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품의 감옥 또는 무덤? 생명력 이어주는 비밀의 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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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품의 감옥 또는 무덤? 생명력 이어주는 비밀의 화원!
  • 이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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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27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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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미술 속에서 길을 찾다] 수장고의 경제학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사회·문화계 전반이 흔들리고 재정립되는 시기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당장 몇 개월 뒤에 시장 환경도 예상할 수 없는 시계제로에 빠졌다. 기존의 마케팅, 시장분석, 디자인 등의 경영전략으로 대응하기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과거의 성공방식을 버리고 새롭고 낯선 시선으로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점검해야 한다. 이에 중소기업뉴스가 서정아트센터와 공동기획으로 미술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인사이트를 격주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수장고는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리를 하며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고, 도서관의 서가처럼 나름의 규칙과 엄격한 시스템 아래 작품을 보관하는 장소다. 이곳은 케케묵은 먼지 속 질서 없이 쌓여있는 무수한 잡동사니들이 채워진 창고와는 달리 고풍스러운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베일에 싸인 이 공간의 신비스러운 아우라를 거두어내고 창고와 구분 짓게 하는 여러 요소들에 대해 분석했다. 작년 초,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개관하면서 개방형 수장고를 최초로 공개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전시를 보는공간과 보관하는공간의 모호한 경계에서 관객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던 곳을 자유롭게 구경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 듯 보였다. “진품은 전시실이 아닌 수장고에 있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수장고는 비밀스러운 곳으로 인식돼왔기에 더욱 그렇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개방형 수장고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개방형 수장고

하지만 모든 관람객이 자유롭게 거닐 수 있도록 개방됐어도 실제로 개방형 수장고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소수의 미술관 관계자들이다. 작품을 만지고 들여다보고 관리하며 나름의 질서를 정비하는 관계자들에 비해 관람객들은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감상하는 다소 수동적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예술의 대중화가 하나의 키워드로 자리 잡은 만큼 미술품이 특정인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과 폐쇄적인 이미지 역시 사라지는 것 같지만 여전히 예술과 대중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은 남아있다. 이는 아마도 작품들을 관리하는 엄격한 분류체계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들을 보관하는 수장고는 언제부터 어떤 형태로 변화돼 현재의 모습이 됐을까.

미술 작품이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한 건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작품에 제목이 붙여지고 라벨링 작업이 시작된 시기가 18세기 이후였다는 사실만 봐도 이전까지 미술 작품에 이렇다 할 관리 시스템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참 과거로 거슬러 미술이 단순한 기술로만 여겨졌던 중세시대의 미술 작품들은 보관 장소가 따로 있지 않았다. 그나마 수도원 내부를 묘사한 책 속의 구절을 통해 그곳이 흡사 박물관과 유사한 기능을 했음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6세기 몬테카시노 소재의 베네딕트(480-547)의 수도원은 미술작품이 아닌 서가를 정리한 곳이지만 고대에서부터 전해진 유물과 기독교 성물을 모아뒀다는 점에서 수장고의 역할과 유사해 보인다. 이 시기에는 종교적 숭배 가치가 있는 사물들이라면 무엇이든 소장품이 될 수 있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스투디올로

과거의 유산에 대한 막대한 관심이 있던 르네상스인들은 전근대적인 세계관에 뿌리를 두며 스투디올로(Studiolo)형태의 서재에 소장품을 진열하였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떠나 소장품의 가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달려있었다.

스투디올로 형태의 소재
스투디올로 형태의 소재

화려하지 않아도, 혹은 실용적이거나 경제적이지 않더라도 부적과 같은 힘을 지니기만 했다면 그 사물은 가치 있는 것이 됐다. 사물이 지닌 의미에 집중하게 되면서 보관에 대한 중요성이 커진 것은 당연했다.

이후 수집과 보관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며 자연스레 아우라를 형성했다. 특히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5세기서부터는 희귀물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졌는데, 특이한 것을 수집하는 행위는 곧 유행으로 번졌다. 신대륙으로부터 입수한 희귀물들을 캐비닛(Cabinet)에 보관하고, 소장품들은 경우에 따라 재력을 과시하는 도구로 쓰였다.

