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 프랑스 '파리 오페라하우스'의 메세나

기업 입장에서 오페라하우스는 예술적 후원 대상 이상으로 차별화되고 공격적인 마케팅이 가능한 활용 가치가 높은 공간이다. 동시에 오페라하우스에 있어 메세나는 수준 높은 예술성을 지탱하게 하는 숨은 조력자다.

 

화려한 미장센의 후원 가치

런던과 파리, 유로스타로 겨우 두 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두 도시는 각각 영국과 프랑스의 수도이자 유럽 내에서 손꼽히는 문화예술의 중심지다. 이 도시의 중심에 각각 자리 잡고 있는 로열 오페라하우스(Royal Opera House)와 파리 오페라하우스(Opéra National de Paris)는 매 시즌 시작 전부터 예매전쟁을 치러야만 주요 레퍼토리를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을 만큼 충성도 높은 관객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공연예술기관이다.

이는 그들이 선보이는 프로덕션의 완성도와 질적 수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높은 수준의 작품을 꾸준히 선보일 수 있는 기반에는 작품을 선별하는 안목과 폭넓은 아티스트 풀 등 예술적 인프라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공공 지원금이나 일반적인 판매수입 외에 개인 또는 기업의 후원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독려하고 있는 두 극장의 같은 듯 다른 메세나 프로그램에 주목해 보자.

1960년대부터 유럽의 기업들은 공식적인 예술 후원 사업에 활발하게 나섰다. 이는 단순한 기업의 사회 환원의 측면과 이미지 제고뿐 아니라, 세율이 높은 유럽에서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액수가 오가는 투자은행이나 재력을 갖춘 개인에게 매력적인 선택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언젠가 프랑스의 한 투자자문회사 CEO에게서 메세나 프로그램이 비즈니스 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장점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미슐랭 3성급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와 예매가 쉽지 않은 오페라나 발레 한 편을 묶어 제공하는 것은 클라이언트에게 최고의 접대라는 것이다. 단순한 볼거리나 오락을 위한 것이라면 다른 콘텐츠를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장소가 주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매 공연마다 신선한 미장센을 선보이는 고품격의 새로운 프로덕션, 그리고 인터미션에 즐기는 샴페인 등을 고려하면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관객들은 곳곳에 후원과 메세나를 격려하는 광고와 마주하게 된다. 화장실 칸막이에도 메세나 프로그램의 하나인 ‘좌석 기부(Name a seat)’에 대한 안내광고가 부착돼 있다”

 

런던, 다양한 개인을 위한 맞춤형 메세나

1858년에 지어져 1990년대 재건축된 영국 오페라 공연예술의 발생지 '로열 오페라하우스'
1858년에 지어져 1990년대 재건축된 영국 오페라 공연예술의 발생지 '로열 오페라하우스'

런던의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영국 로열 발레단과 로열 오페라단이 기반을 두고 있는 극장으로, 흔히 코벤트가든이라 불린다. 1660년 찰스 2세에 의해 왕립극장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여전히 입구엔 영국왕실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관객들은 곳곳에 후원과 메세나를 격려하는 광고와 마주하게 된다. 화장실 칸막이에도 메세나 프로그램의 하나인 ‘좌석 기부(Name a seat)’에 대한 안내광고가 부착돼 있다. 최소 금액은 500파운드(한화 약 90만 원)로, ‘좌석 기부를 통해 당신만의 좌석을 갖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놓치지 말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로열 오페라하우스를 후원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일정 금액을 기부하고 ‘패트론(Patron)’이 되거나 극장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기부기금(Endowment Fund)’에 가입하는 방법, 기업후원을 포함하는 ‘스폰서십’ 혹은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친구들’이라는 후원회에 가입하는 방법까지 규모와 대상, 방식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기업 스폰서로는 샤넬, 롤렉스, 아쿠아 디 파르마 등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부터, 관련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유명 샹들리에 브랜드 라스비트, 투자 자문회사인 래스본스, 미쓰비시도쿄UFJ은행, 아우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남성화 브랜드 핀스베리 같은 익숙한 이름이 주를 이룬다. 개인이 설립한 각종 문화예술 관련 재단 역시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이 밖에 패트론은 금액에 따라 시즌 전체·오프닝 공연·일반 등으로 멤버십 등급이 나뉜다. 명단이 공개된 패트론과 후원회 목록을 살펴보면 시즌 전체와 오프닝 공연 멤버십에는 유난히 ‘Lord’ ‘Sir’ ‘Lady’ ‘Dr.’ 등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호칭이 많다. 부부가 나란히 이름을 올린 경우도 있고 가족 전체가 ‘Family’라고 한 번에 이름을 기재한 경우도 있다.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판매하는 프로그램 북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들의 명단이 빠짐없이 담긴다. 그밖에 익명의 후원자들이 더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구체적인 인원을 표시하고, 메세나 종류별 페이지를 구성해 정보를 제공한다. 후원회나 패트론 멤버십, 기부기금 가입 안내를 받을 수 있는 담당자 이름과 전화번호 및 이메일 주소도 친절하게 남겨뒀다. 패트론 멤버십 중에는 평생회원도 있는데, 한번 가입하면 개인과 기업 회원에게 최고의 좌석과 함께 최대한의 편의를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개인 후원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극장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파리, 선택과 집중 그리고 미래를 위한 투자

