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또 어김없이 흘러 을유년(乙酉年)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지난 한해는 우리 국민 모두가 참으로 어렵게 참고 견딘 한해였다. 특히 우리 중소기업인들에게는 정말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듯 싶다.
그러나 2005년 새해를 맞는 현 시점에서 중소기업계의 장래는 여전히 어둡기만 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여러 경제관련 연구기관에서 내놓은 금년도 경제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지난 몇년동안 중소기업들이 겪어온 자금난·인력난·판로난 등 어느 하나 현재로서는 낙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기대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지난해말 정부가 발표한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제2의 벤처붐을 조성해 5%대의 성장과 40만여개 일자리 창출을 실현하겠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시책을 통해 벤처창업이 활성화되고 청년실업문제가 해결되며 지금의 경제난국을 헤쳐 나갈 수만 있다면, 그리고 벤처가 아닌 여타의 중소기업들도 한숨을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정부의 벤처기업 대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우선 벤처에 대해 우리가 겪은 쓰라린 경험을 거울삼아 또다시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벤처시장이 투기판이 되지 않도록 철저한 보완과 대비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실력있는 기업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정부는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평가 능력을 크게 향상시켜야 한다. 그리고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벤처지원은 한계가 있음이 이미 드러난 만큼 벤처기업이 그 성장가능성과 기술력을 시장에서 정정당당히 평가받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부는 깊이 개입하는 것을 삼가야 할 것이다.

벤처부작용 최소화 역점
특히 ‘벤처캐피탈 설립완화조치’와 관련해서는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과거 정부의 무차별적 지원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부실한 벤처캐피탈이 이제 겨우 정리되고 있는 단계에 있는데 또다시 정부가 나서서 선심을 쓰게 된다면 참으로 치유하기 어려운 결과를 맞을 공산이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의 시련과정을 통해 자생력을 길러 스스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탈이 또다시 정부의존적 존재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도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벤처기업인들은 과거의 실패에 대한 깊은 자성과 피나는 개선노력을 통해 이번에는 정말 투기적 한탕주의에 빠져 참된 기업가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것이 벤처기업이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한편, 정부가 국내 경제의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벤처붐을 조성하는 데만 총력을 기울여서는 안 될 것이다. 벤처는 말 그대로 위험요소가 많이 도사리고 있어 단기적 반짝 성과가 아닌 실질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그 성공가능성을 장담하기가 어렵다.

기업현장 목소리 경청을
따라서 정부는 이와 함께 지금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중소제조업과 소상공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대책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사실 국내의 중소기업 문제해결은 지원시책이 미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집행하고 운영하는 방식의 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지원 관련 정책과 그에 따라 마련된 각종 지원제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잘 갖추어져 있으며, 중소기업지원 기관 또한 수적으로 보면 가장 많이 설치돼 있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중소기업 정책을 집행하는 데 있어 운영의 묘가 부족하고, 중소기업지원 기관의 역할이 획일적이거나 중복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작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그 규모 뿐만 아니라 업종과 경영능력 등에 있어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애로사항 역시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로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만들어 놓은 다양한 지원제도들을 현실에 맞게 재정비하고, 지원기관들의 역할을 전문성에 입각해 재분장해야 하며 역할에 따른 지원권한과 책임도 강화함으로써 중소기업들이 각기 그 특성에 따라 안고 있는 상이한 문제와 애로사항이 효율적·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정부는 지자체와 함께 이제는 독단적이고 탁상공론적인 시책에 의한 선심성 지원에 중소기업들이 길들여지기를 바라지 말고, 지역의 기업인과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낮은 자세로 기업의 어려움과 애로를 경청해 시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장의 소리가 곧 문제해결의 열쇠요, 정책수립의 기초가 돼야 할 것이다.

박 영 배
세명대학교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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