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의 세가지 He 스토리

첫 번째 He,스토리

예술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엔 구수한 커피향이 감돌고 있었다. 녹슬고 부서진 냉장고가 누워있고, 벽에 걸린 카펫에는 즉석밥 종이컵, 잡지책, 초콜릿까지 달라붙어 있다. 블루베리를 잔뜩 붙여놓은 캔버스도 있다.

잭슨 폴록을 오마주한 듯한 화폭부터 커피원액을 재료 삼은 캔버스, 흔들리는 TV화면을 찍은 필름 사진, 버려진 마네킹들까지. 종잡을 수 없이 다양한 스타일에 입이 떡 벌어진다. 혼란스러움도 잠시. ‘재료 실험’, ‘자연스러움’, ‘시간의 흔적’, ‘생명과 영혼’, ‘허상과 실상등 씨킴의 작업을 대표하는 키워드들이 동시다발로 소리를 낸다. 씨킴의 열 번째 개인전 타이틀이 <보이스 오브 하모니>가 된 이유다.

오케스트라 50개의 악기에서 하나라도 음이 살짝 잘못되면 다 알잖아요. 작업도 캔버스에서 움직이는 선과 색들이 마지막엔 화음처럼 연결되더군요. 화음이 잘 안되면 작가가 미치는 심정을 알게 됐죠. 나는 그걸 극복했으니 이번에 그걸 주제삼아 봤어요. 재료들의 하모니, 선과 선의 하모니, 색과 색의 하모니를 다 모아 본거죠.”

그림 앞에 선 그는 천상 예술가였다. 자신의 작업을 소개할 땐 소년처럼 눈을 반짝였다.

어린애처럼 단순한 작업을 하고 싶은데, 쉽진 않아요. 수양이 덜 되서 자꾸 손보게 되죠. 이번에 커피 작업에 관심들이 많던데, 사실 의사들이 커피를 못 먹게 하거든요. 그래도 좋아하니까 제일 큰 사이즈로 사요. 조금 먹고 남은 걸 작업실 카펫에 쏟아보니 재밌더군요. 커피를 붓는 높이에 따라 문양이 달라지죠. 한 색깔로 농담만 조절하며 단순하게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커피, 블루베리, 토마토 같은 식재료에서 버려진 냉장고까지 재료로 삼고 있지만, 재료 선택의 기준은 따로 없단다. 재료에 대한 실험이 곧 작업 자체란 것이다.

실험을 통해 결과가 나오는 걸 쓰니까요. 사업을 40년 하면서 레스토랑, 터미널 개보수 작업을 거의 내가 했는데, 집 지으면서도 재료 연구를 즐겼었거든요. 재료란 내 감정을 어떻게 극대화해서 표현할 것이냐를 찾는, 작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죠.”

두 번째 He,스토리

사업가

대학을 갓 졸업한 그는 불과 28살이던 당시 모친으로부터 천안고속버스터미널 사업을 물려받았다. 적자에 고정 지출까지 감당하기 힘든 이중고를 겪었지만 그의 젊은 패기와 남다른 사업 수완은 흑자기업으로 전환시키는 기적을 이뤘다. 2011년부터는 신세계백화점과 제휴해 충청점 운영에 뛰어들었다. 덕분에 버스터미널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꿈은 생각보다 빨리 현실로 이뤄졌고, 현재 이곳은 천안의 랜드마크이자 국내에서도 유례없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렇듯 경영을 전공한 사업가가 아티스트가 된 계기는 뭘까.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신내림 받듯이 그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문제아였죠. ‘Why?'라는 질문이 늘 머리에 가득했어요. 병이라고들 했지만 나는 선물이라 생각해요. 사업이건 예술이건 배운 적이 없거든요. 내 머리 속 우주에서 나온 생각들이 나를 움직일 뿐이에요. 정체성 같은 건 몰라요. 장르에 갇히기도 싫고요. 아티스트로서 스스로 벽을 치는 일이니까요.”

말하자면 그는 사업가와 예술가의 DNA를 모두 가진 지킬 앤 하이드같은 사람이다. 본인도 양면성 때문에 미칠 뻔 했다고 고백한다.

