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쓸까 모을까… 정답 없는‘신의 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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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쓸까 모을까… 정답 없는‘신의 한수’
  • 이권진 기자
  • 호수 2274
  • 승인 2020.07.27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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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포스트 코로나 출구전략] 소비와 저축
일러스트레이션 신영미
일러스트레이션 신영미

일반적으로 호황 때 저축하고, 불황 때 비축한 돈을 꺼내 사용하는 게 당연하다. 역사적으로 정말 그렇다. 그러나 지금 이런 말을 사람들에게 한다면? 경제 바보를 측정하는 진단키트 검사를 당할 수도 있다.

살찐 암소와 여윈 암소가 나오는 꿈을 꾼 이집트 파라오에게 요셉은 풍년 때 곡식을 비축해 흉년에 대비하라고 풀이해 줬다. 창세기 41장에 나오는 얘기다. 이후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이를 교훈으로 삼아 왔다.

호황기에 넘치는 잉여소득의 일부를 비축한다. 경기 호황이라는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불황이 와서 경제적 타격을 받으면 그 저축의 일부를 꺼내서 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도 않다. 최근 20년 사이 사람들은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2~2007년은 전 세계가 경제 호황기였다. 이때의 저축률은? 오르기는커녕 떨어졌다. 2005년 중반에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08년까지 대부분 1% 이하에 머물렀다. 그러다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다. 우리는 또 다시 반대로 행동했다. 그렇다. 저축을 늘린 것이다. 경기가 움츠러드는데 저축률이 급성장했다.

최근은 어떨까. 지금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하나같이 경제적 궁지에 몰렸다. 1929년 사상 최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후 최장기 불황이 될지 모른다고 언론에서 잊을 만하면 나서서 경고한다. , 성경의 지혜대로 이번에야말로 돈을 써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선진국의 저축률이 고공행진 중이다. 일본의 2분기 저축률은 8.9%였다. 20여년 만에 최고 수치다. 저축률은 국민 가처분소득 가운데 소비되지 않고 남은 소득 비율을 의미한다. 지갑을 열지 않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사상 최고치인 32.2%를 기록했다. 코로나가 본격화되기 전인 2월까지만 해도 8% 안팎이었다. 독일도 1분기 12%를 기록하며 17년 만에 최고 수준을 넘어섰다.

최근 들어 경기침체 시기마다 저축률이 오히려 매우 높아진다는 건 경기침체로 자산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기인한다. 이와는 반대로 저축률이 낮아진다는 것은 사람들이 경기를 낙관하고 있다는 소리다. 두 번째 밀레니엄 이후 저축률의 변동성이 시장을 읽는 경기지표가 되고 있다.

지금 우리의 행동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공황 시절의 소비자 행동과 정확히 대조된다. 1929년은 전 세계시장이 붕괴됐고 사람들은 패닉에 휩싸였다. 그리고 개인들의 저축률이 감소했다. 대공황기 중 최악의 해로 기록된 1932~1933년에는 마이너스 저축률을 기록했다. 대신 개인들은 지출을 늘렸다. 시장에 서서히 돈이 흘러 들어가게 됐다. 결국 수요가 많아지니 생산을 위한 고용이 증가했다. 지출이 경제회복의 마중물이 됐다.

경제가 회복되던 1937년 저축률은 6%대까지 올랐다. 하지만 다시 경기가 소폭 하락한 1938년에는 2%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상승했다. 경기의 호불황에 따라 약속이나 한 것처럼 소비자들은 단일한 행동을 보여줬다. 이것은 현대 경제사에서 교과서적인 사례로 꼽는다.

이러한 행동 패턴은 보이지 않는 손처럼 경기 순환을 완충하는 역할을 해줬다. 경기가 팽창하면 소비를 둔화시키고, 경기가 수축하면 소비를 진작시켜 경제를 안정화하는 자정 효과 말이다.

지금은 저축과 소비 가운데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본능적으로 저축을 늘려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소비도 확대해야 한다. 문제는 일자리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상황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중고에 빠졌다. 불황기에 꺼내 쓸 저축이 부족하고, 소득에서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도 감소했다. 거기에 소득마저 부진하다. 고쳐 말하면 삼중고다.

지금의 경기침체가 지속화될 거라고 누구나 두려워한다. 핵심적인 궁금증은 왜 그동안 우리는 경기호황 시절에 빚더미에 올랐느냐는 거다. 2000년 이후 저축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 저축의 변이 바이러스가 출몰했다. 부동산에 유동자금이 쏠렸다. 소비와 저축의 상관관계를 무너트렸다. 주택 가격 상승이 저축의 대체 효과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줬다.

이때 주택담보 대출만 과도하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른 종류의 부채도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로 개인 부채가 위태롭다. 이자만이라도 내려는 소득의 비율이 기록적으로 높다. 한국의 지난해 말 가계부채는 1827조원이다. 소득을 따로 떼어 빚을 갚는 일이 경제활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됐다.

지난 1997IMF 외환위기 이후 25년 가까이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은 적이 없다. 어쩌면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슬기롭게 헤쳐 왔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벼운 열병이라는 말은 전혀 아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세계경제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전과 달리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소비를 늘려야 하고, 투기판이 된 주택가격의 안정화가 요구된다. 너무 당연한 소리 같지만 정부의 올해 상반기 실물경제 대표 정책을 꼽으라면 재난지원금을 통한 소비 진작과 부동산 규제를 통한 집값 잡기였다. 이게 최선책이었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의 DNA처럼 전이됐던 소비와 저축의 행동 양식은 최근 20년 동안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돈을 쓰는 게 먼저냐, 모으는 것이 최선이냐의 질문에 경제학자도, 정부 관료도 확언할 수 없다. 당국이 경제 전문가를 제쳐두고 진화생물학의 권위자에게 결정 권한을 위임해야 할지도 모를 지경이다.

아무튼, 무슨 이유에서든지 사람들이 갑자기 성경의 지혜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곳간 문을 열어 돈을 풀고, 십수번의 부동산 대책을 시장에 퍼붓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소비와 저축이 반대로 반복 지속된다면, 우리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 경기침체기에 빠질 수도 있다.

현재 우리가 처한 궁지가 긴 터널의 한 가운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망연자실 대공황이라고 속단하지 말자. 긴 여정의 끝일 수도 있다. 2020년은 인류사에 기록될 대여정의 출발선이라는 걸 기억하자. 마침 한국판 뉴딜 정책도 발표됐다. 뉴딜(New Deal)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제 부흥 정책이다. 1929년 미국 대공황은 뉴딜정책으로 극복했고, 혁신했고, 발전했다. 이제 우리 정부도 국민도 결단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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