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신문은 경영혁신과 생산성 향상 등으로 부도위기에서 탈출한 기업회생사례를 시리즈로 취재·보도합니다. 어려운 경영환경에서 성공적으로 재기한 기업들의 노하우를 통해 턴어라운드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부도를 직접 경험해보니 그동안 얼마나 편안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평생 이렇게 어렵고 힘든 시간이 또 있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IMF 기간중 주거래 은행의 퇴출과 막대한 환차손으로 하루 아침에 부도위기로 몰렸던 동아지엠피 김인수 대표는 아찔했던 당시의 악몽을 떠 올리며 손사래를 쳤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될 정도로 탄탄한 기업이었던 동아지엠피는 국내 수중펌프 분야에서 품질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독보적인 존재.
그러나 관련기업의 연쇄부도로 30여억원을 떠 안았고 주거래은행의 미온적인 업무처리로 6천여만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파산의 나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IMF가 터지자 은행채무를 먼저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갖고 있던 현금 15여억원을 채무변재로 다 지출했지만 결과적으로 소용이 없었던 셈이죠.”
환차손과 단기운영자금 압박에 따라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김 대표가 내린 처방은 가용 자원을 총 동원, 부채 청산 등 자금 흐름을 정상화시키는 일. 그러나 이같은 김 대표의 생각은 비수가 돼 곧바로 돌아왔다.
당장 변재할 만큼 급한 채무를 제외하고는 상환을 유예하라는 주변의 만류를 새겨듣지 않은 결과였다.
98년 초. 결제대금으로 발행됐던 어음의 만기일이 돌아왔다. 주거래은행이었던 동화은행에 남아 있는 적금을 해약하면 충분히 변제될 금액이었다. 김 대표는 은행을 방문했지만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해약해주지 않았고 1차 부도로 이어졌다.
“부도가 난 날 회사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직원들과 회식을 했습니다. 부도나고 회식한 회사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재기를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감내하자는 의미에서 김 대표는 160여명의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다시 뛸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믿고 있던 직원들에게 배신당하고 말았다. 관리직원들은 3일 동안 쉬라고 김 대표에게 조언했고 그 기간 동안 자신들이 채무자를 설득하겠다는 것이 그 이유.
부도난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던 직원을 중심으로 3천평 공장 가득 있던 물건들을 다 빼돌렸다. 회사에 출근해보고 깜짝 놀랐다는 김 대표는 관할경찰서에 신고했고 6명의 직원이 특수 절도죄로 구속됐다. 동료들이 구속된 데 앙심을 품은 직원들은 노동부에 쟁의심판을 청구해 버리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져 결국 회생기회를 놓쳐 버렸다.
“기술력 하나 만큼은 자신 있었습니다. 일본과 기술제휴로 들여온 기술을 토대로 완전방수가 가능한 F종 모터를 자체개발 했으니까요.”
부도의 시련 속에서도 기술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은 동아지엠피에게 지난 2000년 중국으로부터 희소식이 날아왔다.
국내에서는 도저히 사업할 수 없다고 판단한 김 대표는 중국으로의 생산시설 이전을 염두에 두고 6개월이 넘는 현지답사를 꼼꼼히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교포출신 기업인을 알게 됐고 합자 형태로 심양에 진출할 수 있었다.
국내에 생산시설이 전혀 없는 동아지엠피는 지난해 9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증설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연구소만 운영할 계획이다.
동아지엠피의 수중펌프는 일본제품의 80% 수준으로 가격이 싸다. 그렇다고 성능이 뒤지는 것도 아니다. 제품 경량화와 원가절감에 주력한 생산공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중요한 부품의 모듈화와 금형의 호환성, 축적된 개발노하우 덕분이다.
“시련을 겪고나니 이제 기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도난 기업인들에게는 재기의 길을 가로막는 규제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중국입니다.”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밝히는 동아지엠피 김대표는 회생과정에서 전문 사기꾼에게 빼앗긴 회사를 찾기 위한 법정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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