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원자잿값·납품단가 이중고…‘V자 협곡’에 갇힌 中企
김기문 회장,제값받기 요원, 양극화 더욱 심화.. 상생 노력하는 ‘착한 대기업’ 강조
윌리 시 교수, 기업자율만으론 공정거래 한계..美대기업 일방적 갑질 정면 비판
요시 셰피 교수, 대기업에 “협력사 손실 보전” 충고..자재조달·주문량 약속 등도 역설

최저 가격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납품업체(suppliers)들을 서로 경쟁시킨다. 표준 매뉴얼을 들이대며 다른 업체를 알아보겠다는 끊임없이 위협을 하거나 더 낮은 가격으로 납품하지 않으면 앞으로 일감은 없다고 압박하고 있다.”

윌리 시(Willy C. Shih)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지난 211일 미국 경영전문지 포브스(Forbes)에 기고한 칼럼*의 일부 내용이다.

요즘 미국의 원·하청 생태계가 심상치 않다. 윌리 시 교수는 납품 중소기업 비중이 많은 미국의 자동차·산업장비 제조 분야에서 대기업의 갑질이 극심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그는 대기업의 일방적인 갑질 방식은 집요하고 악랄해지고 있다고 꼬집는다. 그는 계약서에 약속한 납품시간을 지키지 못하거나 납품업체의 생산라인이 중단되는 경우 1분당 수천 달러의 벌금 등 징벌적 조건을 포함하고 있다반대로 코로나19와 같이 갑작스러운 수요 감소가 발생하면 (대기업은 납품업체에) 하루 전 주문량을 줄이는 통보를 하면서 이에 따른 손실 보상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윌리 시 교수는 글로벌 공급망(GVC) 관리 분야의 석학으로 제조·공급망에 대한 날카로운 식견의 칼럼으로 유명하다.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 전에는 28년간 산업계에서 디자인, 제조, 판매 비즈니스를 두루 경험했다.

 

서도 공급망피해 中企에 전가

윌리 시 교수는 지난 46일 미국 경영전문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불확실한 시대에 대기업은 납품업체를 돌봐야 한다’**는 칼럼을 게재하며 고통 받는 납품업체의 실상을 고발했다.

한 익명의 납품 중소기업 CEO는 플라스틱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했던 석유화학 기반 수지 가격이 작년에 두 배나 올랐고 회사 제품 비용의 40~50%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한 자릿수 마진(수익)으로 원자재 비용 증가분을 흡수할 능력이 없었지만, 이러한 비용 증가분은 원청 기업에게 부담을 요구할 수 없었다. 원청(대기업)이 만나는 것조차 거부하고, 고정 가격 계약 이행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스텔란티스(Stellantis, 피아트 크라이슬러 그룹, PSA 그룹이 합병한 다국적 자동차 회사)가 새로운 구매 계약 기준을 발표하면서 미국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직격했다.

그는 “(스텔란티스의 새로운 구매계약 기준은) 감염병 대유행, 악천후, 지진 또는 천재지변 등 모든 미래의 사건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간주한다는 선언이라며 납품업체는 이러한 상황에도 중단 없이 납품할 충분한 재고를 보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일갈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경제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터무니없는 사건들이다.

도대체 전 세계 공급망 시장에서 원청 대기업들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국내외 대기업들이 앞 다퉈 원자재 조달 전략과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재설계하고 있다.

과거 공급망 생태계의 특징인 국제 무역의 꾸준한 성장 다소 약한 인플레이션 안정적인 원자재 및 물류 비용 등의 요인들이 모두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한 시대에 대기업의 이기적인 태세 전환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납품업체(lower-tier)인 중소기업에게만 돌아가는 실정이다.

 

팬데믹 속 대기업은 성과급 잔치

한국과 미국의 경제 및 산업구조에 큰 격차가 있기 때문에 단적으로 미국의 공급망 불안 현상을 한국의 구조적 병폐 요인으로 상대 분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납품단가의 제값을 못 받고 있는 상황은 양국이 꼭 닮았다.

그나마 미국에선 최근에서야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 문제가 심화되고 있지만 한국에선 수십 년 전부터 제기된 큰 골칫거리다.

한국이 유독 대·中企 납품단가 문제가 심각한 것은 과거 산업화 시절부터 추진된 대기업 중심의 산업정책 영향이 컸다. 그동안 원·하청 기업 간 불공정 거래 관행을 제대로 뿌리 뽑겠다는 정부도 없었다.

결국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제값받기는 요원해졌고 대·중소기업 간의 이익·임금·생산성 등의 양극화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한 수준으로 벌어지게 됐다. 일부 대기업을 통해 달성한 눈부신 경제성장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성적표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지난 11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위한 기자회견을 통해 이러한 한국경제의 본질적 문제를 정면 비판했다.

