, BMW코리아 미래재단 설립, 경기 안성 부품물류센터(RDC) 건립 등은 수입차 업체로서 국내 재투자의 본보기를 남겼다. 그는 2020년까지 BMW코리아 대표직을 유지하게 되는데, 이번 화재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남은 CEO 임기의 평가가 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위기를 포착했어도 대응 못해
자동차 부품인 EGR에 따른 화재가 원인이라고 BMW코리아는 밝히고 있지만 이것은 단순 기계결함이 아닌 사람에 의한 인재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BMW코리아가 이미 2016년부터 이러한 EGR 쿨러에서 냉각수가 누수돼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를 독일 본사에 보고했던 사실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부 시스템이야 외부에서는 잘 알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BMW 본사에서 한국시장에 들어온 ‘빨간 신호등’을 무시한 것일 수도 있고, 한국법인에서 이를 강력하게 본사에 보고하지 못해 결함을 사전에 막지 못했을 수도 있다. 김효준 회장은 20년 가까이 승승장구 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을 신장시켰지만 이번 사태의 원인과 그 과정에 대해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못하면 가장 얻기 힘든 소비자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원래 자동차 회사처럼 방대한 조직에서는 수많은 국가, 수많은 임원들의 업무보고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마련이다. 이럴 때 빨간색 신호등을 인지한 결함이나, 추후에 위험요소가 커질 부분은 사전에 대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BMW 화재 사태는 20년 가까이 수입차 시장을 일군 명장 CEO가 2016년에 보고된 한 결함 보고서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남은 과제는 BMW코리아의 조기진화와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

- 글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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