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이병헌이 녹음한‘밀리의 서재’구독 붐

‘잠재독자’ 잡을 신성장엔진 탑재 주목

한국에서 출판산업의 트렌드는 아날로그 방식의 종이책 중심으로 가다가, 몇년 전부터 태블릿 PC 등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전자책이 좀 대두됐다. 

요즘에는 책을 읽어주는 오디오북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오디오북은 책을 직접 읽어서 들려주는 방식으로 책을 읽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나, 귀로 들으며 다른 일을 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큰 인기를 끌 걸로 생각했지만, 막상 시장의 반응은 크지 않았다. 

여기서 국내 출판산업의 매출액 비중을 따져보면 전체 시장은 20조7000억원 크기인데, 전자출판 제작과 서비스는 5000억원 수준으로 약 2.4%를 차지한다고 한다. 전자책 시장이 이렇게 작기 때문에 사실 오디오북 시장의 확장성이나 폭발성은 단숨에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추정되는 오디오북 시장 규모는 100억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종이책 시장의 충성도 높은 소비자가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세계 오디오북 시장은 상반된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2013년 20억달러였던 시장이 2016년 35억달러로 성장했고 최근에는 50억달러까지 확장됐다고 추정하고 있다. 매년 20% 이상 성장을 하고 있는 매우 유망되는 신시장인 것이다. 

성장세가 가장 빠르다고 하는 미국의 오디오북 시장만 2017년에 25억달러를 기록했고, 2010년과 비교하면 시장은 2.5배 성장한 걸로 나타났다. 매년 5월이면 오디오북 전문 시상식인 ‘Audio Awards’가 열리기도 하는 등 붐이 일고 있다.

 

출판산업에 떠오른 화두 ‘오디오북’

한국도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오디오북 시장이 발전해 왔었는데, 생각보다 반향이 적었다. 그 이유로는 출판사가 오디오북 제작에 들어가는 값비싼 제작비가 부담이 됐던 것인데, 이것이 오디오북 제작이 기피되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출판사가 오디오북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소극적이니 일부 제작된 콘텐츠만으로 사용자를 끌어모으기도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됐던 것이다. 

또 출판사 입장에서는 전통적으로 종이책 중심의 비즈니스와 신규사업을 구상하기 때문에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같은 새로운 유형의 사업모델이 낯설면서도 자칫 종이책 시장을 갉아먹지 않을까 우려했었다.

그런데, 요즘 오디오북이 출판산업에 화두가 되고 있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공격적인 콘텐츠 제작과 마케팅을 하고 있는 기업이 나타났다. 독서 플랫폼 스타트업인 ‘밀리(millie)’다. 2016년 7월 설립된 이 회사는 모두가 출판산업을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할 때 오디오북 시장은 새로운 블루오션이라고 판단했다. 월정액 서비스를 도입한 ‘밀리의 서재’는 3만권을 무한정 볼 수 있는 서비스다. 특히나 이병헌, 변요한, 구혜선 등 쟁쟁한 톱스타들이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도 있어 단숨에 대중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대표적인 오디오북 콘텐츠 중 이병헌 배우가 녹음해서 읽어준 ‘사피엔스’라는 수백페이지가 넘는 인문서적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일주일만에 1만5000명이 구독했다고 한다. 2017년 기준으로 성인이 연간 읽는 책은 8권 정도다. 한달에 한권도 안 읽는 거다. 성인 중 40%는 책을 아예 읽지도 않는 시장이 한국의 출판 소비시장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1권의 책을 오디오북 서비스로 일주일만에 1만5000명이 구독했다는 건 대단한 발견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독서와 친하지 않던 사람들도 스마트폰 앱이라는 자연스러운 설치로 1년 사이 70만명이 이용자로 등록을 했다. 어떻게 보면, 일반 출판산업에서 책의 저자가 자신의 책을 읽어주는 낭독회라는 문화가 있기는 한데, 이걸 온라인으로 하는 게 오디오북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거나, 듣는 거나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동일 콘텐츠를 매력적인 음성, 친근한 사람의 음성으로 듣는다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라운 것이다.

