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빵을 찾아 여기까지 왔구나! 자 그럼 다음 편의점으로 당장 이동하렴. 다 팔렸단다.” 요즘 편의점에 가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안내 문구다. 2주 동안 350만개가 팔린 포켓몬빵의 신화 이야기다.

SPC삼립은 16년만에 포켓몬빵을 재출시했다. 이렇게까지 인기를 얻으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6년전 1020이었던 2022년의 2030소비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SPC삼립의 주가까지 들썩일 정도다.

빵은 별 것 없다. 오히려 옛날 빵이 더 맛있었다고들 불평이다. 부록도 별 것없다. 부록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전세계가 사랑하는 포켓몬스터의 캐릭터가 인쇄된 띠부띠부씰이기 때문이다. 작은 종잇조각이다. 무심한 사람한테야 실질적인 가치는 없다. 마치 가상화폐나 NFT처럼 가치가 치솟고있다. 리셀마켓에선 1500원짜리 빵이 최소 3000원에서 최대 5만원까지 거래된다. 포켓몬빵은 더 이상 빵이 아니다. 경제 현상이다.

 

지구촌 사로잡은 포켓몬 898마리

포켓몬스터는 2021년 현재 전 세계에서 총매출 1000억달러를 돌파한 콘텐츠다. 유일하다. 1996년 게임보이용 게임으로 첫선을 보였다. 게임보이는 콜손 게임기를 말한다. 2022년 현재까지 모두 898마리가 창작됐다. 세계관은 단순하고 평면적이다. 디즈니의 마블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곤 해도 매출 기준으로 보자면 전 세계를 사로잡은 콘텐츠 1위는 포켓몬스터이다. 그래, 너로 정했다.

898마리엔 하나하나 비밀이 있다. 아무리 소비해도 소비해도 끝이 안 날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일단 사랑에 빠지면 계속해서 돈을 쓸 수 있다. 장르도 콘솔용 게임부터 카드 게임에 이어 애니메이션까지 너무나 다양하다.

한국 시장에서도 포켓몬의 역사는 유구하다. 1999SBS를 통해 TV용 애니메이션으로 국내 시청자들을 만났다. 당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었던 시청자들은 이제 구매력을 가진 2030세대가 됐다. 이른바 MZ세대는 포켓몬세대다. 1999년 당시 국찐이빵이라는 캐릭터 빵으로 도산 위기에서 벗어났던 삼립식품은 포켓몬스터의 가능성을 빠르게 인지하고 포켓몬 빵을 출시했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지금의 SPC삼립이다.

SPC삼립은 16년만에 포켓몬빵을 재출시했다. 이렇게까지 인기를 얻으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6년전 1020이었던 2022년의 2030소비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SPC삼립은 16년만에 포켓몬빵을 재출시했다. 이렇게까지 인기를 얻으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6년전 1020이었던 2022년의 2030소비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MZ세대는 오래된 곳을 찾아다닌다. M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다. 오래된 아날로그 세상은 MZ세대에게 일종의 비일상의 감각을 제공하는 곳들이다. 덕분에 을지로 주변의 노포들은 힙지로가 됐다. 동묘 앞 중고 시장에 청년들이 몰린다. 이들이 소비하는 또 다른 레트로가 있다. 바로 그들의 유년이다. 2020년에 MZ세대는 30년 만에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소환했다. 음악 스트리밍 앱에는 1990년대생과 2000년대생이 어린 시절 들었던 가요를 모아 둔 플레이리스트가 넘친다.

우리의 두뇌는 과거의 경험들을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기억하도록 설계돼 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자기 방어 기제다. 적당히 필터를 끼운 기억은 추억이 된다. 이 추억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덮어버린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형성된 적응 기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년에 우리가 누렸던 것을 다시 소비하고자 하는 소비 욕구를 갖게 된다. 어른이 되기 이전에 걱정 없이 행복했던 그 시절을 맛보고자 하는 심리다.

게다가 포켓몬처럼 세월을 돌파해서 지금까지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라면 더 할 나위 없다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 진리다. 포켓몬의 띠부띠부씰은 동세대의 이런 소비 공감각을 자극한다.

