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호(편의점주·작가)
봉달호(편의점주·작가)

단테의 신곡에 지옥은 모두 9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땅속 얕은 곳에 있는 첫 지옥으로부터 깊이 내려갈수록 더욱 참혹한 지옥이 펼쳐진다. 직장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서 요즘 내 상황을 말하자면, 마지막 아홉 번째 지옥에 도착해 지옥의 왕이라는 루시퍼까지 만났는데 다시 열 번째 문을 열어 보이며 여기가 끝인 줄 알았어?”라고 묻는 꼴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한지도 벌써 2년여. 그간 과정을 거치며 체득한 나름의 성과(?)가 있다면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이보다 힘든 일이 있겠어?”라는 역설적 희망이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이러니한 자신감이 생겼다. 실수였다. 그것은 분명 이보다 힘든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잘못된 전제에 근거한 오만과 낙관이었다. ‘오미크론이라는 새로운 지옥의 문이 열렸다. 단테는 상상력이 짧았다. 그 정도가 지옥인 줄 알았어?

코로나19가 시작하자 편의점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 오미크론 대유행이 시작하자 거기서 다시 절반이 줄었다. 2년 전에 비해 4분의 1토막이 난 것이다. 두 달 전 나는 2년 전 나를 부러워했다. 지금의 나는 차라리 두 달 전 나를 부러워한다. 이런 것이 과연 인간인가 보다.

이런 상황에 포켓몬 빵이라는 제품이 폭발적 유행이다. 들어오는 손님마다 포켓몬 빵 없어요?”라고 묻는다. 묻고 답하길 스무 번쯤 반복하다 지겨워 가게 앞에 큼지막하게 써 붙여 놓는다. “포켓몬 빵 없습니다!” 누군가는 추억의 빵을 찾으러 편의점을 스무 곳쯤 순례하는 사이, 누군가는 직원들 월급 주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마지막 대출의 기회를 찾으러 금융기관을 스무 곳쯤 돌아본다. 갑자기 왜 이렇게 사람들이 포켓몬 빵에 열광하는 것일까 곰곰 생각해보니, 그만큼 살기 힘든가 보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죽 삶이 팍팍했으면 어릴 적 먹던 빵에 들어 있는 스티커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일까?

이른바 ‘K-방역과 관련해 요즘 상황을 보면 옛날 한국 축구가 떠오른다는 친구가 있다. 전반에는 집중력을 발휘해 선방하다가, 후반에 갈수록 기력을 상실해, 어느 순간 방어선이 무너지더니 대량 실점으로 이어지던 아픈 기억 말이다. 전혀 틀린 비유는 아니라는 생각에 허망하게 웃었다. 2년 간 확진자가 100만명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자랑으로 여겼는데, 최근 2달 동안 900만명 확진자가 쏟아졌으니, 서글프고도 참담하다. 마스크 열심히 쓰고 방역수칙 철저히 지키면서 영업시간 제한, 사적 모임 금지 조치까지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써 차분히 받아들였는데, 그동안 고생했던 건 다 무엇이었는지 허탈해진다. 연일 전 세계 확진자 순위 1위를 기록하는 중이다.

방역 당국은 이것을 엔데믹(endemic)’이라고 설명한다. 정점을 찍고, 넓고 얕은 수준으로 확산하다가, 점차 소멸할 것이라 전망한다. 그러니 크게 동요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제발 그러기를 소원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조금만 지나면 터널의 끝이라는 숱한 기대에 좌절했던 2년이었기에 지금은 오히려 담담한 마음마저 있다. 희망이 사라져, 희망을 희망할 수 있게 됐다.

점심 먹으러 옆 건물에 갔더니 지하 식당가에 불이 꺼진 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붙인 점포가 여럿 눈에 띄었다. “포켓몬 빵 없습니다!”라고 무릇 투정하는 쪽지를 휘갈겼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몇 달만 지나면 나도 저런 작별의 인사를 편의점 입구에 붙이게 되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엄습한다.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가장 먼저 해결해주겠다고 대통령 당선인은 약속했다.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길 소원한다. 추경예산이 통과하고, 손실보상부터 신속히 집행하길 기대한다. 모두가 힘든 시기라지만, 지금 일선에서 사업과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상이다. 어느 순간엔가 힘내!”라는 말마저 진부하게 다가오는 세상이 됐다. 그럼에도 마음속으로는 계속 힘내자!”, 자신에게 나지막이 다독인다. 그 용기가 우리 모두를 일으켜 세우리라. 모란꽃 필 무렵에는 활기찬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우리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고있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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