오해를 많이 받아요. 사업가로서 고도의 전략과 전술이 있을 테니 예술도 그런 차원에서 하는 거라고들 하는데, 내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을 뿐이에요. 지금은 사업할 때와 예술 할 때 양면성이 잘 분리가 되죠. 철저한 명상과 사색을 통해 마인드 콘트롤한 결과예요.”

물론 초기에는 내가 과연 예술가냐는 질문 때문에 괴로웠다. 그를 구원한 건 마르셀 뒤샹이었다.

뒤샹이 아니었다면 내 작품들을 밖으로 내놓지 못했을 거예요. 30여 년 전 뒤샹의 <fountain>을 보고 저게 어떻게 예술이 될까 고민했죠. 오랜 후에 결론이 났어요. 뭔가를 좋은 눈으로 선택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 자체가 위대한 예술이라는 거죠. 손으로 그리는 것보다 레디메이드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과정이 바로 아트란 걸 깨달았고, 나도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그런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알게 된 거죠.”

 

세 번째 He,스토리

예술후원자

<보이스 오브 하모니>는 그의 개인전이지만, 전시장 한 켠에 생뚱맞게 한 여학생의 공간이 있다. 도발적인 눈빛의 셀프 카메라를 비롯해 십여 점의 작품들이 작지만 꽤 그럴싸하다. 그러고 보니 아라리오는 국내 최초로 전속작가 제도를 도입한 갤러리다. 무명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해온 예술후원자가 그의 또 다른 얼굴인 것이다.

예술이란 다른 사람에게 생명과 영혼을 주는 것이죠. 우연히 알게 된 친군데, 눈에서 살기를 봤어요. 그림 그리고 싶은데 공부를 시키니까. 아티스트 DNA가 있는 아이거든요. 내 전시에 방 하나 줄 테니 준비하라 했죠. 내가 콜렉션할 거예요.”

예술에 대한 그의 태도는 결코 조급한 적 없다. 콜렉션한 작품 값이 아무리 올라도 되판 적도 없고, 예술을 이용해 사업을 한 적도 없다.

예술에는 시간이 필요해요. 빌딩을 지으려면 건축법상 10억짜리 조각을 갖다 놔야 하는데, 2~3억짜리로 속여서 갖다 놓는 사람이 있고 15억 주고 헨리 무어 조각을 갖다 놓는 사람이 있죠. 15억짜리가 지금은 100억이 되고 빌딩도 명소가 됐죠. 1년 앞만 보고 갖다놓은 싸구려는 예술도 아니고, 그러니까 사업도 망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가 사업가로 성공하는 데는 예술의 영향이 컸다. ‘아날로그 사업의 정점에는 예술이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 그만의 예술경영을 이끈 것이다.

“1989년 터미널을 이쪽으로 옮길 때 생각한 게, 아름다운 꽃을 심으면 벌이 와서 꿀을 만들고, 더러우면 파리가 와서 병을 옮긴다는 거였죠. 아라리오는 그렇게 탄생했어요. 우리는 아날로그 사업을 하는데, 아트가 있는 아날로그와 없는 아날로그는 전혀 달라요. 우리 사업은 예술이 있기 때문에 잘되는 겁니다.”

그의 작업실에는 그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라는 전인권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20년간 하루 4~5시간씩 이곳에 틀어박혀 만든 작품의 종류와 수가 셀 수 없이 빼곡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판매한 적이 없다. 외부에서 전시 제안이 와도 왜곡된 평가를 받기 싫어 거절한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평가는 오직 역사만이 내려줄 거란 확신에서다.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히스토리입니다. 모든 선택의 결과는 역사에 의해 밝혀지죠. 나의 과거·현재·미래가 한 역사에서 이뤄진다는 생각이 내게 올바른 결정을 하게 해요. ‘히스토리라는 단어가 뇌리에 박힌 뒤부터 남을 의식하지 않죠. 나의 충족감으로 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고, 최선을 다하는 내 작업을 역사가 평가할 거라 확신합니다.”

 

-editor 중소기업뉴스 이혜영 기자, 자료제공: 한국메세나협회 ,글. 유주현(중앙SUNDAY 기자) , 사진. 박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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