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전원회의 개최…노사 힘겨루기 본격화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3차 전원회의에 사용자위원, 근로자위원, 공익위원이 모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3차 전원회의에 사용자위원, 근로자위원, 공익위원이 모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노동계와 경영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가 15일 내년도 최저임금의 본격적인 심의에 착수했지만, 첫 의제부터 노사 간 팽팽한 대립으로 합의점을 못 찾았다.

최저임금위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제3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9명씩 27명의 위원 전원이 참석했다.

지난달 18일 제2차 회의에 불참했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도 이번에는 출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근로자 생계비 등 기초 자료 보고에 이어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안이 상정됐다. 최저임금 심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 월급 vs. 시급… 첫 의제부터 격돌

사용자위원인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전무(왼쪽),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3차 전원회의에 참석해 박준식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용자위원인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전무(왼쪽),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3차 전원회의에 참석해 박준식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최저임금 심의안은 ▲ 최저임금액 결정 단위 ▲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 ▲ 최저임금 수준 등 3가지인데 노사 양측은 첫 의제인 최저임금액 결정 단위를 놓고 팽팽히 대립했다.

노동계는 근로자 생활 주기가 월 단위라는 점을 이유로 최저임금액을 월급으로 결정하고 시급을 병기하자고 주장했지만, 경영계는 시급으로만 결정하자며 맞섰다.

최저임금위는 최저임금을 시급으로 의결하고 월급을 병기하는 방식을 채택해왔다. 올해 최저임금도 시급 기준인 8720원에 월 환산액 182만 2480원이 병기된다.

경영계는 월 환산액 병기에 반대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시급으로만 결정하자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최저임금 환산 기준인 월 근로시간을 둘러싼 논란과 직결된다.

시급 기준의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하는 기준인 월 근로시간 209시간에는 유급주휴시간이 포함되는데 경영계는 주휴시간은 빼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 현장에서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가리기 위해 시급을 산정할 때 주휴시간을 뺀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할 경우 사업주는 같은 임금을 주고도 최저임금 위반을 면할 가능성이 커진다.

정부는 2018년 말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으로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 주휴시간을 포함한다고 명문화함으로써 논란의 소지를 없앴다.

경영계가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 병기에 반대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시행령을 무력화하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동계가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결정하자고 주장한 것은 최저임금 산정 기준을 둘러싼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맞불' 전술로 볼 수 있다.

◈ 좁혀지지 않는 노사 간극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왼쪽 두번째)이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3차 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왼쪽 두번째)이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3차 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최저임금은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 한계 중소기업의 생존선이 맞닿아 있다. 그래서 적정 수준 이상이면 일자리가 위협받는다.

올해는 상황이 복잡하다. 코로나19 장기화가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기업간, 노동자간 실적과 소득의 K자형 양극화는 심화했다. 내년 봄엔 최대 정치 일정인 대선이 예정돼 있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들면 최저임금 협상은 미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작년에 있었던 올해 최저임금 협상은 역대 최저 인상률(1.5%)로 마무리되면서 파행은 있었으나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노사가 극한 대립은 피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수출의 폭발적 증가로 경제성장률은 4%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수 개선 흐름은 더딘 탓에 온기가 저임금 근로자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생필품과 식료품을 비롯한 생활물가가 고공행진 하면서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힘겨워졌다.

경영계는 비대면·IT·수출 대기업은 코로나 수혜 업종으로 실적이 급격히 회복하고 있지만, 최저임금에 민감한 대면·내수·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은 코로나 타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정부 행정명령에 따른 영업금지나 영업제한 업종, 음식·숙박·여행 등 대면 서비스업종은 매출 감소와 부채 증가로 생존 위기에 내몰렸다.

민주노총은 올해 최저임금(시급 8720원, 월 환산액 182만 2480원)이 1인 가구 생계비의 81.1%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15일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석한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노동자(비혼 단신) 1인 생계비는 약 209만원으로, 올해 최저임금 월 환산액인 182만원보다 약 27만원 높다"며 "현재 최저임금은 턱없이 낮다"고 지적했다.

반면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급하게 올릴 경우 오히려 일자리 감소로 노동자의 고통이 가중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지난 2018년과 2019년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충격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임금 지급 주체인 소상공인과 중소 영세기업의 수용 여력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전북대 최남석 교수에게 의뢰해 작성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시나리오별 고용 규모' 보고서에 의하면 최저임금이 현행 8720원에서 1만원으로 인상될 경우 최소 12만 5000개에서 최대 30만 4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미 2018년 최저임금이 16.4% 올랐을 때 15만 9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10.9% 인상된 2019년에는 27만 7000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고 추정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노동계는 시급 1만원 이상을, 경영계는 동결 수준을 요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 협상 시한 앞으로 1개월…갈등 격화 전망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는 15일 전원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노동계와 경영계의 인식차가 워낙 커 타협점 도출에 난항이 예상된다.

노동계는 장외 압력을 가중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다음 달 3일 서울에서 1만명 규모의 노동자대회 개최를 예고했는데 집회 사유에는 '노동자 가구 생계비에 못 미치는 최저임금'이 들어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어떻게 교통정리 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다양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수출 기업들은 실적이 양호하지만,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업종은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2018년과 2019년 과도하게 최저임금을 올렸던 부작용이 여전하다"고 했다. 성 교수는 "업종이나 지역에 따라 여건이 다른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시스템은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영세 중소기업의 경영악화로 딜레마 상황이지만 최저임금 선을 밟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최저임금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최저임금위는 노사 양측의 대립으로 접점을 못 찾자 이달 22일 제4차 전원회의에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의 법정 시한은 이달 말이지만, 최저임금위가 법정 시한을 지킨 적은 거의 없다.

현행법상 노동부 장관은 매년 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을 결정해 고시해야 한다. 고시에 앞선 이의 제기 절차 등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위는 앞으로 한 달 후인 늦어도 7월 중순까지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확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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