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알아채야 원상회복 가능
中企 미세한 신호도 마찬가지
처방전 미루단간 생태계 붕괴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前 상근부회장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前 상근부회장

콩팥은 우리 몸속의 생명 필터다. 크기는 어른 주먹만한데 하루에 180리터(정수기 물통 10)나 되는 혈액을 여과한다. 여과 과정에서 인체에 필요한 수분과 영양분들은 재흡수하고 불필요한 물질은 걸러 배설해주는 중요한 장기다. 의학자들에 의하면 콩팥은 간과 더불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침묵의 장기다. 그런데 콩팥도 장기간 혹사를 당하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통증 대신 미세하지만 힘드니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이를테면 피곤함을 느끼게 하거나 몸을 퉁퉁 붓게 만드는 것이다. 또 소변량을 줄이는 대신 밤에 자주 소변을 보게 만든다. 콩팥이 과로하면 불순물을 다 걸러주지 못하고 다시 피를 타고 전신으로 돌게 된다. 깨끗하게 여과된 피를 통해 충분한 산소와 영양소가 공급돼야 하는데 불순물이 다시 돌게 되니 몸은 천근만근 피곤해지고 붓게 되는 것이다. 콩팥기능이 떨어지면 한 회에 보는 소변량이 줄어드는 대신 필요한 양만큼을 매일 내보내야하니 자주 소변을 보게 되는 것이다.

콩팥이 내보내는 구조신호를 빨리 알아챌수록 정상으로 되돌릴 가능성이 높다.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가능성이 높지만 알아채지 못하고 방치하면 치료할 방법이 없어진다. 대체로 콩팥은 80~90%까지 손상돼도 기능을 하지만 그 선을 넘어서면 치료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바쁜 일상 탓일까. 안타깝게도 전 국민의 1/7가량이 신장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건강한 삶을 위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인식하려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이치는 조직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직장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일을 수행하면서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아도 대체로 참고 견뎌낸다. 견뎌내는 방법이야 무궁하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퇴근 후 삼삼오오 소주잔을 기울이며 풀어내는 회사나 상사에 대한 뒷담화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사소한 뒷담화거리라도 문제가 너무 장기화되거나 방치되면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직원들이 적응하기를 완전히 포기하거나 중요한 일들도 방관하며 대수롭지 않게 처리하기 때문이다. 조직이야 어찌되건 말건 나부터 살고보자는 심리가 작동한 탓이다. 이런 직원들이 많아지고 기간이 장기화될수록 조직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얼마 전 신입 공무원이 격무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비근한 예이다. 어쩌면 그도 조직과 세상을 향해 미세하지만 힘들다는 절박한 구조신호를 보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주변에서 알아채지 못했거나 알았다고 해도 별 일 없을 거라 방관하다보니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겼을 것이다.

불과 석 달 전 퇴역할 때까지 삶의 2/3를 중소기업과 함께 했다. 참 묘하다. 요즘 중소기업인들을 만나면서 그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그러나 지금은 아주 미세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힘드니 살려달라는 중소기업들의 미세한 신호들이다. A기업은 국내에서 기업하는 것을 그만두고 해외에 투자하거나 직접 진출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한다. B기업은 수익성이 괜찮은 사업임에도 신규투자를 주저하고 심지어 사업을 접으려 한다. C기업은 사업을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좋은 가격에 매각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다들 개개의 속사정이야 알 수 없으나 이 땅에서 더는 기업하기 힘들다는 소리 없는 절규다.

명의는 환자의 미세한 신호를 포착해 활인해 낸다고 한다. 훌륭한 관료나 정치인들도 기업들이 살려달라는 미세한 신호들에 귀 기울이고 반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엔가 건강한 중소기업 생태계가 급작스레 무너질지 모른다. 요즘 콩팥처럼 우직하게 일만 해왔던 중소기업들이 각종 규제로 버틸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중소기업 생태계가 망가지면 일자리 생태계도 같이 망가진다. 그때는 손쓰려 해도 너무 늦다. 마침 국가의 새로운 리더십이 선출됐다. 더 늦기 전에 당선인의 취임 일성이 중소기업을 진단해 보라였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