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연구원, 하향식 정부 지원 탓으로 높은 수준의 외부기술과 접목 미흡
정부가 우리 산업을 요소투입형에서 혁신주도형으로 바꾸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개발(R&D) 투자를 높여오고 있으나 투입 증대가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같은 투자의 함정 현상 즉 ‘혁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중간조직 형태인 ‘중소기업 연구조합제도’를 도입, 중소기업 공통연구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중소기업 연구조합 제도를 통한 혁신의 위기 극복’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OECD 국가 중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세계 1위, 정부의 R&D 예산 역시 GDP의 1.13%로 세계 1위지만, 혁신기업의 비중은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IMD의 세계기술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14위에 머무는 등 R&D 투자의 성과는 높지 않으며, 기술무역수지도 2017년 기준 46억8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연구원은 R&D 거버넌스 및 혁신체계가 과거 추격형 성장시대에 머물러 있어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혁신체계로의 전환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정부 R&D 투자의 낮은 효과성은 하향식(top-down)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 정부의 R&D 지원과 업계의 R&D 수요 간에 괴리가 있으며, 개별기업의 R&D 과제 중심으로 지원됨에 따라 출연(연)보다 높은 수준의 외부기술과 접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 기술개발의 90%가 ‘나 홀로 개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개별기업 보다 업계 공통과제 지원해야
연구원은 “독일의 경우 중소기업 대표 조직인 산업연구협회 및 그 연합회(AiF)가 R&D 중간조직 역할을 하며 이 조직을 통해 추출된 업계 공통의 연구과제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는 공통연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이같은 중소기업혁신시스템은 독일 중소기업의 높은 기술경쟁력을 가져온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혁신체계(NIS)와 연계된 R&D 추진으로 수준 높은 연구결과가 창출되고 개별기업이 아니라 업계 공통의 과제 지원 및 연구결과의 공개 등으로 재정지원의 파급효과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이에 따라 정부 R&D 투자의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지향성 △업계 공통의 연구과제 탐색 △정부-기업-출연(연)과의 가교역할을 통한 산·학·연 협력 연구의 매개기능을 할 수 있는 ‘중소기업 연구조합’제도의 입법화 및 공통연구의 활성화를 제안했다.
이같은 체계를 구축하면 정부 R&D 지원이 업계의 수요와 괴리되지 않아 정책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고, 연구 과제를 출연(연)에 위탁 개발되도록 함으로써 중소기업계의 개방형 혁신 제고 및 국가혁신체계(NIS)와의 접목을 통해 높은 수준의 개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개별기업-연구기관과의 협력연구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래비용을 낮추고 출연(연)도 산연 협력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전기가 될 수 있다.
中企 협동조합 조직 활용 바람직
아울러 연구조합을 정책 경로로 이용하면 정책수혜를 받기 위한 지대추구적 행태 등 개별기업 지원중심 시책의 부작용을 줄이고, 개별기업지원에 따른 재정지출의 낮은 파급효과 문제도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언급했다.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수준 높은 출연(연) 기반을 갖고 있으며, 단체표준이나 기술분과위원회를 운영하는 조합 등 비교적 잘 갖춰진 중소기업협동조합 조직이 있으므로 이들을 잘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중소기업 연구조합을 안착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이를 통해 정부 R&D 투자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본을 활용한 정책 인프라의 확충도 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광희 중기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R&D 투자 성과 제고에 급급해 R&D 투자를 늘려나가기보다는 투자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의 정비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며 “그래야 ‘혁신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