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화가’ 우제길…삶 ; 세 가지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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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가’ 우제길…삶 ; 세 가지 빛
  • 이혜영 기자
  • 호수 2260
  • 승인 2020.04.20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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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평론가협회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100인으로 선정한 우제길 화백은남도의 처연한 빛을 표현한 작가의 상징이다. 그에게 빛이란 때로는 암담한 시대를 극복하려는 의지였고, 때로는 도전이었으며 또한 희망이었다. 그 빛은 어둠을 꿰뚫는 날카롭고 차가운 것이 아닌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는 빛이다. 아직도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빛이 많은 우 화백, 광주 무등산 자락에 멈추지 않는 창작 열기를 가진 그가 있다.

 

우제길 화백
우제길 화백

- 첫 번째 빛 감성

1942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우제길 화백은 4살 때 부모님과 함께 광양으로 돌아온다. 자연의 다채로운 색감과 풍경 속에서 노닐던 어린 시절은 작가의 감성을 굳건히 해준 뿌리가 됐고,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의 빛에 매료돼 한없이 뒤를 쫓던 천진난만한 아이는 빛을 담는 현대 추상미술의 대가가 됐다.

1970년대 초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우제길 화백, 그가 적잖은 세월 동안 예술가로서 빛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끊임없이 작업 방식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예술가적 감성을 분출했기에 가능했으리라. 그는 새로운 소재를 찾기 위해서라면 쓰레기장도 고물상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 하루는 실개천가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버려진 화물 패널을 운명처럼 만난 날을 기억한다.

초라하게 버려져 있지만, 과거 어느 때에는 소중한 것을 담았을 나무 박스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어요. 1980년대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버려졌던 우리 지역의 현실과 비슷한 처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수없이 눈비를 맞으며 버텨낸 세월의 흔적들이 제게는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을 담아내는 재료로 보였습니다.”

1961년 작업한 드로잉 일부
1961년 작업한 드로잉 일부

그는 탱화기법의 호분가루와 마포천을 입혔고 그 위에 을 올렸다. 그 빛은 시대의 아픔을 극복하는 희망의 빛이었다. 4·195·18이라는 격변의 시간 앞에 나서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그 지울 수 없는 기억을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예술혼으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었다.

그 마음은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서 그날의 소리, 그리고 빛이라는 설치 작품을 통해 더욱 드러났고, 작품은 관람객이 선정한 최고 인기작가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공공미술 제작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예술가적 감성은 시각예술 매체의 다양한 활용으로 이어졌다. 그는 드로잉, 수채화, 유화는 물론 에칭, 실크스크린, 콜라지 등의 다양한 기법을 다룬다. 이뿐만이 아니라 영상, 설치, 공공조형물, 패션쇼까지 그의 영역에는 한계가 없다.

시대적 감성에 귀 기울이고 조금씩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고여 있기 마련이에요. 새로운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는 고여 있으면 곤란하죠. 깨어있어야죠.”

 

- 두 번째 빛 열망

우제길 화백은 중학교 때부터 화가를 꿈꿨다. 쪽물을 이용해 그린 풍경화 과제를 본 미술선생님은 그의 재능을 단숨에 알아보고 미술부 가입을 권유했다. 그 덕분에 그리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과학 노트에는 인체사진을 드로잉하고 음악시간에는 직접 오선지 위에 악보를 그렸고 정성스레 배경을 그려 넣었다. 그러나 어려운 형편은 미술학도의 길도, 서울 유학의 길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광주사범학교에 진학했다.

1955년 어린시절 사용한 음악 노트
1955년 어린시절 사용한 음악 노트

당시에는 그나마 석고상이며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춘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추상미술에 눈을 뜨게 됐죠. 광주 초기 추상미술을 일군 양수아 선생님을 만났으니까요.”