김기문 회장은 제가 중기중앙회장을 시작했던 2007년에도 납품단가는 가장 큰 문제였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라며 이 문제만 해결되면 중소기업 문제의 절반 이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대기업은 코로나 팬데믹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역대급 성과금 잔치를 하고 있다. 반면에 중소기업은 공장 문을 닫는 등의 폐업을 걱정해야 하는 천당과 지옥의 온도차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코스피 대기업들의 영업이익은 2005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인 184조원을 육박한 반면에 올해 중소기업 영업이익은 원자재 가격 여파로 최대 15%나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중소벤처기업연구원)까지 나오면서 중소기업계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납품할수록 손해라고 울부짖는 중소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본지가 지난 4일 보도(2354·3)러시아발 원자재 공급망 불안 직격탄 맞은 레미콘 업계제하의 기사에서도 후방산업인 시멘트 대기업과 전방산업인 건설 대기업 사이에 낀 레미콘 중소기업이 유연탄 인상분을 홀로 떠안으면서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을 지적한 바 있다.

중소기업계 현장에선 각종 대외 변수에도 꿈쩍 않는 납품단가의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호소한다.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정한성 한국파스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지난해 한해 원자재 값이 세 차례나 올랐는데 납품단가에 대해서는 계속 미뤄졌다이미 수주한 물량은 적자를 보면서 생산하고 납품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은 대기업이 다른 업체와 계약해버릴 수 있기 때문에 하청 업체는 어떠한 가격요구도 못하고 손해를 볼 걸 알면서도 대기업의 단가를 맞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중소기업이 ‘V’자형 협곡에 갇혔다고 설명한다. 그는 대기업인 소재 공급업체가 높은 가격에 원자재를 중소기업에 팔아넘기고, 중소기업은 손해를 감수하고 다시 대기업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납품하는 ‘V’자형 협곡이 깊어졌고 중소기업은 그 안에 갇혀 있다천정부지로 치솟는 원자재값 부담은 모두 중소기업들이 감당하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경제3불 해소 위해 상생위 설치 시급

코로나 팬데믹과 글로벌 원자재값 폭등이 겹치면서 미국에서조차 대기업의 하도급 갑질이 심화되는 것과 관련해 우리 중소기업계는 기업과 시장 논리에 모든 걸 맡기는 자유시장 중심 경제정책의 실패와 그 폐해를 우려한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계는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기업 주도 성장 경제정책을 표방하면서 대기업의 성장과 지원에 무게를 주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이럴 때일수록 납품단가의 현실화를 빨리 제도화해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한 최소 보호 장치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중기중앙회는 ·중소기업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대통령 직속 상생위원회 설치를 윤석열 당선인에게 국정 과제로 직접 건의했으며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긍정적인 화답을 받은 바 있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재료 가격이 3% 이상 오르면 납품 단가에 반드시 반영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이와 함께 상생위원회는 중소기업계가 요구하는 경제3(거래의 불공정, 시장의 불균형, 제도의 불합리) 해소를 위한 부처협업과 정책 심의·조정 기구다.

특히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에 대해서는 글로벌 공급망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요시 셰피(Yossi Sheffi) MIT 교수도 <중소기업뉴스>를 통해 긍정적인 평가를 한 바 있다.

본지가 지난 124일 보도(2345·13)MIT 교수, 납품단가 연동제 필요성 제기제하의 기사에서 요시 셰피 교수는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라 이를 헷지(hedge)할 방법이 없는 중소기업을 위해 더 강한 회사(대기업)가 납품가격을 일부 현실화하거나 연동해 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답변을 했다.

무엇보다 요시 셰피 교수는 불안정한 글로벌 공급망 시장은 각자도생 보다 상생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대기업들에게 위협받는 파트너를 지원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요시 셰피 교수는 지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동안 더 강한 회사는 더 나은 신용 등급을 사용해 곤경에 처한 공급 및 협력업체를 위한 대출을 확보했다이들을 대신해 핵심 자재를 조달하거나, 주문량에 대한 약속을 제공하기도 했다는 실제 미국의 기업간 상생 극복 사례를 언급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도 요시 셰피 교수가 강한 회사의 상생 노력이 중요하다는 개념과 연계된 착한 대기업의 역할론을 피력했다.

김기문 회장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일부 (한국) 대기업은 원자재 가격이 올라가면 추후 손실을 보전해주거나, 원자재를 직접 공급해주는 착한 대기업이 있다하지만 그렇지 못한 대기업들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자발적인 대·중소기업 상생 문화가 정착될 때까지 법으로 규정하는 납품단가 연동제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게 김기문 회장의 지론이다.

윌리 시 하버드대 교수도 김기문 회장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윌리 시 교수는 앞서 포브스칼럼을 통해 대기업들은 소규모 국내 납품업체가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지, 그리고 공급망의 건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그 이익의 일부를 투자해야 하는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이렇게 한다면 앞으로 피할 수 없는 위기가 닥칠 때 그 회사들은 여전히 함께 하며 비즈니스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원제 : The Detroit Automakers Should Worry About The Smaller Companies In Their Supply Chains(대기업은 공급망에서 작은 회사들을 걱정해야 한다) / Feb 11, 2022. forbes

**원제 : In Uncertain Times, Big Companies Need to Take Care of Their Suppliers / April 06, 2022. HBR

 

- 이권진 기자·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 번역 도움 : 류종기 RIMS 리스크관리협회 한국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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