19세기 프랑스 젊은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 의해 건축된 '파리 오페라하우스'

개인을 중심으로 한 메세나의 저변 확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로열 오페라하우스에 비해, 파리 오페라하우스의 메세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
스폰서로 나선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먼저 살펴보면, 스위스 최고의 명품 시계 브랜드인 바쉐론 콘스탄틴을 빠트릴 수 없다. 비록 이제는 그 관계를 끝내고 롤렉스라는 새로운 파트너와 손잡게 되었지만, 이전의 이들이 파트너십을 통해 보여준 시너지가 무척 흥미롭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정교하게 갈고닦은 무용수들의 기량과 무대에서의 순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는 삶의 태도가 브랜드가 추구하는 지점과 맞닿아있음을 확인하고 2007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적극적인 스폰서로 나섰다. 2012년에는 시카고·워싱턴·뉴욕에서 진행된 미국 투어가 성사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전 예술감독인 브리지트 르페브르의 은퇴 기념 이브닝 파티는 물론, 화제를 모으며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후임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뱅자맹 밀피에를 축하하는 만찬을 열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선택적으로 초대한 수십 명의 귀빈을 위한 비공개 행사도 자주 열었다. 선택된 사람들에게는 바쉐론 콘스탄틴과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파트너십을 기념한 특별 영상을 최초로 공개하거나 한정판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일반 메세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파리 오페라하우스 발전을 위한 모임(AROP, L’Association pour le rayonnement de l’Opéra national de Paris)’은 기업이나 개인회원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맞춤형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기부 금액에 따라 4개의 등급(‘Ami’ ‘Donateur’ ‘Bienfaiteur’ ‘Mécène’)으로 나누어 혜택에 차등을 두고 있다. 이들은 일반인에게 티켓이 오픈되는 시점보다 일주일 이상 앞서 예매가 가능하며, 공연 2일 전 혹은 15일 전부터 티켓 수령이 가능하다. 등급에 따라 미묘하게 차등을 두고 있지만 부담 없는 가격의 ‘Ami’가 된다면 최대 66%까지 세금공제 혜택을 누릴 수 있고, 원하는 프로그램을 누구보다 먼저 선점할 수 있어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서고 있다.

 

청년 관객은 내일의 후원인

이 밖에 특기할 점은 파리 오페라하우스가 오페라와 발레를 ‘사회적 공공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30세 이하의 오페라와 발레 팬을 위해 운영되는 특별 프로그램에서 엿볼 수 있는데, 발레와 오페라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최대 50% 할인된 가격으로 표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부대 프로그램으로 리허설 관람, 오페라 가수 혹은 무용수와의 만남, 극장 가이드 투어, 관련 영상 상영회에 우선 초대 등 공연 안팎으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단순히 하루 저녁의 외출로 극장에서 오페라와 발레를 관람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리허설 관람·아티스트와의 만남 등을 통해 무대예술이라는 장르 자체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젊은이들끼리 만나도록 함으로써 유대감을 갖고 교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파리 오페라하우스의 한 관계자는 이런 젊은 관객을 위한 프로그램이야말로 자신들이 더욱 심혈을 기울여 개발하고 운영해 나갈 메세나 프로그램임을 강조했다. 이는 정부예산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파리 오페라하우스에서 수십 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젊은 관객들이 장차 발레와 오페라를 꾸준히 즐기며 후원을 아끼지 않는 사회적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투자하는 것이다.

파리 오페라하우스는 발레와 오페라가 소수의 특권 계층만이 향유하는 예술장르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더욱 폭넓게 향유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고급 문화예술이 ‘사회적 공공재’로 인식되어 있고, 국가가 나서서 보호·육성하고 있다는 것을 파리의 메세나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파리 오페라하우스나 로열 오페라하우스 모두 메세나가 일상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고, 기업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적용되며 나아가 후대의 애호가를 육성하는 기반이 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국내에도 보다 거시적인 안목의 다양하고 성숙한 메세나 문화가 더욱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편집 : 이혜영 자료제공 한국메세나협회 글. 김나희(클래식음악·무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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