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반인듯 아닌듯한 회색지대
무조건 불이익 처분해선 안돼
기업 눈높이로 바라다볼 필요

삼십여 년의 조달청 늘공(늘 공무원)’ 신분을 내려놓은 지 3년이 지났다. 그 사이 중소기업중앙회 감사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아 늘공에서 민간인으로 신분도 바뀌었다. 조달행정이라는 것이 기업의 총무부 역할과 같아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의 물품과 공사를 조달하는 것이 근간이다.

조달은 계약과 계약의 이행과정인 만큼 갈등과 민원, 소송이 빈발하기 십상이다. 이 과정에서 공직자로서 정부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는 둔감했다. 그리고 이제 민간에서 기업의 눈으로 조달행정을 바라보게 됐다.

조달시장이 일반적인 민간시장과 다른 것은 중소기업이나 사회적 기업 등이 생산하는 물품에 대해 우선해 구매하는 강력한 규칙과 제도가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자간 경쟁제도나 소상공인들과의 소액 수의계약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지표에 중소기업제품 구매비율을 포함시켜 중소기업의 판로를 지원한다.

이미 조달청의 공공사업에 참여하는 중소기업 비율이 80%를 넘을 만큼 활성화돼 있다. 자동차나 대규모 건설 사업과 같은 극소수의 대기업 품목을 제외하고는 모든 품목을 중소기업이 조달한다고 보면 된다.

공공조달 시장에서는 중소기업 등 참여기업도 지켜야할 계약 조건이 있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간 경쟁제품은 반드시 직접 생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접생산은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먼저 품목마다 정해진 물적, 인적 기준을 충족하는 생산시설을 갖추고 관계기관에 등록해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또한 등록한 생산시설에서 생산 기준에 맞춰 물품을 생산해 납품해야 한다. 따라서 생산시설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등록한 생산시설에서 정해진 방식과 다르게 생산하는 것은 위반이다.

어떠한 이유든 직접생산을 위반하면 해당 기업의 직접생산 확인서는 취소된다. 또한 주요 계약조건 위반으로 부정당제재라는 행정처분을 받아 일정기간 공공조달 시장의 입찰이 금지되거나, 나아가서는 계약이 해지돼 계약보증금은 국고로 귀속되고 납품 기회를 잃으면서 문을 닫는 기업도 있다.

행정적으로 정한 규칙을 어기면 불이익 처분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직접생산 확인서를 발급받은 기업이라도 완성품을 수입해서 납품하거나, 일괄적으로 저가 하도급을 하는 경우도 명백한 행정규칙 위반이다.

그러나 위반으로 볼 수도 있고 위반이 아닌 것으로 볼 수도 있는 회색지대가 있다. 소소한 공정의 일부를 아웃소싱한다거나 미미한 규모의 생산품을 하도급하는 경우 등 다양하다. 회색 지대에서는 같은 내용이라도 보는 관점이나 입장, 상황이나 분위기 등의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르게 결정하고 판단할 여지가 있다.

이 경우 행정기관은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처분을 할 때가 많은데 이는 대체로 공직자의 관성적인 자기 방어 메커니즘이라 볼 수 있다.

물론 행정처분에 대해 집행정지와 행정 본안소송을 진행하면 법원의 판결이 있을 때까지 효력이 정지된다. 그러나 제재를 받은 중소기업 입장에서 집행정지와 본안소송, 직접생산 취소 처분과 부정당제재 처분, 계약해지 등 일련의 불이익 처분에 대해 일일이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청천벽력이다.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아무리 억울하고 답답해도 생소한 소송이나 절차를 거쳐 행정처분을 무력화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명백한 기준이나 규정일지라도 세월이 지나고 상황과 분위기 등이 바뀌면 개정되기 마련이다. 지난날 공직생활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은 회색지대에 놓여 있는 각종 사례에 대해 기업의 눈높이에서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 보고 억울함이나 부당함을 덜어주도록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례의 원칙에 맞지 않는 불이익 처분은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공정과 객관성, 선례와 형평성을 핑계 삼아 불이익 주는 것을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공직시절에 대한 유감(遺憾)이다. 공직자의 적극적인 행정은 건전한 기업과 경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기본 중의 기본 자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장경순
중소기업중앙회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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