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초여름의 연두가 온통 거리를 채워가고 있다. 추운 겨울을 견뎌온 나무들 위에 무성한 녹음을 만들기 위한 이파리들이 가득 자리를 잡고 있다.
자연은 어김없이 그들의 질서에 따라 조화로운 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가슴에 빨간 불을 안고 건널목에서 멈춰선 중소기업인에게 이 계절은 오히려 잔인할지 모른다.
질서니, 조화니, 순환이니 하는 말들은 우리의 경제에서는 잊혀진 단어들이고 이미 오래전부터 우려되던 증상들이 경제의 곳곳에서 중소기업을 마비시키고 있다. 서서히 침몰 해가는 난파선 속에서 중소기업인들은 작은 수저 하나를 들고 열심히 물을 퍼내고 있다.

획일적 기업평가제도 이젠 바꿔야
하루가 다르게 정부는 중소기업을 위한 기사회생의 정책을 쏟아내지만 상황의 긴급성만 나열한 채 정책내용은 크게 변한게 없다. 더욱이 그 정책의 효과를 누리기엔 우리의 중소기업들은 너무도 멀리 고립돼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제도에 커트라인이라는 개념이 있다. 자신의 점수를 가지고 해당되는 대학에 진학할 때 개인이 가진 특성이나 가능성 등 모든 의미가 점수로만 평가되는 독특한 입시 시스템이다.
요즘 중소기업인은 커트라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금융기관을 가든 보증 기관을 가든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등급이 결정되고 기업이 가진 가능성이나 미래 비전은 의미 없는 장식이 돼 버렸다.
더 이상 중소기업인의 마인드나 기업이념은 불필요한 사족으로 퇴화되고 전산자료에 의해서 기업의 자금지원 여부가 결정돼 좁혀지고 경직된 커트라인 속에 중소기업들은 갇히게 되었다.
어느 수출업체의 경우 현금과 동일한 신용장을 받아 놓고도 기업의 재무구조나 금융시스템의 구조 속에 묶여 다가오는 선적날짜 앞에서 발만 동동 굴렀던 아픈 경험을 전해 들었다.
마치 공장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처럼 전산망의 시스템 속에 제한된 중소기업은 동일 등급에서는 모두 같이 취급되는 상품처럼 되어 버린 듯하다.
기후나 천재지변에 의해 농사가 흉작이 되면 정부가 지원을 하지만 중소기업의 흉작에 대해서는 금융한도 축소나 자금회수의 방법이 대안으로 기다리고 있다. 중소기업은 점점 시스템에 의해 상황적으로 벼랑 끝에 내 몰리고 있다.
일률적인 평가방법으로 국내의 모든 중소기업을 선 안에 가두어 자르기보다는 새로운 기준의 신용평가 기법이 절실히 요구된다.
재무제표뿐 아니라 비 재무제표에 의해 중소기업의 특성과 비전, 경영자의 마인드를 평가할 수 있는 좀더 합리적인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신문고 같은 中企정책 아쉬워
자금난에 허덕이는 수많은 중소기업을 위한 유연성 있는 평가기준을 적용하고 보증기관의 정부출연 규모를 대폭 확대해 자금난을 완화 시켜야 한다. 내수를 부양하는 노력이 중소기업인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도록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열매를 갈구한다. 늘 그렇듯이 중소기업인은 큰 자금이나 큰 규모의 혜택을 탐욕스럽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가까이서 들어주고 신속하게 만나서 해결할수 있는 신문고 같은 정책들이 필요하다.
초여름의 하늘아래 나뭇잎 하나 하나가 모두 동일해 보여도 제각기 다른 푸르름으로 빛나고 있듯 우리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크고 작은 중소기업의 색깔이 제각기 빛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소영
폴리프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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