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보윤(종합법률사무소 공정 대표 변호사)

우리나라 경제구조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업종별 대기업군을 중심으로 하도급, 재하도급의 형태를 띤 선단식 모습을 하고 있다.
하도급거래와 관련해 아무리 좋은 정책, 제도가 있어도 대금지급에 관한 분쟁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이는 결국 그 책임소재에 따라 결론이 난다.

하도급거래와 관련한 분쟁은 대부분 설계서·시방서 등 도면의 변경지시 여부, 현장에서의 작업지시 유무, 재료의 추가투입 또는 투입량 여부, 납기지연 책임 등으로 모두 대금 증액과 관계가 있다.

이러한 분쟁 발생시, 하도급업자가 그 사실의 존재에 대해 입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열악한 지위에 있는 하도급업자로서는 원사업자가 제공하지도 않는 도면변경, 작업지시 등과 관련한 자료를 확보할 능력도 없고 거부할 수는 더더구나 없으므로 일단은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후일 그로 인해 증액된 대금을 청구하면 원사업자로부터 거부당하기 십상이고, 이를 입증할 자료도 변변치 못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공정위의 ‘2017년 하도급거래공정화 종합대책’을 보면 최근 5년간 하도급법 위반업체에 대해 공정위의 제재는 93.4%가 경고나 단순 시정명령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제재한 수치가 그렇다는 것이고 하도급업자가 신고한 사건의 상당수는 입증자료의 미제출 또는 부실로 무혐의 등으로 처리되는 것을 감안해 볼 때 하도급거래질서의 공정화를 기함에 있어 공정위가 얼마나 무력한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공정위가 입증자료의 미비 또는 부족으로 인해 조치에 한계를 느낀다면, 방법은 두가지라고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자료를 수집할 능력이 있는 기관에게 그 권한을 넘기거나 아니면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공정위 내부에서도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바람직하기로는 사적거래인 하도급거래를 사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즉, 입증책임의 전환을 도입하는 것이다. 하도급분쟁시 원도급업자가 하도급업자의 주장사실이 부당하다는 점을 입증하게 하는 것이다.

자금력과 인력이 상대적으로 우월하고 조직체계를 갖추고 시스템에 의해 업무를 수행하는 원사업자가 분쟁사항에 관해 입증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입증책임의 전환을 언급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반대론이 있다. 민사분쟁에 있어서는 이를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 민사소송의 대원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은 의료, 환경 등 전문분야로서 사회공익적 측면에서 주장자에게만 입증책임을 맡겨놓을 경우 피해구제가 원활치 않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큰 비용을 수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거나 공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일 경우, 입법이나 판결로서 입증책임을 전환시키는 경우가 있고 서서히 그 범위도 넓어져가는 경향이 있다.

제조업 및 건설분야도 제작 등과 관련해 입증을 하려면 전문적이어야 하고 하도급업자의 열악한 지위와 국가경제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볼 때 하도급 관련 법규에서도 입증책임의 전환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민사상 전통적인 입증책임론을 변경 내지 완화시키는 방안은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전문성과 공익적 필요가 적은 것도 아니라고 보이므로 정치권과 정부 관계 기관에서는 적극적으로 그 도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황보윤(종합법률사무소 공정 대표 변호사)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