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포커스] ‘휠라 전성시대’이끈 두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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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포커스] ‘휠라 전성시대’이끈 두 주역
  • 중소기업뉴스
  • 호수 2188
  • 승인 2018.10.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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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윤수 회장-윤근창 사장 ‘역발상’효과로 세계시장 안착
2代 걸쳐 대박 터뜨린 ‘父子매직’

지난 9월23일은 휠라(FILA) 그룹에 있어 아주 중차대한 순간을 맞는 날이었다. 흔히 세계 패션의 본고장을 이탈리아 밀라노라고 하는데, 이날 그곳에서 열린 ‘2019 SS 밀란 패션위크’에서 휠라가 첫 패션쇼를 화려하게 마친 것이다. 휠라는 패션 브랜드라기보다는 스포츠 전문 브랜드로 분류되는데, 그럼에도 세계 4대 패션쇼 중 하나이자 세계 최대 패션 플랫폼인 밀란 패션위크에서 휠라가 스포츠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단독 패션쇼를 열었던 것이다.
이날 단독 패션쇼를 치른 윤윤수 휠라그룹 회장은 무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난 1911년 이곳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휠라가 오늘 또 다른 시작을 알립니다.”

휠라의 고향인 이탈리아에서, 그것도 최대 패션쇼에서 한국의 경영자가 다시 휠라의 새로운 미래 선언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휠라 브랜드는 휠라코리아 소유이고, 윤윤수 회장이 바로 휠라코리아의 오너다. 휠라코리아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릴 전망인데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741% 늘어난 2175억원이었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에만 이에 육박하는 2006억원을 기록했고 업계는 올해 영업이익을 3200억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이 2조5303억원이었다.

이쯤해서 여러 가지 물음표가 달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휠라는 왜 이탈리아 정통 브랜드에서 한국기업이 되었을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휠라 브랜드는 한물간 중장년 아저씨들의 브랜드로 인식되면서 휘청였는데, 어떻게 다시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고 글로벌 브랜드로의 위상을 다시 되찾았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휠라의 100년이 넘는 브랜드 스토리와 윤윤수 회장의 경영 능력을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자존심, 휠라의 100년
일단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휠라 브랜드의 영광스러운 행적을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앞서 설명한대로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휠라는 한때 ‘이탈리아의 자존심’이라고 불릴 만큼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하는데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등 글로벌 유명 스포츠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글로벌 세계 4위 스포츠 브랜드로 이름을 날린다.

탄생 초창기부터 수십년간의 휠라는 니트웨어와 언더웨어에 집중하는 소규모 생산체제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서 스포츠웨어로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이 무렵에 이탈리아의 대표 자동차로 유명한 피아트 그룹이 휠라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시장으로의 날개를 달게 된다. 자동차 기업이 인수를 할 정도로 휠라의 잠재력이 무궁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1980년대에 휠라는 미국시장을 공략하는데, 의류에 이어 신발, 스포츠화 분야에 뛰어든 것이다. 스포츠 강대국인 미국은 1990년을 지나면서 NBA 농구 스타들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절정에 달하기 시작한다.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들이 ‘스타 마케팅’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란 것이다.

프로선수들이 신는 하이탑 농구화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콘셉이 되는데, 휠라도 NBA스타들의 시그니처 제품을 제작하면서 대박을 터트린다. 미국 NBA를 통해 휠라는 세계적으로 ‘점프’하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휠라 브랜드의 전성기는 2000년대 초반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전 세계 50개국에 무려 9000개가 넘는 매장이 열리게 된다.

그렇다면, 윤윤수 회장은 언제 휠라와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일까? 윤 회장은 휠라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지난 1991년 휠라 브랜드를 한국에 처음으로 라이센스 형태로 들여온 인물이다. 휠라는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윤 회장은 연봉 22억원을 받는 외국계 회사 스타 CEO로 발돋움하게 된다.

“꼬리가 몸통을 삼키다”
윤윤수 회장이 휠라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극하게 된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휠라 브랜드가 전 세계적으로 좌초될 정도로 큰 위기를 겪을 때였다. 휠라가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그 진원지는 휠라의 본고장 유럽에서부터였다. 유럽시장에서 휠라가 크게 부진을 겪게 되면서 본사 경영이 악화가 되고 적자가 쌓이게 되면서 경영사태가 불안정해졌다. 휠라의 지주회사인 HDP가 결국 휠라의 매각을 결정한다.

