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바다에 사실 먹을 게 확 줄어든다. 바다는 겨울에 좋다. 봄 도다리 쑥국이니 하는 것도 달리 좋은 해물이 적은 시절이라 유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고등어도, 삼치도 다 맛이 빠진다. 조개 정도나 봄이 돼야 맛이 올라온다.

봄은 미더덕과 멍게의 철이다. 미더덕이 빠르고, 멍게는 늦봄부터 제철이 된다. 미더덕은 찜이나 탕에 넣는다. 찜으로 많이들 드신다. 해물찜이나 아귀찜에 빠지지 않는 조연이다. 오만둥이가 등장할 때가 더 많다. 미더덕보다 대부분은 오만둥이다. 미더덕찜이라고 파는 음식에도 실은 오만둥이가 들어간 경우가 더 많다. 주인이 모르고 팔기도 하지만, 관례로 치기도 한다. 비슷하게 생겼다. 미더덕이 훨씬 비싸다. 둘은 어쨌거나 바다의 천덕꾸러기().

30년 전쯤 학사주점 같은 허름한 술집에서는 동태찌개, 김치찌개와 함께 가장 흔한 메뉴로 해물잡탕을 팔았다. 이때 오만둥이가 많이 들어갔다. 남쪽 바다에서 그물로 걸면 잔뜩 나오는 놈이었다. 의외로 끓여놓으면 국물이 시원했고, 씹어도 문제없었다. 그때도 별 대우를 못 받던 것이 미더덕이다.

오만둥이는 오만 곳에 다 붙어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미더덕은 물을 뜻하는 에 더덕처럼 생겼다고 해서 미더덕이다. 문제는 이 더덕처럼 생긴 몸통이다. 딱딱해서 씹히지 않는다. 오만둥이는 나름 졸깃하게 씹히는 표피 덕에 그럭저럭 쓸모를 찾았지만, 미더덕은 오랫동안 천덕꾸러기였다. 양식장에서 괜히 어물이나 잡아먹는 해충(?) 대우를 받았다. 요즘은 창원(옛 마산) 진동면 앞바다에 많이 살아서 주산지가 됐지만 남해안 아곳저곳에서 사는 놈이다.

5~6월이면 멍게철이다. 그 전에 바다에서 미더덕을 건져올려 버려야 했다. 멍게가 자라 수확하는 데 방해가 되는 놈이었다. 한데 남해 바다에서 아는 사람은 알았다. 미더덕 맛은 좋았다. 오만둥이처럼 껍질째 씹지는 못하지만 살을 끄집어내면 오만둥이와 달리 향긋하고 알싸한 연한 살점이 일품이었다. 멍게와 비슷하지만 더 여리고 은은했다. 문제는 멍게처럼 살점이 넉넉해서 먹잘 게 많은 종이 아니었다.

그러던 날, 미더덕에도 볕이 들었다. 사람들이 바다 별미를 찾는 시대가 왔다. 자가용을 가지고 별미 찾아 가는 게 새로운 시대의 각광이었다. 80년대의 일이다. 미더덕 껍질을 까는 기술이 생겼다. 칼을 단단히 쥐고, 돌려깎기하면 비교적 잘 벗겨졌다. 더덕처럼 단단한 껍질을 벗겨내면 찜으로, 회로 팔 수 있었다. 아는 사람만 힘들게 껍질을 까서 찜과 회를 먹었는데 명물이 됐다.

몇 해 전에 진동면에 가서 따라해 보았다. 간단해 보였는데,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슥슥 벗겨지는 것 같은데,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무엇보다 벗기다가 안쪽의 연한 막을 건드리면 ~ 파이. 물이 새서 모양이 망가지면 팔 수 없다. 한 자루씩 까야 돈이 되는데, 그 정도 하고 나면 초짜는 손가락에 물집이 잡힌다. 속도도 나지 않는다. 인내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노동이다. 미더덕 까는 일은 그 중에서 상질이다. 아주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순전히 벗기는 수고의 값이 미더덕 값이다.

오만둥이와 미더덕은 비슷해 보이고, 바닷속에서 경쟁하겠지만 그럭저럭 사이좋게 사는 것 같다. 철이 달라서다. 미더덕은 4월에 시작해서 5월되면 얼추 철이 끝난다. 현지 어민 말로는 더워지면 녹아버린. 오만둥이는 가을부터 겨울이 제철이다. 미더덕은 얼려서 쓰기 힘들지만, 오만둥이는 사철 얼려두고 언제든 구할 수 있다. 물론 찬바람이 불어야 제철인 건 당연하다.

차를 몰고 남해안을 드라이브하는 기회가 있으면 진동면에 가보시라. 한가한 어촌이, 이 맘 때면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 다 미더덕 때문이다. 천덕꾸러기에서 마을을 먹여 살리는 존재가 됐다. 미더덕 팔자 모를 일이다.

해물찜이나 미더덕찜을 먹을 때 미더덕을 씹어서 안에 든 체액을 터뜨리는 재미가 있다. 특유의 향이 퍼진다. 체액이 일부 섞여 있긴 하지만 실은 대부분 바닷물이다. 요리할 때 뜨겁게 데워져 있어서 함부로 씹으면 입천장이 벗겨진다. 현지에 가면 회를 많이 먹는다. 아슬아슬하게 여리고 순한 속살을 까서 내준다. 통깨를 술술 뿌려 내는 경우가 많다. 입에 머금고 있다가 소주를 한 잔 마시면 향이 고루 퍼진다. 멍게처럼 살점이 많이 않아 비싸게 여겨지지만, 앞서 말한 벗기는 수고를 생각해보라.

그나저나 어촌에 일할 사람이 없다. 누가 이제 미더덕을 벗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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