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정보화사회에 살고 있다. 정보홍수가 그 증거다. 그러나 정보화사회는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약 2500년전 중국 춘추시대 말기 손무(孫武)가 ‘손자(孫子)’라는 병서(兵書)를 내놓고 전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정보화시대가 탄생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첩보(諜報)형식의 정보도 있었지만 ‘정보화사회’는 아니었다.
정보화사회의 특징은 정보라는 가치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의 시대이며 단순한 지식이나 뉴스가 아닌 첩보를 수반하는게 원래 정보의 모습이다.
‘손자’의 병법에는 전쟁에 두가지 기본적인 전제가 있다. 첫째 ‘싸우지 않고 이길것’ 둘째 ‘승산(勝算)이 없으면 싸우지 말것’이다.
또 전쟁은 하기전에 어전회의에 해당하는 묘산(廟算)이라는 회의를 국왕 어전에서 열고 아군과 적군의 전력(戰力)을 심도있게 정밀분석, 검토한 후 승산여부에 따라 개전(開戰)과 회피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이 묘산(廟算)에 필요한 전국의 자료는 대부분이 정보활동에서 얻어지며 그 분석이 자료의 핵심을 좌우한다고 손무는 강조했다.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전쟁史에는 일본군부, 특히 해군은 정보전에 관심이 없으며 사관학교 교과서에는 ‘손자병법에 정보에 관한 사항이 있는데 첩보나 수송선 공격은 비겁하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막부(幕府)시대의 사무라이(武士)정신의 잔재인듯 하다’는 지적이 있다.
중국의 전국시대는 정보홍수시대가 아니고 정보조작시대가 현출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趙와 秦의 장평대전(長平大戰)에서 秦의 백기(白起)장군이 첩보병을 백성으로 위장해 趙의 도성에 잠입시켜 허위정보를 조작유포하자 여기에 말려든 趙王이 장평의 야전사령관인 노련한 염파(廉頗)장군을 교체시켜 장평성에 농성중인 趙군 40만이 秦군에 생포돼 생매장되는 참패를 당했다.
또 魏의 곽운(藿雲)장군은 당번사병이 뛰어들어 부하위군중 1개지대 100여명이 대치중인 楚군으로 투항해 갔다고 보고하자 곽운장군은 “내 명령으로 위장투항한 첩보병이다”고 거짓정보를 흘렸다. 이 말이 楚에 알려지자 楚군은 모처럼 투항해온 적병을 모두 잡아 생매장했는데 곽장군은 손하나 건드리지 않고 탈영병을 적의 손으로 처형했다.
이러한 정보활동을 살펴보면 책사(策士)들이 정보전으로 남의 나라 이권(利權)을 팔고 사는 등 많은 형태가 있다.
정보화사회라는 것은 정보가 전쟁화하는 시대이며 중요한 정보가 오히려 봉쇄돼 가는 시대이다. 정보의 종합적 구조적 분석도 크게 도움되지 못하는것 같다. 정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양(量)이 아니고 정보의 선택능력이다. 정보는 상황에 맞는 당시의 시간제한을 받는 가치판단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필요한 것만이 ‘정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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