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컴퍼니의 새 도전]
‘세탁은 빨래 아닌 물류’로 정의
모바일·비대면 속 주문량 급증

세탁실 없는 주택 점차 가시화
골목상권 잠식 논란 선결과제

빨래는 주거의 숙제다. 생활빨래는 삶의 찌든 때다. 생활의 찌든 때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제법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 세탁기와 세제는 필수다. 빨래의 결과를 업그레이드하려면 섬유유연제도 필요하다. 빨래를 빠는 건 세탁기가 할 수 있다. 빨래를 너는 건 세탁기가 할 수 없다. 손도 가지만 우선은 빨래 건조대가 필요하다.

도시 아파트에 거주한다면 베란다에 빨래 건조대를 둘 수도 있다.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면 마당의 빨래줄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닌 1인 주거인이 문제다. 방구석에서 빨래 건조대를 펼치면 누울 자리 밖에 안 남는 경우도 있다. 빨래는 삶의 질의 문제다.

그래서 비대면 모바일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가 스타트업 업계의 아이돌로 떠오르고 있다. 런드리고는 스타트업 의식주컴퍼니가 운영하는 세탁 서비스다. 런드리고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달 월 평균 20%씩 빨래 주문건수와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연말연시엔 직전 3개월 대비 150%씩 물빨래 주문량이 증가했다. 런드리고는 확실히 J-커브 구간에 들어섰다.

스타트업의 시작점은 세상의 모든 문제다. VC들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반드시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세상의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하는가. 그게 본인에게 왜 중요한가. 다른 사람에게도 그게 중요한가. 나나 내 팀이 그 문제를 풀 능력이 있는가. 다른 사람보다 우리가 더 잘 풀 수 있는가. 5가지 필수 질문에서 모두 예스여야 창업의 필수 조건을 충족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투자를 해주는 것도 성공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가사노동 외주화에 착안

비대면 모바일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가 스타트업 업계의 아이돌로 떠오르고 있다. 런드리고는 스타트업 의식주컴퍼니가 운영하는 세탁 서비스다.
비대면 모바일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가 스타트업 업계의 아이돌로 떠오르고 있다. 런드리고는 스타트업 의식주컴퍼니가 운영하는 세탁 서비스다.

청소와 빨래와 요리 같은 의식주의 문제는 세상의 근본적인 문제들 가운데 하나다. 인공지능이나 화성탐사보다도 소비자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앞선 5가지 필수 질문을 대입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 그린라이트다. 그래서 한국의 스타트업들은 의식주 문제에 꾸준히 도전해왔다. 투자자들도 의식주 문제에 접근하는 스타트업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 가운데 하나가 배달의 민족이다. 배달음식 시장을 플랫폼화했다. 의식주 가운데 요리의 문제를 해결했다. 대박이 났다. 정작 의식주에 도전하는 모든 스타트업들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요리에 비해 청소와 빨래는 도전은 이어졌지만 성공은 드물었다. 나나 내 팀이 그 문제를 잘 풀 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식주컴퍼니의 런드리고는 세탁 문제를 빠르게 풀어내고 있다. 2021년 한해 동안 런드리고는 200만벌의 클리닝과 600만 리터의 생활빨래와 25만점의 신발빨래를 소화했다. 스타트업계에선 런드리고를 보면서 과거 성장기의 배민을 보는 듯 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배달의 민족은 모든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시대가 온다에서 출발했다. 로블록스가 메타버스가 리얼월드를 대체하는 시대가 온다에서 출발한 것처럼 말이다. 런드리고는 세탁이라는 가사노동을 모두가 외주화하는 시대가 온다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런드리고는 세탁을 세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런드리고에게 세탁은 빨래가 아니다. 세탁은 물류다. 의식주컴퍼니는 런드리고를 빨래 회사가 아니라 세탁 서비스를 하는 물류 회사로 재정의했다. 세탁은 내 옷이 남의 손을 탔다가 내 옷장으로 되돌아오는 순환 물류다. 남의 물건을 내 집 안으로 배송해주면 소비가 끝나는 음식 물류나 제품 물류와는 또 다르다. 런드리고는 세탁물 새벽 배송 물류 스타트업이다.