그가 추상미술에 입문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광주사범학교는 호남 추상미술의 산실이었다. 양수아 선생이 학교의 스승이었다면 화단의 스승은 강용운 선생. 두 추상미술의 선구자로부터 영향을 받은 화백은 추상의 세계로 들어서 줄곧 그림을 그렸다. 그렇지만 항상 중심에서 벗어난 이방인과도 같은 삶. 시스템이 잘 갖춰진 중앙 화단에 비해 지역 작가들이 덜 주목받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더구나 미술전공이 아닌 비전공자는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 그는 독학과도 다름없는 길을 꾸준히 걸어갔고 마흔 줄이 돼서야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광주사범학교 졸업과 함께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작품 활동은 꾸준히 이어갔다. 그의 열망은 수그러들기는커녕, 자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끄적이던 어린 우제길의 그 마음으로만 향해갔다. 그러다 1969에포크(Epoque)’를 만난다. 광주 지역 현대미술의 전초기지와도 같은 그룹이었다.

제 작가 인생에서 에포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어요. 추상과 구상의 갈림길에서 확실히 추상의 길을 가게 된 계기가 되었고 작가로서의 길을 닦는 데 돌파구가 되었죠. 제 힘의 원천이자 동반자를 만난 셈입니다.”

그는 자신감이 붙었고 물 만난 고기처럼 더욱 작업에 매진했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단단히 구축하며 국전을 비롯한 공모전의 문을 두드렸다.

 

- 세 번째 빛 도전

1972년 제8회 전남도전 최고상 등을 수상하며 점차 작품성을 인정받게 된 우 화백은 1976년 한국미술대상전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중앙화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후 해외 진출을 위한 국제교류전에도 활발히 참여해 기회를 만들어간다. 그 결과 일본,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잇따라 전시회를 열고 이름을 알렸다. 그는 그제야, 교직생활을 접고 오랜 열망인 전업 작가로서 오로지 창작활동에 마음껏 빠져들 수 있었다.

제가 오직 작품 활동에 몰두하게 된 것은 아내 덕분입니다. 전 재산을 털어 작업실을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 예술가의 활로를 찾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저에게도 도전이었지만, 어쩌면 아내에게는 더 큰 도전이었을 거예요. 가장 고마운 사람이죠.”

작업중인 우제길 화백
작업중인 우제길 화백

지금은 광주 동구 운림동의 명소로 자리 잡은 우제길미술관, 이곳은 본래 개인 작업실로 지어졌다. 부인 김 차순 우제길미술관장의 삼고초려 끝에 승효상 건축가의 손길이 닿으면서, 지난 2014년에 빛의 이미지를 살려내는 현재의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이곳 지하에는 작업실과 자료실이 있으며 지상은 열린 복합 문화공간으로 미술품 전시, 예술 교육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예술가와 후원자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야외 조각공원, 공연장, 카페 등 다양한 문화공간과 아트 상품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예술이 소통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문화예술이 지역 사회에 어떻게 공헌하는가를 보여주는 곳이다.

한편, 지난 20197월 광주에서 열린 제18회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꽃 피는 미래 무등의 빛 광주의 빛을 재구성해 전시하기도 했다. 그는 이 작품에 재능기부로 참여했는데, 네 가지 키워드 가운데 빛이 우제길 화백의 작품을 모티브로 삼았다.

재능기부 기회가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죠.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영광이고요. 예술가는 자신의 재능을 통해 사회공헌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성실하게 창작활동을 해나가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는 지역의 한 소아병동에 작품을 전시하기도 한다. 답답한 병실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지만, 잠시나마 아이들의 얼굴은 마음에 일렁이는 빛으로 밝은 표정을 짓는다. 예술은 이렇게 그 어떤 치료보다 효과적인 처방전이 되기도 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래도 여전히 캔버스 앞에 서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머릿속에 빛의 풍경이 떠오를 때는 정말 몸서리치는 전율을 느낄 때도 있죠. 제가 느끼는 그런 감정들, 그런 행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전해주는 것이, 아직도 풀어야 할 도전 과제입니다. 아직도 나아갈 길이 있기에 더욱 노력해야죠.”

무려 개인전 97, 단체전 704회를 선보인 고령의 화백, 아직 그는 지치는 법을 모른다. 매년 신작을 발표하며 언제나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우제길 화백은 오늘도 청춘이다.

 

- editor 중소기업뉴스 이혜영·자료제공 : 한국메세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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