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다. 진짜다. 진품이다. 가품이다. 무신사와 네이버 크림의 사생결단 진검승부는 5만원 안팎의 티셔츠 한 장에서 시작됐다. 지난 118일이었다. 네이버 크림에 에센셜 티셔츠 한 장이 올라왔다. 무신사에서 구매한 제품이었다.

크림은 한정판 리셀 플랫폼이다. 중고거래 중에서도 한정판 스니커스나 한정판 명품이 주로 거래된다. 20203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네이버의 사내 벤처로 출발했다. 종종 네이버 크림이라고 풀네임으로 불리는 이유다. 크림의 누적거래액은 벌써 8000억원이 넘었다. 거래액만 놓고 보면 무신사와 지그재그 다음 3위다.

무신사는 남성패션에서 출발한 패션 플랫폼이다. 2021년엔 연간 거래액 2조원을 돌파했다. 2위인 지그재그는 여성패션에서 출발해서 카카오에 인수됐다. 남성과 여성 플랫폼이 국내 패션 이커머스 시장을 선도하는 가운데 3위로 따라 붙은 플랫폼이 중고거래 플랫폼이란 의미다.

온라인 패션 유통 시장이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다. 그런데 네이버 크림에 올라온 티셔츠 한 장이 1위와 3위 사이에서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충돌을 불러 일으켰다. 크림이 무신사가 판매한 에센셜 티셔츠가 가짜라고 판정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무신사가 가짜 명품이나 판매하는 믿을 수 없는 패션 플랫폼이라고 빅테크 네이버의 자회사 크림이 단정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에센셜 티셔츠 전쟁은 패션의 에센셜을 둔 전면전이 됐다.

 

에센셜 티셔츠 진·가품 논란

에센셜 티셔츠는 피어오브갓의 제품이다. 피어오브갓은 20대와 30MZ세대 패션 소비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다. 미국에서 시작됐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인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콜라보도 했다. 에센셜은 피어오브갓이 내놓은 세컨드 브랜드다. 티셔츠나 맨투맨처럼 일상적으로 입을 수 있는 아이템에 ESSENTIAL이라는 브랜드 네임을 큼지막하게 드러내는 로고 플레이로 인기가 높다.

MZ세대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드러내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브랜드를 은근 드러내는 걸 좋아했던 X세대 소비자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에센셜 티셔츠는 절대 가짜여선 안 된다. 로고 플레이를 즐긴 소비자까지 가짜가 되기 때문이다. MZ세대는 짝퉁 브랜드뿐만 아니라 그걸 입고 다니는 소비자한테도 가혹하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프리지아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잠시 인플루언서로 인기가 높았지만 가품 브랜드를 입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짝퉁지아라고 여론재판을 받았다. MZ세대한텐 브랜드의 진가품 여부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무신사와 크림 사이의 에센셜 티셔츠 진가품 논란이 패션 이커머스 산업의 판도를 바꿀 수도 있는 전면전인 이유다. 크림은 네이버의 손자 회사다. 네이버엔 스노우라고 하는 컴퍼니 빌딩 회사가 있다. 회사를 창업하는 회사를 말한다.

스노우가 창업해서 독립시킨 대표적인 회사가 제페토다. 메타버스 스타트업이다. 네이버가 카카오에 비해 메타버스에서 한 걸음 앞설 수 있었던 신의 한 수가 제페토였다. 제페토의 뿌리가 메타버스라면 크림의 근거지는 리셀시장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명품 시장 규모는 17조원이 조금 못 된다. 2020년에 비해 5% 가까이 성장했다. 이렇게 고가 신상 시장이 성장하면 필연적으로 재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중고 리셀 마켓도 따라서 성장하기 마련이다.

입었던 티셔츠나 중고 신발이 애초 원가보다 더 비싸게 리셀된다는 게 상식적으론 납득하기 어렵다. 해당 제품이 한정판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희소성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이키 같은 스포츠웨어 브랜드는 유명 스포츠선수나 뮤지션과 콜라보를 한 스니커즈를 한정 수량만 제작한다. 공급은 적고 수요가 많으면 수급 논리에 따라 재화의 가격이 오르게 된다. 입던 옷이든 신던 신발이든 상관 없다.

