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영’‘현장밀착3,4세 경영인에 롤모델 제시

공통분모는 협력사와 상생 리더십

올 한해 재계에는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창업주들이 찬란했던 시대의 뒤편으로 물러나고, 새로운 얼굴들이 재계 전반에 나서게 된 점이 아닐까 싶다.

산업화 시대의 경영인들은 지금의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마련한 역군들이었다. 이분들 중 큰 별들이 올해 별세한 사례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람이 지난 9일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한국경제의 신화적인 인물이다. 직원 5명으로 시작한 대우실업이 30년 만에 재계 서열 2위의 대우그룹으로 변신했던 과정은 정말 드라마틱한 순간들이었다.

특히나 지금은 기본적으로 작은 스타트업도 글로벌 사업을 준비하지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만해도 해외사업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대우그룹은 당시 실천을 넘어 선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우그룹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그러고 보면 불과 30년이 지난 일인데,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김 전 회장이 별세를 한 후에 불과 5일 뒤 LG그룹의 구자경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구 명예회장은 구인회 창업주에 이어 2LG 회장으로 취임했다. 지금 LG그룹의 바탕은 이때부터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구본무 회장에 이어 올해 구자경 회장까지 세상을 뜨면서 LG그룹은 이제 새로운 젊은 경영인의 세대교체가 속도를 받게 됐다.

시간을 다시 돌려 지난 4월로 가면.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도 운명을 달리했다. 조 회장은 1970~80년대 오일쇼크라는 경제위기에서 도리어 공격경영을 이어가면서 대한항공을 일으켜 세웠다. 조 전 회장은 글로벌 항공사들과 스카이팀창설을 주도하는가 하면 민간항공사 국제협력기구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전 세계 항공업계에서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끌어올린 장본인이었다.

 

젊은 총수들의 급부상 원년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이 재계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채우는 젊은 총수들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이다. 지난해 인사로 컨트롤타워를 강화시킨 구광모 회장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리더십을 드러내고 있다. 원래 LG그룹이 튀지 않고 조용한 스타일로 사업들을 추진했다면, 구광모 체제 이후 역동적이고 공격적인 스타일로 LG그룹의 강점을 강화하고 있다.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은 조양호 전 회장이 별세한 후 주주총회를 거쳐 대한항공의 경영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현재 대한항공 경영권과 관련해 한진칼 대주주인 강성부펀드(KCGI)와 갈등을 빚고는 있지만 내부적으로 조직 효율화에 앞장 서고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조용히 세대교체를 이뤄내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최근 사실상 경영에 잘 나서지 않고 있고 대신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기존 조직의 관습을 혁신하며 광폭행보 중이다. 일단 현대차 직원들의 복장을 자율화하고 직급체계와 보고체계도 바꾸며 기존 경직된 조직문화를 단기간에 변화시키고 있다.

아직 확실한 경영 주도권을 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그룹사에도 세대교체의 바람은 일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 승진이 대표적 사례다. 김 부사장은 지난해에도 승진설이 돌았지만 유임됐고 올해는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했다. 아울러 이재현 CJ회장이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과 이경후 CJ ENM 상무에게 CJ 주식 184만주를 증여한 부분도 향후 세대교체를 위한 초석을 다진다는 평가다.

재계의 세대교체 성공유무는 개별 그룹사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역동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개별 그룹사와 함께 동반성장하는 중소기업들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기에 그렇다. 요즘처럼 대내외적으로 경영환경이 급변화하는 와중에 경영인의 능력이 상당히 중요해졌다. 그래서 이전 산업화 세대들의 성공 노하우를 본 받아 젊은 경영자들이 또 한번의 성장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가 산업화 경영인이라고 하면 창업주와 2세대들인데, 이들은 그나마 당시 경영능력을 입증 받으며 지금의 그룹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제 3, 4세 경영자들이 바톤을 이어받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제대로된 경영능력이 확실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50여년의 1~2세대의 성공노하우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는 다음 50년의 미래 전략을 만들고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함께하는 김우중, 경청하는 구자경

그렇기 때문에 김우중 전 회장이나, 구자경 명예회장 등의 지난 행보를 우리가 새삼 주목하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그들의 리더십은 시대가 아무리 바뀌었어도, 경영에 있어 꼭 참고해 볼만하다고 본다.

우선 김우중 전 회장이 자주했던 말은 세계 경영이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1989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을 출간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경영 관련 책인데도 불구하고 당시 가가호호 이 책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였다.

이건 상징적인 일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시장에서 어떻게 성공할까?”가 경영인들의 화두였다면, 김 전 회장은 세계시장에서 뭘 팔까?”였다. 그는 1990년대 냉전체제 붕괴로 떠오른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공략했고 1998년 해외법인만 400개가 넘어갔다. 과연 그 원동력은 김우중이라는 개인의 힘에서만 나올까? 여기서 그의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다.

보통 김우중이라고 하면 돌격형 리더십, 워커홀릭 등 일방적인 리더십의 소유자로 생각할 수 있다. 사실 그는 함께’ ‘상생등을 키워드로 하는 동반자적 리더십을 가장 잘 쓴 경영인이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무턱대고 업무지시를 하지 않았다. 세계 경영현장을 누비며 고생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고, 분발시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일이었다. 과거 대우그룹은 직원들의 주인의식과 책임감이 가장 강한 곳이었다. 신입사원부터 관리자까지 당시 금액으로 2000만 달러는 자율적으로 계약권한을 부여했다. 권한을 부여하니 그만큼 자신의 회사에 대한, 자신의 업무에 대한 일처리도 빨라지고 책임감도 높아진 것이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현장형 리더십이 강점이었다. 1970년 럭키금성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평소 대리점이나, 서비스센터, 공장을 찾아 직접 고객 상담을 했다고 한다. 생활 밀착형 가전제품이 많은 탓에 구 명예회장은 주부들과도 소통을 자주 했고 이때 주부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그걸 토대로 개선점을 현업부서에 지시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그가 현장을 중시하고 소비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의 첫 직장과도 연관될 수 있다. 그는 고 구인회 LG 창업 회장의 첫째 아들로 1925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사범학교를 나온 뒤 5년간 교사생활을 했다. 교사에서 경영자로 변신한 뒤에도 그는 자신의 생각보다 타인의 생각을 귀 기울여 듣는 진중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가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 매출액이 고작 260억원이었지만 1995년 퇴임할 때 LG그룹은 30조원의 회사가 됐다. 그가 지금의 LG를 이룩한 거인이었던 것이다.

2020년이 밝아오고 있다. 아마 내년에도 재계에 크고 작은 이슈들이 몰려올 것이다. 재계의 흥망성쇠에서 경영자의 리더십은 상당히 중요한 지점에 있다. 한국처럼 CEO의 권한이 강력하고 사업의 전반을 진두지휘하는 환경에서 앞으로 이 무거운 자리를 이어받는 창업주의 3~4세 경영자들이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여려 협력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도 꿈꾸는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희망해 본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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