런드리고는 런드렛이라는 자체 개발한 빨래 수거함을 이용자에게 제공한다. 런드렛은 런드리고가 자체 개발한 안심 세탁 박스다. 집 문 앞에 체결해둔 런드렛을 통해 비대면으로 세탁물을 주고 받는다. 런드리고는 서울 근교에 시간당 3000장의 세탁물을 처리하는 의류 자동 출구 시스템과 대규모 세탁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했다.

 

세탁 스마트 물류센터 구축

우리나라 1인 가구의 비율을 2019년에 이미 전체 30%를 넘어섰다. 우리나라 1인 가구 숫자는 6148000명에 달한다. 특히 20대의 1인 가구는 2018년에 이미 100만 가구를 돌파했다. 런드리고가 1차적으로 겨냥하는 1인 가구는 먹고 사느라 빨래를 할 시간이 없는 인구들이다. 엄청난 잠재 시장이다. 이용자들은 런드렛에 당일 빨래를 넣어두면 런드리고가 찌든 빨래를 수거했다가 깨끗한 옷으로 돌려준다. 런드리고는 이 모든 과정을 하루 만에 처리한다. 일종의 빨래 새벽배송인 셈이다. 모바일과 비대면이다. 1인 가구한텐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때 정말 중요한 게 물류다. 런드리고는 2021년 한 해 동안 200만 벌을 클리닝했다. 기존 세탁소를 경험하면서 불편한 점 가운데 하나가 세탁물이 분실되거나 바뀌는 것이었다. 세탁물량이 증가하면 이런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런드리고가 세탁을 물류로 재정의하는 이유다. 내 물건이 내 집 밖에 나갔다가 남의 손을 타고 다시 곱게 내 집안으로 돌아오는 물류 말이다.

사실 의식주컴퍼니의 창업자 조성우 대표는 새벽 배송 전문가다. 배달의 민족에서 신선식품 새벽배송 서비스인 배민프레시 물류망을 구축했다. 조성우 대표는 세탁 애스 어 서비스’(구독경제 서비스화)의 성공열쇠는 신용이라고 본다. 소비자가 내 옷을 동네 세탁소에 맡겨온 건 당근이라서였다. 런드리고 이전 세탁 스타트업들이 실패한 이유도 고객과 신용체계를 구축하지 못해서였다.

조성우 대표가 런드리고를 창업하면서 맨 먼저 한 일은 미국 세탁 스마트팩토리 설계조달건설 EPC 전문기업 에이플러스 머시너리를 300만달러에 인수한 일이었다. 세탁이 배송이고 기술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배민의 새벽배송 역시 도시 인근에 스마트 물류 센터를 구축하면서 가능해졌다. 런드리고 역시 도시 인근의 세탁공장을 만드는 게 첫 단추다. 조성우 대표는 런드리고를 통해 거대도시를 커버하는 세탁 스마트 팩토리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하다.

이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서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케아와 같은 전략이다. 이케아는 대도시 근교에 거점들을 마련하고 가구 수요를 독점하는 포위 전략을 즐겨 쓴다. 서울도 광명과 고양이 거점이다. 도시의 의식주 수요를 빨아들이려는 라이프스타일 스타트업들한테 이케아의 도시 공성 전략은 좋은 벤치마크다. 런드리고의 또 다른 벤치마크는 뉴욕 퀸즈의 세탁 공장이다. 뉴요커는 빨래를 하지 않고 맡긴다. 앞으로 서울리안도 마찬가지다. 조성우 대표는 런드리고 창업을 준비하면서 뉴욕 퀸즈의 세탁 공장을 직접 둘러보며 벤치마크했다. 이미 성수동에 2호 스마트팩토리도 만들었다. 지금은 런드리고 전용 세탁기와 건조기 그리고 드라이클리닝 머신을 개발하고 있다.

 

드라이클리닝·물빨래 동시 겨냥

세탁 시장은 단순히 빨래 시장이 아니다. 런드리(세탁물) 시장과 드라이클리닝 시장으로 양분된다. 전통적으로 런드리는 시장이 아니라 가사였다. 드라이클리닝 시장은 4만개 정도인 동네 세탁소의 영토였다. 드라이클리닝 시장은 공식적으론 연간 25000억원 정도다. 현금거래까지 더하면 43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런드리고는 드라이클리닝 시장에서 물빨래 시장까지 세탁 시장을 확장했다.

