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어머니 세대는 머리카락을 잘랐고, 그 머리카락으로 딸들이 만든 가발은 대한민국의 수출 주력상품이 됐다. 그렇게 시작된 섬유산업은 1970년 수출액의 10% 이상을 차지하며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중공업 위주의 산업 재편과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후발국가의 등장은 국내 섬유업계의 경쟁력을 상실케 했고, 쉬지 않고 돌아가며 국가와 가계를 지탱했던 섬유산업은 이제 10인 미만 소규모 업체 비중이 89%에 달할 정도로 영세한 산업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섬유산업은 여전히 제조업 일자리의 6.5%30만명을 차지하고 있고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오히려 제조업 평균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시장점유율에 있어서도 2020년 기준 직물 4, 화학섬유 2위 등 여전히 잠재력을 갖고 있어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시급하다.

이러한 섬유산업의 현장 진단과 해법 모색을 위해 지난 10, 직물, 염색, 의류업종 등으로 구성된 중소기업중앙회 섬유산업위원회가 부산에서 개최됐다.

위원회에서는 지속적인 제조원가 인상과 만성적 인력 부족을 호소하며 섬유산업 육성과 첨단화를 위한 정부 지원을 한 목소리로 요청했다. 특히, 섬유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체계적 지원을 위해 섬유산업을 뿌리산업진흥법뿌리산업에 포함시켜 줄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

또한 섬유산업에 커다란 위기이자 기회로 작용할 탄소중립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역시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섬유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6~10%을 차지하는 고배출 업종으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방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국내 섬유산업의 영세성을 고려하면 개별기업 단위 접근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중소기업간 협업과 공동사업을 통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부산패션칼라산업협동조합이 좋은 예이다. 조합은 지난 30여년간 산업단지내 중소기업의 염색, 가공 등에 필요한 스팀과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유연탄을 연료로 열병합 발전소를 운영중이다. 부산 전체 황산화물 배출량의 37%를 차지하는 조합이 유연탄에서 LNG로 연료를 전환한다면 배출량을 절반가까이 감축 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열에너지를 공급받는 50여개 섬유·염색 중소기업의 그린전환을 조기에 달성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또한, 제조혁신을 통한 생산성 제고, 타이어 코드·안전벨트 등 산업용 섬유 생산구조로의 전환 역시 섬유산업 부흥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돼야 한다. 실제로 세계 각국은 섬유산업을 또 다른 성장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미 섬유제조업 붕괴를 경험한바 있는 미국은 R&D에 적극적으로 투자, 항공기, 선박 등에서 널리 활용되는 산업용 기술섬유로 산업간 융·복합을 이뤄내고 있다. 일본은 이미 탄소섬유 분야에서 세계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산업용 섬유산업강국으로 자리잡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섬유산업위원회에 모인 30여개 협동조합은 과거 수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부산에서 우리도 다시 뛸 수 있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나아가 위원회를 중심으로 섬유산업을 이끌 수 있는 선도모델을 만들고 확산시키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디지털전환과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기회로 삼아 섬유산업이 재도약 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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