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침해 시 법적대응력도 취약해
현장기술력 지표화 자료 유출 우려
정부, 중소기업 호소에 답해야 할 때

서승원(중소기업중앙회 前 상근부회장)
서승원(중소기업중앙회 前 상근부회장)

삼십 년을 넘게 중소기업으로 밥을 먹고 살았다. 공직생활을 하며 오롯이 중소기업 정책을 기획하거나 집행했다. 학교에 있으면서 벤처기업에 대해 강의했다. 저술한 몇 권의 책들과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도 모두 중소기업에 관련된 내용들이다.

국회에서 잠시 머물 때도 중소기업 관련 입법사항을 다뤘다. 중소기업중앙회에 있으면서는 단 하루도 중소기업인을 만나지 않은 날이 없다. 눈치 챘겠지만 사실 지금 이 글도 중소기업에서 일어나는 현장이야기다. 이만하면 중소기업 덕분에 밥 먹고 산 것을 넘어 중소기업에 대해 꽤 안다고 나름 자부할 만하다.

요즘 들어 이런 자부들이 오만과 편견이란 생각이 든다. 현역에서 물러나 자연인으로서 중소기업인을 만나는 일이 많아지면서다. 며칠전 오래 알고 지내던 중소기업인들을 만났다. 봄날 격의 없는 대화가 이어졌는데 선한 목적으로 만든 중소기업 정책들이 현장에서 왜곡되거나 부작용을 낳는 사례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기에 깜짝 놀랐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허허롭게 픽 웃고 만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현직에 있는 사람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게다.

그중 하나가 중소기업 특허이야기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보호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술개발의 성과물을 특허로 내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중소기업인들은 원천 특허나 특허에 대한 방어권을 확실히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특허를 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만들 때 일본차를 분석해보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보고 나서도 자동차의 어느 부분을 잘 만들어야 하는지 도저히 알지 못해 숱한 고생을 했다고 해요.” 다른 기업인의 말. “중소기업 기술력은 생산현장에서 나오고 대부분 암묵지 형태로 있지요. 중소기업이 기술력을 특허로 만들기 위해서는 암묵지를 모두 지표화 하고 설명해야 하는데 그런 자료가 상대방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암묵지로 있으면 아무리 옆에서 봐도 따라하기조차 힘든데 특허 낸다고 자세히 기술하면 오히려 보고 베끼라고 알려주는 꼴밖에 안돼요.” 또 다른 기업인의 말. “삼성 같은 대기업이 특허를 침해해 분쟁이 일어나면 중소기업이 이길 수 있겠어요? SKLG가 미국에서 소송하고 카이스트가 삼성에 대해 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겠어요?” 옆 자리에 앉았던 연구원도 한마디 거든다. “건실한 중소기업들이 정부의 특허나 R&D자금 신청을 왜 안하는지 아세요? 자금 준다고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이 세상에서 없는 기술만을 개발하라는데 그런 게 어디 흔히 있나요? 중소기업은 현장에서 생산 활동을 하며 개량하고 공법을 개선하는 게 주요한 R&D인데 이런 거 한다고 하면 전혀 평가를 안해줘요. 그러니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포장해 선정되기 쉽도록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제안서 작성을 맡기기도 하죠.”

이들의 하소연을 요약하면 중소기업의 기술력은 대부분 생산현장에서 제조나 가공경쟁력에서 나오는데 이를 특허화 하려면 중요한 부분을 자세히 기술할 수밖에 없어 오히려 경쟁사나 대기업에 알려주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개발을 위해 정부자금을 이용하려면 평가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생산현장 개선 제안은 평가과정에서 대부분 떨어지기 쉬워 아예 신청도 안한다는 것이다. 설령 중소기업이 출원해서 특허가 등록되더라도 경쟁사나 대기업에서 마음먹고 특허를 침해할 경우 법적 대응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은 특허를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다.

봄날 함께 한 지인들의 거침없는 특허 이야기는 다는 아니더라도 일리 있게 들렸다. 현직에 있으면서 중소기업이 대기업 등으로부터 억울하게 특허침해를 당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고, 일부 기업들은 어렵더라도 정부에 손 벌리지 않고 자기 돈으로 R&D하는 것도 많이 보아왔다. 사실 정부가 중소기업이 특허를 출원하도록 권장하고 지원하는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특허보호를 위한 보다 엄격한 조치도 함께 병행돼야 실효성이 있다. 예를 들어 기존 특허내용의 70% 정도를 베끼면 무조건 침해로 보도록 해 철저하게 보호해 주거나 대기업의 특허침해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는 것은 어떠한가. 중소기업들의 하소연이 그저 봄날의 한담이 되지 않도록 공무원들이 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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