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마(名馬)의 별칭이 천리마(千里馬)다. 언제부터인가 능력이 특출한 사람을 ‘천리마 인재’라고 한다. 요즘과 같이 기업하기가 어려운 시기에는 ‘천리마 인재’가 더욱 탐나는 시대다.
당대(唐代)의 정치가이자 문인(文人)인 한유(韓愈)는 “백낙(伯樂)이 있고 비로소 하루에 千里를 달리는 명마가 생긴다. 명마의 소재(素材)는 어디에나 있으나 이것을 알아서 찾아내는 백낙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한유의 말은 인재(人材)는 있는데도 그것을 발견해내는 사람이 흔치 않다는 뜻이다.
백낙이란 고대 중국에 있었던 명마 감정사이며 전설적인 인물이고 명마감정의 명인이다. 그가 관심을 갖고 한번 뒤돌아보는 말은 값이 치솟아 ‘백낙일고(伯樂一顧)’라는 말이 생겼다.
중국 왕조시대에 재상(宰相)의 첫째 의무는 훌륭한 인물을 황제에게 추천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재상이 아니고 군왕(君王)이 백낙이 돼 인재를 발굴해낸 전한(前漢)시대 무제(武帝:BC141~87)의 경우를 알아보자.
중국 역대 왕조는 사농공상(士農工商) 계급중 공상, 즉 상공인(商工人)은 관리(官吏)로의 등용이 금기(禁忌)돼 있는데 무제는 그때까지 이 인습을 무시하고 상인출신인 상홍양(桑弘羊)을 재무장관(大臣)으로, 北의 흉노의 기마병(騎馬兵)에 대한 토벌전을 위한 대군(大軍)을 동원해 그 지휘장군에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노예출신인 위청(偉靑)과 곽거병(藿去病)을 일군과 이군의 사령관과 대장군으로 임명해 대전과를 올렸다.
그러자 군사비로 막대한 국고가 소진되자 무제는 상홍양에 국고 보축책을 명하니 이때 상홍양 재무장관이 착안해 제시한 것이 최초로 염철전매제도(鹽鐵專買制度)다. 무제가 이를 수용하고 소금상인 동곽(東郭)을 소금전매기관의 장관으로, 제철(製鐵)상인 공근(孔僅)을 철(鐵)전매 기관의 장관으로 임명해 크게 성공했다.
이와같은 무제의 인물등용은 파격성(破格性)을 넘어서 일대 인사제도의 혁명이며 후일 <漢書>에서 무제를 명마감정사 백낙에 비유해 인재등용의 천재라 할만하다.
무제는 이같은 파격적인 인재등용으로 한대(漢代)에서 최고 전성기를 이뤘던 걸출한 제왕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천리마’라는 어휘는 전국시대 趙의 무령왕이 말을 타고 싸우는 전쟁에는 흉노 기마족의 호복기사(胡腹騎射)가 제격이라며 이를 도입하면서 그들의 준마(駿馬)를 끌어들여 ‘천리마’라 했다.
요즘의 기업, 특히 중소기업은 전례없는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도 도움될 것 같지 않다. 문제는 참신한 발상의 경영기법인 인재다. 무제의 인재등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의 최하층 계급을 장군, 장관으로 기용한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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