자연히 동네세탁소와 런드리고는 파괴적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의식주컴퍼니 같은 라이프스타일 스타트업들은 늘 골목상권 침해 논란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소비자들은 초기엔 서비스의 편리함에 열광하다가도 성장한 스타트업한텐 가차 없다. 규제 당국은 혁신이 수반하는 시장 파괴적 마찰을 예방할 능력이 없다.

2021년 세탁소 폐업은 1604건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동네 세탁소 줄폐업은 런드리고한텐 기회지만 또 위기다. 카카오 모빌리티처럼 동네 택시 기사들과 충돌하거나 카카오처럼 꽃집 시장까지 진출했다는 여론이 불거질 경우 런드리고는 시장에서 탈탈 세탁당할 수도 있다.

정작 런드리고한테 위협 받는 건 동네 세탁소 만이 아니다. 대기업 가전 회사도 런드리고의 사정권이다. 이제까지 이른바 물빨래 시장은 가전시장이었다. 세탁기 시장이 물빨래 시장이었다. 앞으로 런드리고는 가전 시장 파괴자가 될 공산이 크다. 고객에게 세탁기를 파는 게 아니라 세탁 서비스를 파는 시장으로 세탁 시장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러면 삼성전자나 LG전자는 런드리고 세탁 공장을 위한 세탁 머신을 공급하는 B2B기업이 된다. 우버 같은 모빌리티 애스 어 서비스가 자동차 제조사의 위상을 바꾼 것과 같다. 사실 여기까지가 조성우 대표가 그리는 런드리고의 비전이다.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면 시장 파괴자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런드리고는 아직 런드리와 드라이클리닝에 들어가는 비용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평가를 받는 런드리고의 월구독료가 그 증거다. 아직 소비자들은 가사노동을 유료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가격 허들까지 있을 경우 런드리고 시장은 기대만큼 빠르게 커지기 어렵다.

 

전국으로 서비스 영토 확장

그래서 런드리고는 2가지 해법을 찾고 있다. 하나는 스마트 세탁 공장을 만들어서 세탁과 물류를 자동화하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이룰 경우 스마트 공장의 효율성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런드리고는 서울수도권 이외 지역으로 서비스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다른 하나는 투자다. 런드리고는 지금 스타트업계의 아이돌이다. 배민의 새벽배송만을 설계하고 성공시킨 조성우 창업자는 아이돌의 센터다.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의식주컴퍼니가 지난해 시리즈B500억원 투자를 이끌어낸 건 조 대표의 스타성도 한 몫 했다.

의식주컴퍼니의 투자자 명단엔 알토스벤처스와 소프트뱅크벤처스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모두 기술시장 트렌드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 예민한 VC들이다. 동시에 창업자들에게 시장 파괴적 성장을 요구해온 무시무시한 투자자들이다. 알토스 벤처스는 배달의 민족에 투자했다.

런드리고는 가사 노동이었던 세탁을 서비스화했다. 세탁 애스 어 서비스는 주거시장의 미래와도 직결돼 있다. 앞으로 1인 가구 수요에 맞춰 공급될 도심 주택은 역세권이나 옆세권이나 슬세권인 대신 더 작고 더 비좁아질 수 밖에 없다. 집 안에선 도저히 빨래를 할 수도 말릴 수도 없게 된다. 주방 없는 집처럼 세탁기 없는 집이 당연해질 수 있다.

구독형 런드리고 서비스는 그 해결책인 동시에 그 촉진제다. 넷플릭스가 TV없는 집을 만든 것처럼 런드리고는 세탁기 없는 집의 유인이 될 수 있다. 집에서 빨래를 할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집에서 빨래를 할 수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면 세탁 시장과 가전 시장을 넘어 주택 시장의 구조까지 완전히 뒤바꿔놓을 수 있다. 주방 없는 집에 이어 세탁실 없는 집이 일반화될 수 있단 얘기다. 런드리고는 빨래의 찌든때만이 아니라 오랜 주거의 찌든때도 드라이클리닝해 나가고 있다. 빨래가 세상을 바꾼다.

 

- 신기주(북저널리즘 콘텐츠총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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