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고자 상’에는 왜 제나라 선왕이 지혜롭지 못한지, 그 이유에 대해 맹자가 고찰하는 고사가 나온다. 

“제 선왕이 지혜롭지 못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록 천하에 가장 잘 자라는 생물이라도 하루 동안만 빛을 쬐여주고 열흘 동안 춥게 만들면 자랄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군왕을 아주 드물게 뵙는데, 내가 물러나오면 군왕을 차갑게 만드는 자들이 있으니 군왕이 설사 선한 마음의 싹이 있어도 내가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맹자는 자신처럼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자주 대하지 못하고, 불의한 신하들이 주위에 항상 진을 치고 있기에 왕이 나쁜 영향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사람은 자신이 자주 접하고 가까이 하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맹자는 그 예로 바둑의 고수 혁추의 이야기를 든다.

“바둑이라는 기예는 작은 기예이기는 하지만, 정신을 집중하고 뜻을 다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不專心致志 則不得也). 혁추는 온 나라를 통틀어 바둑을 가장 잘 두는 사람이다. 혁추가 두 제자를 기르는데 그 중 한사람은 정신을 집중하고 뜻을 다해 혁추의 가르침을 듣는다(專心致志 惟奕秋之爲聽). 또 다른 한사람은 듣기는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에 몰두한다. 기러기가 날아오면 활로 그것을 잡을 생각만 하는 것이다. 결국 두사람이 함께 배우기는 하지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  차이는 지혜의 차이이겠는가? 아니다.”

이 고사의 핵심은 ‘전심치지’와 ‘부전심치지’이다. 정신을 집중하고 뜻을 다하면 어떤 일이든지 이룰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맹자가 이 고사에서 왕과 바둑의 예를 든 것은 이유가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큰일뿐만이 아니라 바둑과 같은 작은 기예에서도 마음을 쏟아야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는 물론 다른 모든 일도 마찬가지다. 또한 지혜의 있고 없고가 아니라 얼마나 최선을 다해 전심전력을 다하는가가 일의 성과와 사람의 성장을 좌우한다.

 <대학> ‘전7장’에도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어가 있다. “마음이 없으면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흔히 집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많이 쓰이는 이 말의 본래의 뜻은, 수신(修身)을 할 때 오직 마음을 바르게 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분노나 두려움, 즐거움, 근심 등 감정에 마음을 뺏기면 수신이 되지 않는다. 

바둑을 배우며 새 잡을 궁리만 했던 혁추의 제자처럼 다른 것에 집중한다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고 이룰 수 없게 된다. 다산 정약용은 <대학강의(大學講義)>에서 이렇게 풀이했다. 홍문관 제학 서유린(徐有隣)과의 대화에서 했던 말이다.

“사슴을 좇는 사람은 태산을 보지 못한다. 마음이 사슴에 있기 때문에 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좌선을 하는 사람은 우레 소리를 듣지 못한다. 마음이 화두에 있기에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공자가 ‘소(韶)’음악을 듣고 고기 맛을 몰랐던 것은 마음이 음악에 있었기에 그 맛을 몰랐던 것이다.”

위의 고사들에서 아우르는 것은 바로 마음을 어디에 둘 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바둑을 배우는데 둘지 아니면 새 사냥에 둘지, 본질에 둘지 아니면 말단에 둘 것인지, 모두 우리의 선택이다.

 

- 조윤제《천년의 내공》 저자

- 일러스트레이션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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