 

책을 요약해주고, 배우가 읽어주고

책을 안 읽게 되는 것은 앞서 밝혔듯이 수백페이지의 분량이 부담이 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책이 독자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를 읽어내야 하는 노력을 해야 하기에 그렇다. 이와 함께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책을 읽을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기에 책의 메시지를 파악하는 데에 시간을 쏟아내기가 힘들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책 말고도 소비해야 할 콘텐츠가 주변에 널려 있는데, TV, 유튜브, SNS 등 하루 24시간 콘텐츠 범람 속에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여기서 밀리의 서재는 그 시간을 절약해 준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작해 제공하는데, 아무리 긴 분량의 책이라고 해도 전문가가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30분 녹음으로 정리를 해준다. 책의 인사이트를 요약해서 이야기 해주는 거다. 오디오북을 읽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일을 하면서 귀로 책을 듣는 것이다. 멀티태스킹 능력이 탁월한 현대인의 일상생활에서 오디오북이라는 서비스가 파고들 틈새시장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치 밀리의 서재가 국내 최초의 오디오북 시장을 열고 주도하는 서비스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또 사실이 아니다. 이전에도 여러 서비스에서 오디오북을 제공했었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밀리의 서재와 기존 오디오북 서비스의 차이는 뭘까? 바로 목소리다. 기존에는 기계음, 흔히 말하는 자동응답기의 안내 목소리로 책을 읽어줬다. 내용은 파악이 돼도 독자가 집중을 하거나,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밀리의 서재는 사람이 직접 읽어주는, 그것도 인지도가 높은 배우나, 성우가 읽어주는 콘텐츠가 많다. 좋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캐스팅해서 녹음하는 것에 투자를 했냐 안 했느냐가 바로 이 서비스가 왜 주목을 받게 됐는지를 결정 짓는 아주 중요한 지점이 되는 것이다. 

최근에 밀리의 서재는 HB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65억원의 투자를 받으면서 이 자금을 가지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병헌, 변요한 배우가 책을 읽어주게 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네이버도 뛰어든 블루오션

밀리의 서재를 창업한 사람은 서영택 대표로 2012년에서 2016년까지 웅진씽크빅 대표를 지냈다. 그가 재임하던 시기에 웅진씽크빅은 법정관리에 있었는데, 그걸 정상화시키고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등 경영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한다. 실은 이 당시 웅진씽크빅에서 출시한 ‘웅진북클럽’이 지금의 밀리의 서재 전신이라고 보면 되는데, 웅진북클럽을 통해서 태블릿PC를 통해 월정액을 낸 독자에게 아동용 도서 콘텐츠를 제공했다. 

이때 쌓은 노하우를 가지고 서영택 대표는 수많은 출판사들을 설득해서 밀리의 서재에 콘텐츠를 제공하면 수많은 독자들이 월 정액 서비스를 이용하게 만들겠다고 호언한 것이다. 그러니까 각 출판사들의 온라인 서재 시스템을 통합하고 거기에 오디오북이라는 차별화된 서비스까지 제공한 것이다.

현재 2030세대 사이에서는 다시 책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로 밀리의 서재를 꼽는다고 한다. 그것은 모바일 기기에 익숙한 그들만의 소비행태와 함께, 친숙한 목소리의 연예인이 책을 읽어준다는 차별성이 서로 융합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원동력의 핵심은 서영택 대표가 책의 가치, 책이 가지는 파워를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밀리의 서재를 필두로 한국에 오디오북 시장은 본격 태동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네이버가 ‘오디오클립’이라는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시장에 진입했다. 2018년 7월부터 성우, 소설가, 아이돌스타 등 유명 인사들이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로 유료 오디오북을 시행하고 있다. 네이버는 ‘오디언소리’라는 오디오북 전문기업도 인수를 했다. 밀리의 서재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상대의 등장이지만, 시장 전체로 볼 때는 빠른 성장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결국 이제 밀리의 서재는 새롭게 열리는 시장과 네이버의 등장을 통해서 다시 한번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아직 성인의 40%는 책을 읽지 않는 시장이 한국이다. 수천만명의 잠재 독자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밀리의 서재는 새로운 성장엔진을 탑재하고 성장할지 올 한해를 주목해 보고자 한다.

 

- 김규민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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