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는 상존하는 보편적 가치
국내외 산업계 변수로 자리매김
비용 부담에도 ESG실천은 대세
中企도 방관말고 선제대응 필요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총장)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총장)

기업은 생물이다. 법인으로 등록되면 인격(人格)으로 태어나고 성장해서 성숙기를 지나면 쇠퇴하고 생을 마감한다. 100년쯤 생존하면 그때부턴 장수기업이라고 한다. 기업의 역사가 짧고 경영승계에 제약이 많은 우리나라엔 백년기업이 열 개도 안 되지만 독일이나 일본, 미국엔 수천개나 된다.

건강하게 장수하려면, 타고난 체질만큼 중요한 게 또 있다. 사업의 환경이다. 잘 나가는 기업이라도 경쟁자가 나타나고 고객이 변심하면 언제든 위험에 빠진다. 새로운 법·제도와 거시경제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환경변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 변수가 등장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수익성에 매몰돼 지구 환경과 인류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마침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에 참여해 달라.” 2004년 코피 아난 전 UN 사무총장은 투자업계에 동참을 요청했다. 투자의 역할을 촉구하는 보고서 누가 이기는가(Who Cares Wins)’도 발간했다. ‘ESG’라는 신조어는 이렇게 세상에 등장했다. ESG는 기업에 투자할 때 고려되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등의 비재무적 요소들이다. 재무적 요소만 보는 투자의 평가에 새로운 변수가 추가된 것이다. 글로벌 금융업계가 이 변화에 속속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ESG는 새로운 개념인가? ESG는 기업이 당연히 이행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표현이다. 늘 제기돼온 환경 보호와 사회적 문제, 투명 경영에 대한 요구가 강화된 것뿐이다.

산업계가 이젠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예전과 다르다. 2006년 발표된 UN의 책임투자원칙(PRI)에는 투자기업이 책임투자를 실천하고, 활동과 성과를 보고하도록 투자자의 의무를 담았다. 투자할 때 ESG 지표도 함께 평가하는 게 골자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거대 담론이 탄력을 받으면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도 트럼프 정부가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고, 2050년 탄소배출 넷 제로(Net Zero)’까지 발표했다.

국내 산업계에도 ESG는 새로운 변수다. 대기업들은 대부분 전담위원회를 설치했거나 관련 조직을 확대 개편했다. 이러한 흐름엔 우려와 기대가 엇갈린다. ESG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시민단체나 노동계의 시각이 많이 반영돼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도 있고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고 신뢰받는 기업문화를 조성한다는 기대도 있다.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사는 ESG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고, 2030년 이후엔 모든 상장사로 확대된다. 잘 작동된다면 쉽게 투자받는 착한 기업의 주가는 오르고 투자에서 외면 받는 기업의 주가는 하락할 것이다.

ESG가 탄력받자 미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2019년 재계 대표인 200대 기업의 CEO 협의체인 BRT는 기업의 목적에서 주주가치의 극대화라는 표현 대신에 고객과 종업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주주 모두를 위한 것으로 바꾸면서 주주가치를 맨 끝에 명시했다. 경영학 교재도 바뀔만한 이 선언의 실천은 그러나 아직은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진정성과 실효성이 논란이다. 그러나 흐름은 순조로워 보인다.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금융기관에서 ESG 평가 정보를 활용하면서 환경을 바꾸고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페이스북 등은 탄소중립을 발표했고, 삼성SDS, LG CNS, SKC&C 등 국내 IT기업도 ESG 경영을 시작했다. 은행권에선 대출 심사에서 ESG 요소를 고려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ESG는 경영의 틀을 바꾸는 새로운 변수인가, 열풍처럼 지나갈 조류인가? 어디까지 왔는가? 중소기업은 지금 혼란스럽다. 분명한 건 있다. 더 나은 환경과 세상을 만드는 사회적 책임과 윤리 경영을 실천할 때 시장과 우호적인 관계가 강화된다는 사실이다. ESG의 실천은 비용이 부담이지만 그게 대세다. 옳은 길이라면 먼저 가는 쪽이 유리하다. 소비자들의 환심을 사는 데에도 비용을 적게 들이는 방법이다. 중소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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