2030 MZ세대가 몰두하는 스니커테크의 시장원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건 전제가 있다. 해당 중고 제품이 진품이어야 한다. 중고 거래의 가장 큰 리스크가 바로 가짜를 진짜로 속아서 살 수 있다는 지점이다. 리셀 시장이 레몬 시장으로 전락하기 쉬운 이유다.

 

크림, 자체 개발 알고리즘 적용

레몬 시장은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컬롭 교수가 중고차 시장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제시한 비유다.

중고차 시장에서 무사고 차량은 오렌지다. 사고나 고장이 있었지만 그 사실을 숨긴 차량은 레몬이다. 중고차 판매자는 가능한 사고나 고장 이력을 숨기려고 든다. 중고차 구매자도 몇 차례 사기를 당하면서 이 사실을 간파한다.

결국 중고차 시장 전체를 믿을 수 없게 된다. 무사고 차량도 의심부터 파고 본다. 오렌지를 레몬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판매자도 오렌지를 레몬이라고 의심 받아서 제 값을 못 받느니 차라리 레몬만 진열하게 된다.

크림은 이 문제를 알고리즘으로 극복하려고 만들어진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의 사업 아이템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출발한다. 패션 리셀 시장이 레몬 마켓으로 전락하는 걸 방지하려면 중고 제품이 진품이라는 걸 유통 플랫폼이 보증해주면 된다.

크림에서 거래되는 모든 중고 제품은 크림이 보증한 진품이라는 신뢰만 있다면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정보비대칭 문제가 해소된다. 판매자는 가품인걸 알고 팔고 구매자는 가품인걸 모르고 사는 정보의 유불리가 리셀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일개 유통 플랫폼이 무수한 패션 제품의 진가품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느냐다.

크림은 네이버라는 빅테크 회사가 낳은 손자답게 패션에 공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일단 완벽한 정품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여기서 모든 정품은 모두 똑같은 모양새를 갖는다는 정품의 동일성 원칙이 만들어졌다. 모든 정품은 완벽한 모양새가 갖는다는 정품의 무결점 원칙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정품의 규정에서 벗어나는 제품은 가품으로 판정했다. 패션을 알고리즘화한 것이다. 사실 이건 크림만의 방식은 아니다. 2016년 미국에서 창업한 스톡엑스의 정가품 판정 알고리즘과 연결고리가 깊다. 스톡엑스는 스니커즈의 정가품 검수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여기에 스니커스 시세를 주식 차트처럼 보여주는 인덱스 기능까지 더해서 대박이 났다. 2021년 현재 스톡엑스의 시장 가치는 4조원에 달한다.

크림은 무신사에서 판매된 피어오브갓의 에센셜 티셔츠이 가짜라고 판정할 때도 자신들이 개발한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에센셜 티셔츠는 발매 시즌별로 내부 봉제 방식의 차이가 있으나 동일 시즌 내 라벨과 봉제 형태는 같다.”

크림측이 밝힌 가품 판정의 이유다. 크림은 브랜드 택과 라벨 폰트와 봉제 장식 등 10개 정도의 가품 기준으로 볼 때 해당 제품은 가짜에 해당된다고 판정했다. 크림측 주장에 따르면, 에센셜은 브랜드택을 매 시즌 다르게 봉제한다. 대신 같은 시즌에선 브랜드택의 봉제 방식이 모두 동일하다.

그렇게 에센셜 스스로 정가품을 구분한다는 주장이다. 크림은 상당수 브랜드가 그렇게 시즌별로 세부 특징을 다르게 생산해서 정품과 가품을 구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크림의 정가품 검수 알고리즘이 작동할 수 있는 주요 원리다.

크림의 논리대로라면 리셀 유통 업자가 브랜드가 생산한 제품이 진짜냐 아니냐를 자의적으로 판정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에센셜 티셔츠를 생산한 브랜드 피어오브갓도 진품과 가품을 판정할 권리가 없게 된다. 신도 기술을 이길 수 없단 뜻이다. 피어오브갓은 에센셜 티셔츠의 진품에는 전문가지만 가품에는 크림 같은 리셀 플랫폼이 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패션 플랫폼 전쟁 배수진

실제로 크림은 지금까지 에센셜 제품에 대한 검수만 8만건 넘게 진행했다고 밝혔다. 특히 문제가 된 2020 S/S 시즌 티셔츠는 3000건이 넘게 검수해서 가품에 관해선 고도화된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제시하는 것부터가 크림이 패션을 테크로 접근하고 있다는 의미다. 크림은 이런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덕분에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2021년에 VC로부터 투자받은 돈만 1000억원이 넘는다. 크림의 출발은 패션의 테크화다.

