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임금·인력난에 시달리는 우리 중소기업들은 개성공단 진출을 통해 인건비를 대폭 절감함으로써 저가정책을 앞세운 중국기업 등에 대응해 제품단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채산성 악화 등으로 도산위기에 직면해 있는 한계기업들과 저임금을 찾아 해외로 이전하려는 기업들이 개성공단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 제조업공동화와 경기양극화 현상 완화를 통해 한국경제에 활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또한 한반도 긴장완화를 통한 투자환경 개선으로 외자유치에 기여할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는 경기북부와 접경지역의 개발촉진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국토의 균형발전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개성공단이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이는 북한대외개방 정책의 의지를 국제사회에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됨으로써 외국자본이 북한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이다.
개성공단은 그 위치로 볼 때 남북한 상호 군사적 신뢰구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할 수 있다.

대만의 중국 투자 이유
이렇게 비군사 분야의 교류·협력사업인 개성공단 사업으로 조성된 화해와 협력 분위기는 결국 정치·군사적 신뢰구축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등 안보적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긍정적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개성공단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해 북한노동자들에게 시장경제에 대한 장점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며 공단 성공시 남포·해주·원산·신의주 지역 등으로 개혁·개방을 촉진하는 촉매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대만의 중국 투자를 살펴봄으로써 개성공단의 향후 성과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중국과 대만은 정치·외교적으로 끊임없이 긴장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럼에도 경제 및 사회교류 면에서 활발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분단 이후 1978년까지는 중국·대만간 군사적 대결구도로 인해 경제교류가 단절됐으나 1979년 이후 일련의 교류협력 조치들이 제시됨에 따라 양안간 경제교류가 급속도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양안간 본격적인 교류는 1987년부터 시작됐다. 1987년 11월 대만당국이 대만주민의 중국친지 방문을 허용함으로써 양안간의 물적·인적 교류의 물꼬를 트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중국도 1988년 ‘대만동포 투자 장려 규정’을 공포해 대만기업인들의 중국내 투자의 합법적 권익을 보장하고 대만기업에 우대조치와 혜택을 부여했다. 또한 중국의 복건성 지역에 대만투자지역을 지정해 대만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양안은 철저한 정경분리 원칙을 고수해 경제적 교류를 지속하는 정책을 폈고 상호투자보호정책을 마련해 안정적인 경제교류 환경을 조성해 양안관계는 일시적인 관계악화와 상관없이 계속적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대만·중국 政經 구조 유사
1991년부터 2004년 11월까지 양 안간 교역 총량은 3575억 달러로 이 중 대만의 대 중국수출은 2893억달러, 중국의 대만수출은 682억달러로 대만이 중국교역에서 2211억달러 이상의 흑자를 보았다. 이에 따라 중국은 대만의 제2위 수출대상국이며 최대 무역흑자 대상국이 됐다.
중국에 비해 북한은 내수시장이 협소하고 개방의 속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양안간의 정치·경제적 구조가 남북한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경제발전단계·부존자원·생산요소 차이 등에서 오는 경제적 보완성, 서로 다른 경제체제간의 경제적 교류, 통일의 주도권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 등의 측면에서 상당히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대만과 중국의 성공적인 경제교류는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해 정치적 대립관계에 있는 서로 다른 경제체제 간에 이뤄졌다는 측면에서 남북한 경제협력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황재규기자·jkh@kfsb.or.kr

◇사진설명 : 중소기업 관계자들이 2003년 8월25일 개성공단 방문을 마치고 북측 출입관리사무소(CIQ)를 통과하고 있다. <사진=나영운기자>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