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흙수저 성공신화’쓴 이수진 야놀자 대표
상태바
[기업 인사이트] ‘흙수저 성공신화’쓴 이수진 야놀자 대표
  • 중소기업뉴스
  • 호수 2228
  • 승인 2019.08.19 1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닥생활 전전하며 숱한 실패 끝 국내 숙박앱 1위 등극 

차기 과녁은 ‘기술력 유니콘’진입

여름 휴가를 준비하는 기본 행동 중 하나는 숙박시설을 예약하는 일이다. 숙박이 해결돼야 여행의 50%가 완성되는 느낌이다. 질 좋은 숙박시설은 중요하다. 숙박비가 여행 경비 중 가장 큰 포지션을 차지한다. 숙박시설의 환경에 따라 여행자의 추억이 달라진다. 여름 휴가 시즌이 아니더라도, 여행자는 항상 큰 고민을 한다. 수많은 숙박시설 중에 뭐가 나은 건지, 가격은 적당한 건지 판단하는 일 말이다. 

야놀자는 종합 숙박 애플리케이션 업체다. 모텔, 호텔, 펜션, 게스트하우스 등등 야놀자를 통해 예약이 모두 가능하다. 사실 숙박 애플리케이션은 너무 많다. 야놀자라고 특별할 건 없다. 숙박업체별로 직접 예약을 받는 시스템은 보편화됐다. 굳이 중개업자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야놀자는 여행 숙박의 중개업 가운데 최강자다. 마치 부동산 중개업처럼 사람과 방을 연결해 주고 알짜 수수료를 번다.

야놀자는 업계의 선두자다. 야놀자가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가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모텔예약서비스 시스템을 개발한 이후부터다. 호텔과 달리 전국의 모텔을 온라인으로 쉽게 예약할 수 있게 야놀자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야놀자는 전국에 있는 모텔 같은 중소형 숙박시설을 하나의 예약시스템으로 묶었다. 과거 모텔이 은밀한 숙박시설의 상징성이 있었다면, 이제는 커플들의 공간이나 출장간 직장인의 쉼 자리, 가성비 숙박시설을 찾는 여행자들의 필수 잠자리가 됐다. 

 

모텔청소부로 숙박업계 첫발

야놀자라는 회사를 이야기할 때 이수진 창업주 겸 대표에 대한 스토리를 뺄 수가 없다. 이수진 대표의 창업 스토리는 요즘 스타트업 신화 가운데서도 아주 특별한 구석이 있다. 바로 ‘흙수저의 성공신화’이기 때문이다. 1978년생인 이수진 대표는 요즘 흔한 말로 정말 흙수저 출신이었다. 그가 4살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조부모 밑에서 커야 했다. 조부모는 농사를 지었다. 이수진 대표는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농사일을 도왔다. 한글도 늦게 깨우쳤다.

이 대표는 실업고를 나왔고 전문대를 졸업했다. 수중에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1997년 병역특례요원으로 3년간 일하며 이른 바 목돈을 모았다. 병역특례요원의 첫 월급이라고 봤자 월 40~60만원이 전부였다. 조금씩 월급이 늘긴 했지만 생활비까지 써가며 저축을 했다. 전역할 무렵 4000만원을 모았다고 한다. 그가 목돈을 모은 이유는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수진 대표는 지금껏 언론인터뷰를 할 때 “왜 사업을 시작했고 창업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돈을 벌고, 부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회사를 나온 후 주경야독 공부했고 주식투자 관련 서적도 읽었다. 사업을 하기 전에 그는 먼저 돈을 벌 수 있는 방향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가 한 일은 매일 일어나 주식시장이 개장되면 시세판을 들여다보며 전업 투자를 했다. 그렇게 1년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컴퓨터만 봤다. 그리고 그 일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빈손이 된 것이다. 이쯤되면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부딪힌 형국이다. 의지할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어디 번듯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수진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무일푼이 된 자신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숙식제공을 해주며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원양어선의 선원이 되는 것도 고려했고, 농사일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도예촌의 보조도 생각했다. 그러다 생각의 끝에 모텔 종업원을 떠올렸다. 그래서 바로 모텔 청소부를 시작으로 그는 숙박업계에 뛰어들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을 바꾸고 야놀자를 탄생시킨 첫 발판이 됐다. 

 

노는 문화 이끄는 콘텐츠기업으로

이수진 대표는 부지런했다.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규모가 꽤 큰 모텔의 매니저가 됐고, 이어 총 지배인까지 올랐다. 그는 직장인 신분이었지만, 틈틈이 자기만의 사업을 실험했다. 앞서 말한대로 그는 사업을 하고, 돈을 벌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가 숙박업에 종사하면서도 샐러드 배달업체를 창업한 일도 있었다. 지금이야 샐러드 배달이 어느 정도 배달시장에서 수요가 있지만, 당시에는 좀 이른 감이 있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그는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그러다 내가 잘 아는 숙박업을 더 키워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수진은 2000년대 초중반, 포털사이트에서 커뮤니티를 하나 만든다. 모텔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였다. 마치 부동산 중개업자간의 정보공유 사이트처럼 모텔업 종사자들만을 위해 특화된 사이트였다. 2005년 가입자수는 무려 1만명을 돌파했다. 숙박업에 필요한 물품 거래가 됐고, 구인구직 정보도 자주 업데이트됐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 대표가 공을 들여 관리를 했지만, 매출을 일으킬 수익모델이 없었던 것이다. 모텔업 종사자들만 있는 정보 카페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카페에 일반 소비자의 모텔 이용후기를 덧붙였다. 이용후기는 전국 모텔업자들에게 정말 중요한 지표였다. 이수진 대표는 돈이 보였다. 이 카페를 바탕으로 ‘모텔투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들에게 숙박시설 정보를 제공하고 업주에게 광고채널을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야놀자의 시초였다. 

