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라운지]볼보의 역발상

최근 볼보자동차는 매우 이상한 발표를 했다. 하칸 사무엘손 볼보 CEO는 “2020년부터 생산하는 모든 볼보 차량의 최고속도를 시속 180km로 제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느림보’ 볼보 차량을 2021년형으로 만나보게 된다. 

보통 승용차 최고 속도는 시속 220~240km 정도다. 거의 모든 자동차 메이커들은 좀 더 빠른 차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도대체 볼보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엉터리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바로 ‘안전’ 때문이다. 볼보의 이 같은 방침은 2020년까지 운전자가 심각한 부상을 당할 확률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비전 2020’ 계획의 일환이다. 속도보다는 안전에 중점을 둔 것이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2017년 한 해에만 과속으로 인한 자동차 사고로 9717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볼보의 안전 분야 전문가인 얀 이바르슨은 보도자료를 통해 “사람들은 종종 주어진 교통 상황과 맞지 않게 과속해 운전하고 있다”며 “과속이 위험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고 이해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하칸 사무엘손 볼보 CEO는 “볼보는 ‘안전’에 관해서는 언제나 선두주자였다”며 “최고속도 제한이 교통사고를 막기 위한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한사람의 생명을 살리려는 시도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이미 유럽연합(EU)은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2022년부터 모든 신차에 지능형 최고속도제어장치(ISA) 부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ISA를 달면 도로별로 설정된 최고속도에 맞춰 자동으로 속도가 제한된다. 

최근 독일에서는 정부 산하 교통위원회가 교통사고 사망자와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고속도로(아우토반) 최고속도를 시속 130km로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볼보는 운전자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속도를 높이지 못하게 해 사고 발생을 미리 막는 극단적인 방법을 시도하겠다고 천명해버린 것이다. 안전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볼보는 학교나 병원 근처 등 특정 지역을 지날 때는 자동으로 속도가 줄어드는 기술을 적용하는 것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볼보는 음주 운전이나 운전 중 휴대폰을 보는 등의 부주의한 행동을 막는 방안도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다.

차량 최고 속도를 제한하겠다는 볼보의 방침이 판매실적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안전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덩달아 ‘안전’에 대한 볼보의 브랜드 철학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가지 더, 시속 180km는 그다지 느린 속도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 당신이 도로에서 어느 정도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를.

 

- 하제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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