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 상승분 中企에만 전가
보복 두려워 납품대금 조정 기피
코로나19 장기화로 존폐 갈림길
중기중앙회 ‘거래관행 개선’ 주목
원자재 구매 금융·보증확대 필요

#사례1 절연케이블 제조 중소기업인 A사는 최근 원자재인 PVC와 동 가격이 20% 이상 상승하자 인상분의 6%는 자체적으로 감수했다. 그리고 원청업체에 14%만이라도 단가 인상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원청업체는 단가산정내역, 손익계산서 제출 등을 요구하며 실제 반영해 주지 않고 있다. 앞으로 4개월 안에 원자재값 인상분이 납품단가에 반영이 되지 않는다면 A사는 기업경영 자체가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사례2 플라스틱 제조 중소기업인 B사는 플라스틱 소재인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를 생산하는 원료 대기업의 가격 인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기업은 작년 평균 1kg1626원의 EVA 가격을 올해 32140원으로 31.6%로 전격 올렸다. 대기업은 원자재값 상승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정작 B사의 납품단가에는 반영하지 못해 적자가 누적될 게 뻔한 실정이다.

지난 3월 12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제1회 중소기업 정책연구회’에서 중소기업의 적정 납품대금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에 대해 전문가들이 토의하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제1회 중소기업 정책연구회’에서 중소기업의 적정 납품대금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에 대해 전문가들이 토의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기 회복과 함께 수출이 5개월 연속 상승 추세에 있다. 중소기업 경기전망지수 조사에서도 3개월 연속 반등이라는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중소기업계는 국제 원자재 가격 폭등의 직격탄을 맞고 있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올라서려는 희망마저 꺾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가격상승 충격 中企 집중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의 원인은 중국의 급격한 수요 확대에 기인한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이 보급되면서 코로나 수습 단계에 들어서자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본격적으로 공장 가동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이에 따라 한동안 잠잠하던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의 충격파가 중소기업에게만 집중 포화되고 있다. 이는 원자재 구입과 납품계약 구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다. 먼저 원자재 시장에서는 시시각각 현금을 주고 구입하는 방식으로 거래된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그 가격으로 구입하게 된다. 이후 대기업은 상승분을 고려해 납품단가의 적정선을 결정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원자재 상승분을 그때그때 납품단가에 반영할 수 없다. 대부분이 입찰이나 납품계약 방식으로 일감을 받아오는데, 이때 납품단가가 미리 정해져 고정된다. 이후 원자재 가격이 오르게 되면 그 상승분은 중소기업이 모두 짊어져야 한다.

이때 중소기업이 원청 업체에 상승분 반영을 건의해도 산출 근거를 대라” “계약조건을 바꿀 수 없다등 수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원하청의 수직적 관계 때문에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협상 테이블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꿈같은 일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납품단가 조정 문제점은 대표적인 원하청 구조 아래의 불공정 거래로 꼽힌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체 59.7%가 공급원가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납품단가 미반영 업체 비율은 201242.7%에서 201957.6%, 202059.7%로 갈수록 증가 추세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대기업으로부터 원자재를 구매해 수출하거나 협력 대기업에 중간재를 납품하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영업 손실을 기록하고 공장 가동을 중단한 중소기업까지 있는 만큼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해 원자재 구매 금융·보증 등 체계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폐업하는 사례도 속출한다. 전국 산업단지의 공장 처분 건수는 20191484건에서 지난해 1773건으로 19.5%289건이나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매출감소에 이어 원자재 가격 급상승으로 인한 이중고가 결국 기업의 생존위협까지 이어지고 있는 심각한 실정이다.

 

납품대금 조정제도 실효성 미미

지난 16일 개최된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경제단체장 간담회 자리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무엇보다도 원자재 가격 상승분에 대한 납품대금 반영을 강조한 것도 중소기업계 현장의 애로가 극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김기문 회장은 원자재 구매를 위한 금융 및 보증 지원 프로그램 확대 납품대금조정협의제도 신청요건 완화를 통한 제도 활성화 원가연동제 도입검토(표준계약서 반영 등)을 홍남기 부총리에게 직접 건의했다.

김기문 회장의 이번 건의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중기중앙회에 오는 21일부터 납품대금조정협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기에 그렇다. 지난해 924·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 개정으로 영세한 중소기업과 중소기업협동조합을 대신해 중기중앙회가 직접 대기업과 납품대금 조정이 가능해졌다.

사실 이전부터 납품대금 조정신청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납품대금 조정협의제도는 지난 2008년 원자재 가격 파동에 따른 납품대금 문제로 중소기업인들이 단체로 거리로 뛰쳐나가 만든 역사적 산물이다. 제도가 처음 시행된 것은 200941일이었다.

하지만 납품대금 조정신청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해당 제도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거나 알아도 납품대금 조정신청을 했다가 거래중단 등의 보복조치를 당할까 하는 두려움에서 제도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었다.

이에 중소기업협동조합을 대표하는 중기중앙회가 위탁기업과 납품대금 조정 협의를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 것이다. 중기중앙회가 대·중기 조정협의 테이블에 나서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된 거래관행을 개선할 수 있게 됐다.

김기문 회장 역시 납품단가 구조 개선이 가장 큰 숙제다.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에서 생기는 불공정 문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너무 쥐어짜면 망신당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김 회장은 인터뷰에서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후려쳐 이익을 거뒀다가 나중에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중소기업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제값을 인정해주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문 회장이 최근 꺼내든 ()경제3불 해결아젠다에서도 불공정거래의 핵심 사항이 바로 ·중소기업간 납품단가에 대한 거래불공정과제다. 이외에 경제3불에는 대형 유통업체·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 간의 시장 불균형과 조달시장에서의 최저가 입찰로 인한 제도 불합리가 있다.

한편 중기중앙회는 현재 관련 시행령 요건에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한 점도 주장한다. 우선 신청요건이 너무 까다롭다고 지적한다. 조합이 신청 접수를 받으면, 조합이 총회나 이사회를 열도록 한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

또한 업종마다 원재료비와 노무비 등이 각각 다 다른데, 업종별 특수성을 시행령 개정 때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시행령에서는 1가지 원재료가 10% 이상 올라야 신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1개의 제품을 만들려면, 3~4개 이상의 원부자재가 필요하다.

아울러 중기중앙회는 민간에서 일부 대기업은 주요 원자재에 한해 계약에 의한 가격연동을 시행 중이라며 국가계약법에서도 이미 물가변동(품목조정률 3% 이상 증감)에 따른 계약금 조정제도 도입한 것을 감안해 원가연동제 도입이 필요한 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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