포켓몬은 엄마와 아빠는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나와 내 또래의 친구들끼리만 공유하는 존재들이다. 게다가 어린 시절 몹시도 갖고 싶어 했다. 그것을 이제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용돈으로 생활하는 어린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용돈을 주는 어른도 아니다.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서 멈춰선 어른이다.

1500원은 큰 돈이 아니다. 편의점 몇 군데 발품을 팔 정도의 가치는 있다. 잘 팔린다는 소문이 돌더니 이제는 품절 대란이다. 그걸 나만 갖는다면 또래의 영웅이 될 수 있다. 내 친구들 모두가 지금도 갖고 싶어 하는 아이템이 됐기 때문이다. 매력은 더욱 치솟는다. 당근마켓에 4만원짜리 매물이 올라오는 현상은 이렇게 설명된다. 우리는 특별해지고 싶다. 포켓몬 띠부띠부실은 또래 사이에서 특별해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미국의 매체 <폴리티코>코로나19로 인해 대중들이 기분전환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시기이다. 경제도 팍팍하다. 자기 위안형 소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심리상담 앱 등이 주목받고 있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힘들지?” 이건 MZ세대의 시대정신이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비대면에서 오는 외로움을 많은 이들이 함께 공감해 줄 추억거리를 소비하면서 희석하는 효과도 있다. 누군가는 백화점 명품관에서 보복소비를 한다. 누군가는 편의점 빵코너에서 멘탈데믹을 한다. 둘 다 목적은 기분전환이다. 팬데믹은 정신을 황폐화하는 멘탈데믹이다. 멘탈데믹은 다시 멘탈이코노미로 이어진다.

그런데 요즘 포켓몬빵의 인기를 가만히 뜯어보면 이건 애정이라기보단 집착에 가까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연히 제품을 발견하면 기쁜 마음으로 구매해 띠부띠부씰을 확인하며 추억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캐릭터 스티커를 수집하거나 나아가 전체 캐릭터를 다 모으고자 하는 본격적인 콜렉터도 있는 것이다. 포켓몬빵 사냥꾼들이다.

제조사의 발표에 따르면 포켓몬스터 캐릭터 띠부씰은 총 159종이다. 어떤 포켓몬 씰이 들어있는지 확인하느라 진열된 빵을 훼손하는 사례가 제보된다. 빵을 상자째로 사서 띠부띠부씰만 챙기고 버렸다는 후기도 있다. 원하는 씰을 찾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왔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후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과열 현상이다.

 

띠부띠부씰 한정판의 유혹

이쯤 되면 소비의 영역을 넘어섰다. 이미 게임이다. 우리의 뇌는 목표 달성 직전에 안타깝게 실패했을 때 도파민 분비가 급증한다. 게임 중독이 발생하는 원리다. 포켓몬 띠부띠부씰 획득 작전도 마찬가지다. 분명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정작 간절하게 원하는 캐릭터는 도저히 가질 수 없다. 도박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이 따라붙는 랜덤박스 즉 확률형 아이템에 베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구매행위이다.

발품을 팔고 돈을 들여 마침내 그것을 획득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비로소 뚜렷한 보상을 인지하게 된다. SPC삼립이 만드는 건 빵이 아니다. 898마리 포켓몬 띠부띠부씰을 모두 모을 수 있는 확률은 불가능하진 않지만 쉽지는 않은 확률로 돌리고 돌리는 한 판 게임이다.

이 제품은 지난 224일 발매한 이래 약 2주 만에 350만개가 팔렸다. 이 놀라운 판매량은, 한정판의 매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제조사의 전략이 한몫을 한 결과다. 현재 일반적인 편의점은 매일 2개 정도밖에 물량 확보를 못한다. 더 찍어내지 못해서 팔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안 찍어내서 잘 팔리는 결과이다. 한정판의 힘이다.