반면에 무신사가 크림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단순히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감히 무신사에서 판매한 제품이 가짜라고 판정하느냐 같은 감정 싸움이 아닌 것이다. 무신사는 패션 커뮤니티에서 출발했다. 패션을 무진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패션 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커뮤니티로 출발했다.

무신사는 스타트업에서 유니콘이 됐지만 본질은 패션 콘텐츠 회사다. 패션을 기술이 아니라 콘텐츠로 보는 것이다. 무신사는 유통 플랫폼으로서 여러 로컬 패션 브랜드와 동반 성장했다. 커버낫이나 디스이즈네버댓처럼 MZ세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디스이즈네버댓이라는 브랜드와 무신사라는 유통사가 상생으로 성장해왔다. 무신사가 패션에 접근하는 방식은 그래서 크림과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 패션 제품이 콘텐츠라면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도 당연하다. 완벽한 정품이라는 가설은 통하지 않는다. 같은 에센셜 티셔츠라도 생산자의 기량이나 생산지의 환경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게 당연하다.

무신사는 크림이 가품이라고 판정한 에센셜 티셔츠를 한국명품감정원에 감정 의뢰했다. 한국명품감정원은 감정불가라는 답을 제시했다. 가품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감정 진행한 일부 상품에서 개체 차이 발견되나 해당 개체 차이가 정가품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부족하다.”

크림이 제시한 알고리즘적 감정으론 에센셜 티셔츠의 정가품 여부를 판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무신사는 공산품이 가질 수밖에 없는 생산지역과 작업자 역량과 유통환경의 개체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똑같다고 주장하는 건 패션을 잘못 이해한 시각이라는 입장이다. 한 마디로 크림은 패션을 코딩으로 배웠다는 얘기다.

티셔츠 한 장을 두고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싸움은 서로 뿌리가 다른 두 패션 유통 회사가 서로의 에센셜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결코 가볍지 않은 건 MZ세대가 가진 신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로고에 열광하고 진짜를 숭배하는 MZ세대 소비자들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한번 신뢰를 잃으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수도 있다.

게다가 무신사는 패션을 콘텐츠로 접근하는 패션 브랜드들을 친구로 두고 있다. 해당 브랜드들 입장에서도 네이버 크림이 리셀 시장에서 진가품을 판정하는 표준을 지배하는 경우를 두려워한다. 앞으로 크림과 진가품의 기준을 공유하고 크림의 기준에 맞춰서 진품을 생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셀 플랫폼이 신상 브랜드를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의미다.

게다가 무신사와 크림은 리셀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도 이미 마찰을 빚어온 지 오래다. 무신사는 크림에 대항해서 솔드 아웃이라고 하는 리셀 플랫폼을 새롭게 런칭했다.

솔드 아웃 역시 크림처럼 스니커즈 같은 한정판 제품의 중고 판매를 전문으로 한다. 지금은 2조원 정도인 리셀 시장은 신장 시장이 성장하면서 정비례로 커질 게 틀림 없다. 에센셜 티셔츠를 놓고 벌이는 싸움은 장차 리셀 시장에서 어느 플랫폼이 더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지를 놓고 벌이는 각축전인 것이다.

일단 시비가 걸린 건 무신사다. 무신사는 크림이 무신사의 소비자 신뢰를 훼손했다고 보고 있다. 영업방해와 명예훼손으로 민형사상 소송도 시작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까지 했다. 티셔츠 한 장의 시비가 패션 플랫폼 대전으로 확전되는 모양새다.

크림은 Kicks Rule Everything Around Me의 약자다. 패션의 룰을 바꾸는 게 목표다. 무신사는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의 줄임말이다. 패션의 다양성을 지키는 게 목표다. 서로 다른 패션 철학을 가진 무신사와 크림의 에센셜 전쟁이 시작됐다. 이건, 진짜다.

 

- 신기주 북저널리즘 콘텐츠총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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