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조직일수록 자율이 중요
‘관리자’아닌 ‘리더’가 돼야
정부 정책·규제도 마찬가지

서승원(중소기업중앙회 前 상근부회장)
서승원(중소기업중앙회 前 상근부회장)

삼십여 년을 일만하다 이제야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됐다. 시간은 주로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로 채워 넣는데 대체로 책 읽는 일이 잦다. 덕분에 바쁨을 핑계로 한 편에 밀어두었던 책을 손에 올리고 책장을 넘기며 어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그러다 우연히 벤처기업협회장을 역임한 중견기업인이 직접 번역한 도덕경을 접하게 됐다. 두해 전인가 받아두기만 했던 책인데 이제야 조곤조곤 읽어보니 참 의미심장하고 울림이 크다. 그 중 깨달음이 컸던 한 토막이다.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 노자의 도덕경 제60장에 나오는 글이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익히는 일과 같다는 뜻이다. 인구에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말이기도 하다. 그동안 이 말의 의미를 큰 나라를 다스릴 때에도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처럼 세심하고 꼼꼼하게 다뤄야 한다.’라고 이해해왔다. 공직 등 일선에 있을 때는 작은 일도 꼼꼼하게 대처하는, 소위 디테일이 강해야 한다.’라고 해석해 실천해 왔던 구절이다.

그러나 역자는 이 구절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어 큰 충격을 받았다. 일견 프라이팬에 작은 생선을 익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금방 눌어 붙으니 자주 뒤집어가며 타지 않게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잣대로 당시의 상황을 해석하고 평가한 것이고 오히려 노자의 뜻은 그 반대라는 것이 역자의 주장이다.

그때의 시대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2500년 전에 프라이팬이 있을리 없고 기름도 없었을 텐데 그때는 생선을 어떻게 익혀 먹었을까? 기록에 의하면 그때는 물고기를 나무꼬챙이에 꿰어 장작불에 구워먹었다고 한다. 당연히 큰 생선(大鮮)은 꼬챙이에 꽂아서 Y자 형태의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한쪽만 익거나 타지 않도록 세심하게 돌려가며 구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은 생선(小鮮)은 어찌 익혔을까? 작은 생선은 꼬챙이에 꿰고 말 것도 없으니 불가에 둘러두고 은은한 불기운에 전체가 잘 익도록 기다렸다고 한다.

즉 약팽소선(若烹小鮮)은 헤집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그냥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의 해석은 오히려 약팽대선(若烹大鮮) 즉 큰 생선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익히는 법에 가깝다는 것이 역자의 생각이다.

조직이 작으면 세세한 일까지 리더가 직접 챙기는 약팽대선이 효과적이겠지만, 조직이 크면 리더는 세세한 개입보다 큰 그림을 보고 방향을 결정하는 약팽소선이 더 효과적이다. 리더가 작은 일에만 너무 몰두하면 큰 방향을 놓치거나 좋은 기회를 실기해서 조직이 발전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니 큰 나라일수록, 큰 조직일수록 리더의 지나친 개입보다 자율에 맡기라는 것이 노자의 진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역자의 해석에 절로 무릎이 쳐지는 대목이다.

그동안 일선에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그야말로 관리자 역할만 했지 진정한 리더는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큰 조직일수록 직원들을 믿고 의지하며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일하도록 유도해야 했었는데 지나치게 세세하게 업무에 관여하고 지시하며 챙겼던 것은 아닌지 후회가 일기도 했다.

하물며 정부가 경제정책을 펴는 것은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정부가 기업 활동에 법, 제도, 규정 등으로 지나치게 세세하게 참견하고 지시하듯 규제하는 것도 약팽소선이 아닌 약팽대선의 일이다.

근자에 정부는 근로자의 월급은 최소한 이정도 주고, 일주일에 정해 준 시간만 일하게 하라. 산업단지에는 여기는 섬유업종을, 저기는 식품업종만 넣어라. 주식회사의 감사는 이런 사람으로 뽑고, 대주주 지분은 특정 선을 넘지 않게 하고, 소액주주는 이렇게 보호하라 등등 직접 개입하는 일이 많다.

정부의 선한 정책취지에 대해서는 백번 공감 한다. 다만 만기친람 하듯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에 간섭하고 규제하는 것보다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노자의 약팽소선을 실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2500년 전 노자의 도덕경은 여전히 많은 울림을 준다. 정책가들과 기업인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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