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도 쓰고 있는 ‘팔도강산’이니 ‘팔도명물’이니 하는 말 중에 팔도는 우리 강토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팔도의 행정구역제도가 확고히 실시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태종13년(서기 1413년)부터이다.
팔도의 이름은 예를 들어 ‘함경도’는 함흥(咸興)·경성(鏡城)의 앞 첫 자인 ‘함’자와 ‘경’자를 각각 따온 것이고, ‘도(道)’자를 붙인 것은 함흥·경성으로 나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식으로 강원도는 강릉·원주, 충청도는 충주·청주, 경상도는 경주·상주, 전라도는 전주·나주, 황해도는 황주·해주, 평안도는 평양·안주의 각각 첫 글자를 따서 팔도의 이름을 정한 것이며, 다만 경기(京畿)는 임금님이 있는(서울京) 지역의 안(기畿)이라는 뜻에서 경기(京畿)라고 명명한 것이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옛 팔도 주민의 성격특성을 비유해 경기 사람들은 경중미인(鏡中美人), 충청도 사람들을 청풍명월(淸風明月), 강원도 사람들은 암하노불(岩下老佛), 황해도사람들을 석전경우(石田耕牛), 전라도 사람들을 풍전세류(風前細柳), 경상도인들은 태산교악(泰山喬岳), 평안도인들을 맹호출림(猛虎出林), 함경도사람들을 이전투구(泥田鬪狗) 라고 말했다.
경기사람들을 경중미인(鏡中美人), 즉 거울 속의 미인이라 비유한 것은 경기 사람들의 성격은 멋을 많이 부리며 실속보다는 겉치레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뜻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오늘의 뜻으로 생각해보면 경기는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였으므로 형식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는데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에 그리 비유했다는 생각이 든다.

팔도사람들의 다양한 성격특성
충청도 사람들을 청풍명월(淸風明月)과 같다고 비유한 것은, 충청도민들이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처럼 성품이 온유하고 깨끗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산천이 평평하고 온화한 기후의 영향으로 이 지역 사람들의 성격이 평화롭고 얌전하게 형성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강원도민을 암하노불(岩下老佛) 이라 비유한 것은 세속을 등지고 앉아 세상물정에 어둡고 진취성이 좀 부족하다는 뜻으로 새기나 태산준령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도 꼼짝 않고 자중하며 자비심이 넘치는 늙은 스님처럼 강원도인들은 인심좋고 신중한 성격이라는 뜻으로 생각한다.
황해도사람들을 석전경우(石田耕牛), 즉 거친 돌밭을 가는 소와 같이 참을성이 많고 투지력이 강한 성격을 가졌다는 뜻으로 비유한 것이다. 그런 평은 지리적으로 경기와 이어져 수도를 수호하는 요충지로 역사적으로 외침의 피해가 제일 심한 곳이 황해도라 전투에 대한 투지력이 뛰어나고, 한반도에서는 김제ㆍ만경평야에 버금가는 재령평야가 있고 특히 풍천과 은율은 땅이 매우 기름져 그 곳의 소출은 삼남(三南)에 조금도 뒤지지 않아서 중국사신들의 출입시 지방관리들의 진상공물을 핑계로 가혹한 세금징수가 심했으므로 탐관오리에 대한 인내심이 강한 성격이 생긴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전라도 사람들을 풍전세류(風前細柳)라 비유했는데 이는 바람 앞에 하늘거리는 실버들처럼 상냥하고 붙임성이 있고 친절하다는 의미로서, 땅이 기름져 곡식과 각종 물산이 풍부해 음식문화가 발달했으며, 풍족한 산물로 생활의 여유가 있어 풍류를 좋아해서 예인이 많다. 그러나 전라도는 통일 신라이후 견훤이 지배하면서 고려 왕건과 다툼이 극심했고 왕건이 위태한 때가 많아 이곳을 평정한 뒤에도 이곳 사람들을 미워해 이곳 사람들을 등용하지 말라는 유훈(遺訓)까지 내렸는데 조선초에도 그대로 답습돼 정치적 소외감으로 집권세력에 대한 저항의식이 두드러진 원인이 됐다고 생각한다. 고대부터 북방에 터전을 잡은 고조선과 고구려 부여족들을 포함한 북방 한(韓)민족은 넓은 중원평야를 무대로 한족(漢族)과 자웅을 겨뤄 왔으므로 그 핏줄을 이은 평안도인들도 마치 깊은 숲 속에서 사나운 범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는 말로써 맹호출림(猛虎出林)이라 했는데 이러한 불같고 날쌘 성격은 거친 들판과 중국사람들과의 세찬 싸움에서 길러졌다고 본다.
함경도사람들을 비유해 이전투구(泥田鬪狗)라 한 것은 이곳이 여진 거란 등 중국 변방의 오랑캐들이 그들의 흥망성세에 따라 넘나듬이 심해서 마치 진흙 밭에 뒤엉켜 싸우는 개들-호족(胡族)이 날뛰는 혼미의 땅에서 생명을 지키고 나라의 변경을 수호하려고 고투한, 즉 어떠한 악조건과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참고 견디며 목적한 바는 반드시 성취하는 성격을 비유했다고 볼 수 있다.
경상도 사람들을 비유해 태산교악(泰山喬岳)이라 한 것은 북쪽에는 한반도의 척추인 태백산이 치솟아 있고, 큰 지맥인 소백산과 황악산 지리산 등이 그 풍토를 이뤄 태산교악이라 비유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의 정기받아 이곳에는 고대에 여러 부족국가가 많이 있었고, 이를 통일한 신라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형세로 보면 한반도의 한 쪽에 치우쳐 있던 신라가 고구려, 백제같은 강성했던 나라들을 평정하고 삼국의 대업을 이룬 것이 모두 태산과 같은 높은 기개와 교악과 같은 정기가 밑받침됐을 것이다.

민족의 恨이 되어 버린 분단의 아픔
우리 겨레가 중국의 요동벌과 만주 벌판에서 그 정기를 키우고, 바다로 진출해 중국에, 일본에 그 진취적 기상을 펼때는 문화도 흥성하고 포용적 민족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구차하게 외세에 의한 부분통일로 민족의 웅지가 꺾여 민족의 활동 영역이 한반도로 국한되면서 성질은 다만 유순해지고 도량과 재간 그리고 기개가 옹졸해져 큰 나라의 눈치나 보고 중국을 모방한 소중화(小中華)라는 의식에 안주하려 해서 게으르고, 시기와 암투로 파당짓기에 평안한 날이 없게 됐으니 이게 민족의 한이되고 말았다.
더구나 옹색한 처지에다가 같은 민족끼리 서로 믿지 못하고 증오해 남북분단의 비운을 초래한 후 모두 넓은 대륙을 누비던 기마민족적 호연지기를 잃고 옹졸하고 조급해진 성격의 원인이 된 영토의 국지(局地)적 특성 때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비록 좁은 나라이지만 팔도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특성이 있는 것은 각 고장의 풍토성 즉 토양, 물, 기후, 등이 서로 다르고 동식물의 생태계 및 자연 환경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군대에서 유행하는 말에 전라도 출신 장병들 때문에 부대 안에 울타리를 만들고, 경상도 출신 장병 때문에 ‘빳따’ 단체기합이 있으며, 충청도 출신 장병들 때문에 구보(驅步)가 생겼다하는 병사들의 지역적 성격을 드러내는 군대의 우스개가 생겼는가보다.

고 종 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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