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450년대 춘추말기 중국에는 철기(鐵器)시대가 시작됐고 50년 후인 전국시대에 들면서 농기구와 무기의 철제품이 나타나면서 농업과 전쟁의 내용과 규모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이 시기에 정치·군사·외교·경제·사상·학문 등 사회전반에 걸쳐 중국고대문명에 꽃이 피었고, 이 무렵 책사(策士)가 나타났다.
이들 중에서 가장 앞선 군사전략가로 당시 병법가(兵法家)로 위(衛)라는 소국의 태생 오기(吳起:BC 440~381)가 병법가로 이름이 알려지자 세상은 ‘孫子’와 나란히 ‘孫吳兵法’이라 칭하게 됐다.
이때 魯나라에서 오기를 스카우트해 장군으로 임명하고 齊나라의 침략을 막게했는데 오기는 단신(單身)으로 부임해 魯軍을 지휘 통솔했으며 자신이 개발한 차상진(車箱陣) 전술로 齊軍의 침공을 일격에 격파해 프로실력을 과시하고 얼마후 위(魏)군의 침공도 보기좋게 격파했다.
그런데 오기장군이 얼마전 격파했던 魏나라 문후왕(文侯王:BC 445~396)이 오기장군을 스카우트해 군사권을 일임했다.
오기는 여기서도 단신(單身)으로부임해 그날부터 魏軍을 지휘통솔 했다. 그는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중산국(中山國)을 평정하고 강국 秦의 침략을 곡진(曲陣)이라는 전법으로 격파해 그곳 서하(西河)의 태수(太守)에 임명됐다.
오기가 라이벌 군에도 스카우트 된것은 어느 곳이든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나라는 문제가 아니었다.
1980년에 미국 포드의 아이아코카사장이 라이벌인 크라이슬러 사장으로 스카우트돼 우리나라 업계에 화제가 됐는데 이미 오기는 2천수백년전에 프로장군이었다.
魏 문후왕이 죽고 무후가 스카우트되자 이를 계기로 趙에 가니 약속을 지키지 않아 燕나라로 갈까 고민하다 楚나라 도왕(悼王:BC 401~381)이 재상(宰相)겸 장군으로 오기를 스카우트 했다.
오기는 동쪽 국경을 소란케 하는 越나라를 격파해 楚에 편입하고 재상으로서 내정개혁에 착수했다. 귀족집단의 특권을 페지하는 정치개혁이었는데 도왕이 죽으니 귀족의 반란으로 오기는 살해됐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스카우트 대상이 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첫째, 한 사람의 프로로서 어느 조직에 들어가서도 혼자서 그 업종에 한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
둘째, 공·사가 분명하고 신용이 있고 존경받는 사람.
셋째, 심복을 만들지 말것.
넷째, 종래의 수직형 조직에 묶이지 말것.
다섯째, 떠난 자리에 오명을 남기지 말것.
프로는 퇴직후에도 일을 얻기가 쉽다. 이제부턴 샐러리맨도 프로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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