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를 전진기지로 삼아 동남아 사정을 취재하고 국내에 알리려던 ‘자비 연수 계획’은 원래 1년이었다. 그러나 그 ‘자비’라는 조건의 덫에 걸려 아쉽게도 6개월만에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서울에 돌아와 며칠 지나고 지난 6개월을 되돌아보니 벌써 ‘그랬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울은 또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국내 상황은 떠나기 전보다 경제가 더욱 더 나빠졌다는 것, 실업자가 더 늘었다는 것 외에는 별달리 바뀐 것이 없어 보인다.
불확실한 경제 사정 속에서 미래를 꿈꾸는 이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토요일 오후 로또 판매소 앞 정도나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들은 토요일 오전까지도 일상에 바쁜 것이 틀림없다. ‘이태백’, ‘사오정’…, 자조적인 신조어들도 그동안 많이 생산됐다.
또 한편에서는 중소제조업의 구인난이 뉴스이기도 하다. 일은 많지만 눈높이에 맞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너도나도 위로만 가고 있다. ‘위로 간다’는 것은 항상 긍정적 이미지를 주지만 지금은 ‘모래 위 성’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때마침 불법체류 외국인들도 한국을 많이 떠나 중소공장들은 일손을 구하지 못해 수주된 수출물량마저 포기해야한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여전히 밤길 유흥가에는 호객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밤이면 오토바이 폭주족도 여전하다. 중·고교 수업은 아들로부터 듣던 것보다 더 악화돼 가고 있다. 노인층이 차츰 두터워져 문제라는데 기자가 보기엔 사실상 일하기 싫어하는 젊은이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 더 문제다.
우린 이미 ‘너무’ 잘살게 된 것이다. IMF를 겪고도 눈높이가 낮아지지 않았다. 눈높이가 낮아진 것은 이미 70년대 이전에 가난을 경험했던 층들이지 가난을 몰랐던 젊은층은 신용카드로 흥청망청 써대서 가정까지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빚을 갚기 위해 절도, 강도, 유괴는 예사고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도 자주 언론에 보도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부는 다른 문제들로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며 별다른 정책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언론도 그저 이런 현상을 보도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일하기 싫어하는 젊은이들 늘어나
우린 이제 ‘백두산 천지에 갇힌 개구리’같다.
너무 높은 곳에 있는 우물에 들어와 버려 아래 세상이 어찌 바뀌고 있는 지에 관심도 없고 아래를 살펴 볼 생각도 않는다. 더 높이 가지 못하는 것을 한탄만 하며 높은 곳 흉내내기에 열중이다. 부자가 망해도 3대가 간다지만, 우린 그런 큰 부자는 아니었다. 이미 IMF 외환위기로 큰 재산을 한탕 털어먹었다. 그런데도 ‘천지 속 개구리’는 여전히 ‘전에 살던 산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우리가 ‘아래 동네’라고 여기던 중국이 이미 우리를 부분적으로 앞질렀어도 “어? 그래?” 정도다. 인도가 엄청난 고도 성장속에 외국 자본을 대량 유치하고 있다는 소식에도 “어, 그렇군” 정도다.

이제 현실적인 눈높이를 가져야
미국과 캐나다, 유럽, 대양주 정도가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사다.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들의 문은 거의 닫혀가고 있다. “갈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다 갔고, 가나마나 마찬가지로 그 나라들을 드나드는 사람들과 가지 못하는 사람들만 남았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다. 우리의 문제는 눈만 높은 개구리들이 한정된 연못에 너무 많이 산다는 데에 있는 지 모른다. 또 ‘갇힌 개구리가 올챙이들을 자꾸 눈 먼 개구리로 키워나가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내보내도 연어처럼 회귀해 놀고먹는 올챙이들도 너무 많다.
이제는 천지 연못에서 빠져 나와 높은 곳에서 널리 바라보고, 신천지로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다시 60, 70년대의 개척자적 정신으로 우리 젊은이들도 무장해야 한다.
지난해 7월말 말레이시아에 도착해 우리 대사관 관계자에게 우리 교민수를 물었을 때 “대략 2천명쯤 될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 귀국에 앞서 물어본 결과는 “7천명은 되는 모양”이었다. 6개월 사이에 3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실질적인 증가가 대부분 ‘영어 배우러 오는 학생’들이라고 해도 희망적이다. 다만, ‘저 높은 백두산 천지에서 저지대로 내려왔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새 세상을 보러 왔다’는 객관적 관점이 스스로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떠나오기 며칠 전 우연히 알게된 한 교민의 경우는 매우 바람직해 보였다. 중소기업 임원출신인 60대 부부가 두 손자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 집을 구하고 있었다. 부모중 하나가 ‘기러기’로 데리고 오는 경우가 아닌 점, 조부모가 손자들을 안정적으로 돌볼 것이란 점, 조부모는 보람있게 노후를 즐길 수 있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난을 겪어본 세대가 ‘아래 세상’ 얘기를 ‘천지 올챙이’들에게 잘 해 줄 것이라는 점….
그다지 유창하지 못한 영어와 적은 체재비로 손자들을 잘 돌볼 수 있는 중진국 수준의 외국이 있다는 것을 안 그 부부는 이미 ‘높은 우물 천지’에서 나온 ‘현명한 개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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