한정판 포켓몬빵에 힘입어 주가도 급등했다. SPC 삼립의 주가는 3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318일 현재 종가는 94600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호재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팬데믹으로 활로를 찾지 못했던 대량 식자재 공급 사업 부문도 포켓몬빵 덕분에 활기를 되찾았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 투자를 감행했다 손실만 커졌던 가평휴게소 등의 실적 반등도 기대된다. 1500원짜리 빵이지만 매출은 물론 기업 마케팅에도 적잖은 역할을 했다.

사실 SPC삼립은 거버넌스 위기를 겪어 왔다. SPC그룹은 승계를 위해 통행세 거래를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647억원의 과징금까지 부과받았다. 최근에는 던킨도너츠 생산공장의 위생 상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포켓몬빵에 열광하는 MZ세대 소비자들이 극도로 불편해하는 경영 형태다.

이른바 가치소비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요즘의 소비트렌드를 생각하면 위험 요소다. 포켓몬빵이 MZ세대가 가진 SPC에 대한 관심을 키울수록 리스크는 커질 수 있다. 게다가 식품의 경우 이런 이미지 때문에 소비자의 선택이 바뀌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남양유업이 그랬다. 최근 한성식품이 겪고 있는 썩은 김치 사태가 그랬다.

게다가 SPC그룹의 포켓몬 띠부띠부씰은 로열티를 주고 빌려오는 콘텐츠에 불과하다. 정확한 로열티 금액은 대외비다. 업계의 관행에 따르면 약 10퍼센트 안팎으로 추정된다. 물론 아주 오랫동안 매력적인 상품이었고 당분간은 그럴테지만 분명 자체 콘텐츠는 아니다. 이것이 단기간의 매출 상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경쟁력이 되려면 콘텐츠가 자기 것이어야 한다. 자신의 스토리가 필요한 것이다.

 

대박 비결은 그들만의 스토리

반면 빙그레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20202월 빙그레의 공식 인스타 계정에 등장한 이후 독자적인 세계관을 펼쳐오고 있는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짐이라는 캐릭터가 빙그레의 스토리이다. 빙그레는 2년 넘게 이 마케팅을 지속하고 있다. 내부 평가가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다.

처음엔 가벼운 농담 같았던 캐릭터들의 나열이 보면 볼수록 과몰입을 유도한다. 물론 이 마케팅의 가격 대비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러한 전략이 빙그레를 특별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마켓컬리도 마찬가지다. 새벽 배송이 컬리 성공의 주요 요인인건 맞다. 각 상품 상세 페이지에 펼쳐지는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이야기가 있는 특별한 소비 경험을 만들어낸 전략도 중요했다.

토마토를 구매하는 일상을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부산 대저동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특별한 토마토를 만끽하는 경험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마켓컬리에는 스토리텔링만을 위해 20여 명의 전문 에디터가 일하고 있다.

포켓몬빵 띠부띠부씰 현상은 혁신이 아닌 것을 혁신적으로 팔아 치우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익숙한 제품에는 특별한 스토리를 입혀야 한다. 기본적인 소비재는 넘쳐나는 세상이다. 품질도 기준 미달은 찾아보기 힘들다. 재화의 부족함과 거리가 먼 MZ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질릴 만큼 많은 콜라보와 한정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제 콜라보와 한정판도 시시하다. 당연한 것을 특별하게 팔고자 할 때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MZ세대는 소비를 통해 스스로를 입증하는 세대다. 소비를 통해 행복을 구매하는 세대다. 그래서 그들만의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최근 SPC그룹은 그 답을 섹터나인에서 찾고 있다. 섹터나인은 지난 20211월 출범한 SPC의 토탈 마케팅 솔루션 계열사다. 해피포인트를 활용한 NFT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메타버스 공간에서 베스킨라빈스 매장을 오픈하는 등 적극적으로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마케팅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롯데슈퍼와의 제휴를 통해 즉시 배송 서비스를 론칭하거나 무인매장을 선보이는 등 유통 면에서도 혁신을 시도한다.

SPC를 재발견하게 만든 포켓몬빵 현상도 그런 성과 가운데 하나다. 중요한 건 맛이 아니다. 특별하고 각별한 소비자 경험이다.

 

- 신기주 북저널리즘 콘텐츠총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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