휠라가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올라왔지만, 어느 기업도 선뜻 사겠다는 곳이 없었다. 당시에 세계적으로 패션과 스포츠 브랜드가 포화상태에 접어들어 일대 구조조정 비슷한 역풍이 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윤 회장이 현지법인 지사장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휠라의 성장 가능성을 자신하고 2003년 6월 본사를 전격 사들이는 도전을 하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100년 전통의 브랜드가 한국 지사장에게 브랜드를 넘기는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당시 휠라 본사에서 윤 회장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윤 회장이 한국시장에서 휠라를 키워내는 것을 두고 “휠라가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지만, 휠라를 꽃피운 곳은 한국”이라고 칭찬할 정도로 무한 신임을 받고 있었던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윤 회장의 인수 제안에 선뜻 휠라 본사가 손을 맞잡은 것이다. 2007년 휠라코리아는 글로벌 휠라 본사 인수 작업을 마무리 한다. 이걸 두고 한국경제에서는 “꼬리가 몸통을 삼킨 성공 사례”라고 치켜세워 평가를 한다.

휠라를 완전하게 품에 안아 버린 윤 회장은 ‘제2의 창업’으로 휠라를 새롭게 재정비하게 되는데, 이전보다 훨씬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우기 시작한다. 일단 이전에는 휠라가 고급화 전략 차원에서 ‘플래그십 스토어’ 위주로 판매를 해왔다. 그걸 윤 회장은 대중 마케팅 전략으로 전환해 도매 위주로 팔도록 유통방식을 혁신한다. ABC마트, 슈마커 같은 대형 신발 멀티숍으로 도매 유통을 늘려 재고 부담을 줄인 것이 대표적이다. 여러 유통망을 통해 휠라의 제품을 품에 안을 수 있도록 판매망을 다변화한 것이다.

이밖에도 최대 소비시장인 중국 사업에서는 현지 1위 업체인 안타스포츠와 합작투자법인인 ‘휠라차이나’를 세운 것이 성장을 위한 결정적인 판단이 됐다. 2009년 중국 현지에 글로벌 신발 소싱센터를 건립해 신발 샘플을 자체 개발하면서 생산 단가를 크게 낮추게 된다. 이후 윤 회장은 M&A에도 열정을 보이며 2011년에 타이틀리스트, 풋조이 등 브랜드를 보유한 전 세계 골프용품 1위 기업 ‘아쿠쉬네트’를 전격 인수한다. 성장을 위한 중장기적인 투자도 휠라의 상승세에 한몫하게 된다.

윤윤수 회장이 2007년 휠라 본사를 인수하면서 함께 추진한 것이 하나 있다. 윤 회장의 아들인 윤근창 사장을 2007년 휠라USA에 입사시킨 것이다. 윤근창 사장은 CFO(최고재무책임자) 등을 역임하며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 내 사업을 흑자로 돌려놨다. 그는 휠라USA를 3년 만에 턴어라운드 시키고 2015년 매출 규모를 인수 전 대비 10배나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휠라를 젊은 브랜드로 탈바꿈
윤윤수, 윤근창으로 이어지는 적극적인 오너 1~2세 경영은 휠라에 큰 도움이 됐다. 특히나 패션 업계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젊은 소비층을 사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올해 대표이사로 승진한 윤근창 사장은 휠라의 기존 이미지인 아저씨 브랜드를 탈피하고 10~30대까지 젊고 밝은 이미지로 전환시킨 주인공이다. 

2007년 휠라 인수 이후 윤윤수 회장이 가장 고민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브랜드 타깃층의 고령화였다. 원래가 브랜드라는 것이 인기가 시들해지면 질수록 노후화된 이미지로 중장년층 브랜드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시 10대가 찾는 휠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브랜드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됐다.
그래서 지난 2016년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시스템을 구축해서 휠라의 이른 바 ‘리브랜딩’을 주도한 것이 윤근창 사장이었다. 특히나 윤 사장은 신발 카테고리의 경쟁력 강화에 나섰는데, 휠라의 부활을 가져온 신발로 ‘코트디럭스 슈즈’도 그의 주도로 탄생했다.

이 신발은 지난해 9월에 선보여 출시 3개월 만에 100만족 판매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신발업계에서는 1만족 이상만 팔아도 대박이라고 하는데, 3개월만에 100만족은 ‘초초대박’인 것이다. 이제 휠라는 10~20대가 주요 소비층이다. 브랜드가 젊어지면 성장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국내에서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만들면서 휠라는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노리고 있다. 미국 및 유럽 시장에서도 본격적으로 브랜드 재평가가 진행되며 성과가 드러나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로서 휠라의 전통과 역사는 럭셔리 브랜드 못지않다. 그 역사적 자산이 새롭게 분출된 것이 지난달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위크에 참가한 것이라고 봐도 된다. 100년이 넘는 휠라의 역사가 오늘의 휠라를 만들었고, 윤윤수와 윤근창이라는 탁월한 한국의 경영자들이 휠라의 다음 100년을 설계하고 있다.

- 김규민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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