모텔투어는 순식간에 20만명에 달하는 뜨거운 커뮤니티 사이트가 됐다. 정말 성공의 문이 열렸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다. 하지만 이수진 대표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그는 사업을 추진하는 성실함과 추진력은 있어도, 사업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노련함이 부족했다. 바로 브랜드 관리 말이다. 이 대표의 모텔투어가 뜨자, 경쟁업체가 모텔투어 상표권을 등록해 버린 것이다. 이 대표는 그때까지 브랜드 경쟁력이 뭔지 잘 몰랐던 때다.

상표권만 빼앗긴 게 아니라 모텔투어를 관리하던 개발자도 경쟁업체로 이직을 해버렸다. 간판과 기둥까지 뽑혀 간 것이다. 이수진 대표는 멈추지 않았다. 물러설 데도 없었다. 그는 전화위복을 믿었다. 모텔의 숙박 연계뿐만 아니라 데이트 코스를 추천하는 놀이여가 콘텐츠까지 종합 서비스하는 야놀자를 시작했다. 숙박업체의 예약을 돕는 사업이 아니라, 노는 문화를 선도하는 콘텐츠 기업으로 선회한 것이다.

2011년 야놀자가 출범한다. 야놀자의 가맹점 사업이 핵심이었다. 브랜드 사업이었고, 콘텐츠 문화사업이었다. 그리고 2016년. 약 5년 만에 야놀자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기 시작한다. 런칭 이후 약 5년만에 100호점을 돌파했다. 야놀자는 국내 중소형 숙박업체의 러브모텔 이미지 완전 탈피를 위해 △성인용품을 객실 기본 비품으로 비치하지 않을 것 △성인방송 채널을 제외할 것 △주차장 가림막을 없앨 것 등 3대 원칙을 도입했다. 2014년 매출 200억원이었던 야놀자는 지난해 매출액 1609억원(연결 기준)으로 급성장했다. 

 

세계1위 여행업체 2000억투자 유치

놀라운 일이다. 누군가는 모텔 예약 중개사업이 뭐 대단한 아이템이냐고 할 것이다. 이수진 대표는 숫자로 보여줬다. 최근 싱가포르투자청(GIC)과 부킹홀딩스(BookingHoldings)로부터 1억8000만달러(약 2128억원) 규모의 시리즈 투자를 유치했다. 특히 부킹홀딩스는 전 세계 최대의 여행 e커머스 기업이다. 전 세계 여행업계의 선두주자다. 세계 1위가 한국 1위에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아마도 투자자들은 이수진 대표의 성공에 투자를 하고 베팅을 건 것이 아닐 것이다. 그의 실패 극복 능력에서 가능성을 본 것같다. 이 대표는 지난 과정이 대부분 실패의 연속이었다. 실패를 통해 좌절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경쟁력이고, 야놀자의 기업가치다. 

그는 모텔시장을 평정했고 호텔나우를 인수해 호텔 예약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취미·레저활동을 골라 할 수 있는 레저큐를 인수했다. 펜션 예약 서비스 우리펜션도 인수했다. 이제 야놀자는 모텔 전문 업체가 아니다. 국내 1위 숙박·레저 액티비티 회사다. 이제 호텔 체인들도 야놀자의 고객사다. 

이번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GIC와 부킹홀딩스는 야놀자를 이렇게 평가했다. “야놀자가 한국 내 숙박·여가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며 시장 지배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했고 첨단 디지털 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와 경쟁력, 글로벌 사업 확장 등에서 추가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봐 투자했다”고 밝혔다. 

이수진 대표는 사업을 이끌면서 지킨 원칙이 있다. 자기가 잘 하는 일과 자기가 못하는 일을 정확히 구분한다는 것이다. 이수진 대표는 모텔업의 기본 생리를 잘 안다.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뒤에 작업해야 할 세세한 분야는 전문가들에 권한과 책임을 줘버렸다. 

실제 야놀자에는 유명 다국적 기업, 대기업 출신 인재들이 많은 걸로 유명하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 출신 김종윤 야놀자 온라인부문 대표는 이수진 대표가 영입에 심혈을 기울여 2015년 부대표로 스카우트했다. 현대카드 수석디자이너 등을 거친 박우혁 CDO(최고디자인책임자)도 이 대표가 삼고초려했다. 구글 미국 본사 출신 조세원 CMO(마케팅총괄이사), SK플래닛 출신 송재하 CTO(최고기술책임자), 삼성카드 출신 김기범 영업총괄상무 등도 이 대표가 어렵게 영입한 슈퍼인재들이다.

이제 야놀자는 글로벌 기업으로 나가려고 한다. 글로벌 기업의 기본은 정보 기술(IT) 기반의 시스템이 첨단화되는 게 선결 과제다. 야놀자가 편리한 온라인 숙박 예약 서비스로 우뚝 섰던 건 사실이지만 빅데이터를 활용한다든가, 고객맞춤형 추천을 한다든지, 해외 고객의 이용 불편을 해소하는 등 여러 과제가 있다. 이수진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야놀자는 진정한 기술기업이 될 겁니다. 기업가치 1조원이 아니라 기술력의 가치가 1조원이 되는 기업 말이죠.”

유니콘기업은 기업가치 1조원 기업을 말한다. 뿔이 달린 상상의 동물 유니콘을 빗댄 표현이다. 야놀자는 유니콘의 고삐를 쥐고 있다. 

 

- 차병선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