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윤(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
오동윤(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5년 전 우리는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시대의 변곡점에 서 있었습니다. 촛불이 광장을 메웠습니다. 국정농단을 심판했습니다. 이로써 민주화는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산업화는 손도 못 댄 채 5년이 흘렀습니다.

산업화의 뿌리는 산업정책인데 뿌리가 매우 단단합니다. 산업정책이란 정부가 선도 산업(전자, 자동차, 반도체 등)을 제시하고, 생산요소(자본, 토지, 노동)를 집중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산업정책이 성공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비결은 대기업에 선택과 집중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장의 대가는 혹독합니다. 오늘날 불평등과 불공정은 산업정책에서 비롯한 겁니다. 이렇게 50여 년이 흘렀습니다.

산업화, 산업정책, 대기업 중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먼저, 산업화를 대신해 디지털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걸 산업정책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디지털화는 융복합에 기초합니다. 그래야 승수효과(지출한 비용보다 많은 수요변화가 연달아 일어나는 현상)가 발생합니다. 융복합은 결과 예측이 어려운 게 특징입니다.

산업 단위의 산업정책보다 기업 단위의 기업정책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미리 산업을 정해놓고 생산요소를 지원해 기업을 유인하기보다 기업을 지원하고 여기서 새로운 먹거리(산업)가 생기는 방식입니다.

기업정책의 중심은 당연히 중소기업입니다. 이를 실행하려면 생산요소를 다루는 기존 부처론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부조직을 바꿔야 하는데 기존 부처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적어도 청와대에 중소기업수석실을 신설하면 어떨까요? 대통령께서 직접 챙겨주셨으면 합니다.

디지털화, 기업정책, 중소기업 중심으로 국정과제의 큰 그림을 그렸다면, 이제 급한 불을 끌 차례입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손실보상입니다. 지금 활활 불이 타는 상황입니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쏟아부으면 꺼질 것처럼 보입니다. 근데 셈법이 복잡합니다. 돈을 마련하려면 국채를 발행해야 합니다. 국채금리는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기준금리도 상승합니다. 여기에 물가 상승이 더해지면 금리 상승은 가팔라집니다. 소상공인의 이자 부담만 커지는 꼴입니다. 그러면 소상공인의 지원 요구는 쇄도할 거고, 정부는 또 반응해야 합니다. 무한반복의 뫼비우스 띠와 같습니다.

경제가 적어도 3% 이상 성장해야 불이 잡힐 겁니다. 지금 당장은 코로나라는 기저효과가 있어 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기저효과를 빼면, 저성장의 한국경제가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입니다. 폐업지원, 신용회복, 한계기업 정리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정부 초기에 상당히 부담스럽겠지만, 뫼비우스의 띠는 초기에 끊어야 합니다. 그래야 경제가 본 궤도에 오를 수 있습니다.

둘째, 원자재 가격입니다. 발화점은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입니다. 3년째 진행 중이라 체감도가 낮아졌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다시 불붙은 상황입니다. 곧 꺼질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들불처럼 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원자재 가격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중소기업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매우 취약합니다. 한번 정해진 납품단가는 요지부동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레미콘 업계는 폭등하는 원자재 가격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거리로 나섰고 오늘날 동반성장의 씨앗이 됐습니다.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납품으로 먹고사는 중소기업에 큰 힘이 될 겁니다.

셋째, Z세대입니다. 아직 불이 나진 않았습니다. Z세대는 친보수가 아니라 반정부 성향이 강한 겁니다. 그들은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근데 일자리는 구하기 어렵고, 소유한 자산가격은 하락하고, 내일은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Z세대의 반정부 성향은 바로 나타날 겁니다. 일자리부터 보듬어주셔야 합니다. 공기업과 대기업은 포화상태입니다. 결국, 답은 중소기업에 있습니다.

대통령님, 새로운 길이라 쉽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가야 할 길입니다. 690만 중소기업이 대통령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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