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재를 활용하는 소비재 기업들의 친환경 행보가 늘고 있다. 공병을 가져오면 샴푸·바디클렌저 등을 필요한 만큼 소분해서 구매할 수 있는 리필전용 매장, 택배 배송 시 활용되는 비닐 완충재의 대체재로 활용되는 벌집모양 종이에어캡, 다 쓴 화장품 용기를 씻어 반납하면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매장까지. ESG 경영과 소비자들의 친환경 가치추구가 기업의 경영전략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의 자발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는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환경부는 플라스틱·유리··종이 소재 용기 및 포장재를 활용하는 화장품·식품·의약품 등 주요 소비재 제품 생산자에게 재활용 부과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2003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이미 재활용 의무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18년에 포장재 재질·구조평가기준을 마련한데 이어, 작년 12월에는 포장재의 색상·두께·포장무게비율기준까지 추가로 만들어 평가하겠다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더욱이 세부기준은 고시 규정 사항이라 어느 정도의 규제가 될지 기업들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태이다.

포장재 폐기물 발생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자는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세부 기준의 예시조차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부터 개정하고 하위 고시에서 세부 내용을 업계와 소통하며 정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사후약방문이나 다름없다.

업계는 황당할 따름이다. 기업들은 제품의 물성, 성분, 유통방법 등 다양한 특성에 맞는 포장재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를 모두 고려한 기준 제시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포장재의 두께와 색상은 디자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내용물의 품질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보호 장치이기도 하다. 제품에 따라 빛 차단이 필요할 수도 있고, 발효로 인한 부피 변동이 생기는 등 자칫 잘못된 기준이 제시됐다간 내용물의 변질과 배송 중 파손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포장재 기준이 과연 환경부에서 단독으로 제시가 가능한 사안인지 의문마저 생긴다.

제품 용기의 색상·두께 등을 바꾸게 되는 경우 디자인·금형 등의 추가비용 발생과 기업의 창의성 훼손에 따른 경쟁력 저해가 우려된다. 특히 수출기업들은 국내 포장재 기준이 달라지면 디자인부터 생산라인까지 내수용과 수출용을 구분해야하는데, 이는 당장 중소기업에게 막대한 비용부담을 발생시켜 수출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정부의 규제만능주의적발상이다. 정부가 포장재의 색상·두께·무게 기준을 일일이 제시하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정부가 자체 개발여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을 대신해 재활용이 용이하면서도 제품의 편리성과 안전성을 보장하는 포장재를 개발하고, 보급·확산에 힘쓴다면 기업들의 비용부담을 덜면서도 친환경 포장재 활용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금번 환경부의 포장재 정책과 같이 지원과 상호소통이 배제된 일방적 규제 법안은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불필요한 기업규제를 빗대 모래주머니를 달고 운동선수에게 메달을 따오라 한 것이라고 언급하며, “신발 속 돌멩이 같은 불필요한 규제들을 빼내 기업들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힘껏 달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강조해 기업인들의 큰 공감과 기대를 얻은 바 있다.

민간주도 경제를 정책기조로 삼겠다고 선언한 새 정부에서는 포장재 규제와 같이 기업의 발목을 잡는 신발 속 돌멩이 규제는 과감히 철폐하고 시장과 기업의 자발적 변화를 유도하는 지원정책이 다수 탄생하길 중소기업들은 한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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