캐비닛은 독일에서 경이로운 방이라는 의미를 담아 분더캄머(Wunderkammer)로 불렸고, 조금 더 고급스러운 의미를 더해 쿤스트캄머(Kunstkammer)라는 명칭의 붙기도 했다.

과학적 사고가 형성된 17세기에는 소장품을 보관하는 장소도, 진열하는 공간도 세분화돼 체계적으로 변했다. 오늘날 우리가 전시 공간에서 작품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분류체계 덕분이다. 그저 예쁘고 신비한 물건이라면 맥락 없이 같은 장소에 섞여있던 이전 시대와는 다르게 엄격한 분류학을 통해 나름의 질서를 생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분더캄머, 쿤스트캄머: Frans Francken‘s Painting (1636)
분더캄머, 쿤스트캄머: Frans Francken‘s Painting (1636)

소장품들은 크기소재로 구분되거나 회화 작품의 경우 그려진 주제에 따라 다른 곳에 보관됐고 전시 공간도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연출됐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하게 채워진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의 현장을 그린 루잔 프르제파르스키의 <루브르의 살롱 카레>(1985)는 오늘날의 갤러리나 미술관, 박물관에서의 전시 공간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을 담았다.

19세기까지 이어진 이러한 전시 형태는 마치 시각적인 유희만 충족되면 그만인 듯 작품들은 최대한 많이 걸릴 수 있는 방향으로 채워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잡동사니들을 거둬내고 오로지 미술품 전용의 전시 공간, 즉 진열실과 그것을 포함하는 갤러리가 등장했던 시기는 17세기부터다.

작품이 작품으로서 인정받고 관리됐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전까지 소장품이라 통칭했던 모든 사물들은 대다수 수집품목에서 제외되고, 일부만 전시될 자격을 획득했다. 상설전시, 특별전시라는 개념이 생긴 것도 앞서 언급했던 새로운 분류와 감정의 기법 덕분이었다.

신비로운 물건들을 보관하는 장소에서 점차 나름의 질서가 형성된 저장 공간이 되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수장고와 전시 공간이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빼곡이 채워진 미술관 풍경 : 루잔 프르제파르스키, 루브르의 살롱 카레
빼곡이 채워진 미술관 풍경 : 루잔 프르제파르스키, 루브르의 살롱 카레

그렇다면 현재는 어떠한가. ‘올해의 작가상 2019’에 수상한 이주요 작가의 작품 <러브 유어 디포 Love Your Depot>는 동시대 작가가 현재 미술관의 창고 시스템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준다.

작품은 창고, (Lab), 팀 디포(Team Depot)로 전시장을 채우며 기존의 시스템을 벗어나 규정과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대안을 모색하는 제도 비판적 메시지를 담았다. 창고를 그대로 전시장에 가져다놓은 듯한 모습은 역설적으로 작품이 제작되고 보관되고 기록되는 사회적 미술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엄격한 시스템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된 작품들이 모인 현장의 이면에는 기관이 제시하는 조건으로부터 배제된 많은 작품들이 있던 것이다. 이렇듯 전시 공간뿐만 아니라 우리가 자주 접할 수 없던 공간인 수장고가 지닌 아우라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하고 나아간다. 수장고는 예술작품을 가둬두는 무덤이 아닌, 끊임없이 발굴되고 순환해야 할 보관 장소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올해의 작가상 2019’ 수상작 : 이주요, 러브 유어 디포 Love Your Depot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올해의 작가상 2019’ 수상작 : 이주요, 러브 유어 디포 Love Your Depot

일반 기업 경영자에게도 수장고의 발전 양상은 중요하다. 미술작품의 전시와 보관 자체가 중요한 마케팅적 요소가 된다. 일단 미술작품은 어느 시대이든 럭셔리 상품을 즐기고 소비하는 상위층을 상대로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당대의 상위 10%를 대상으로 미술품을 어떻게 전시하고, 그 상품들을 보관해 왔는지는 다른 비즈니스 마케팅에 있어서도 참조할 만한 스토리가 아닐까 싶다.

- 글: 이윤정 서정아트센터 큐레이터 / 진행 : 이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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