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후퇴하는 최저임금 제도 개선 공약
추경호 “실태조사·연구용역 우선”… 차등화 내년 논의
중소기업계, 현장상황 외면한 대선공약 불이행에 실망감
최저임금 인상률 속도조절 절실… 이대론 일자리 증발도 가속

소규모 사업장 직격탄… 특수한 업종 피해 심각
경기악화·코로나19 겹악재, 구분적용 초미 과제
추진 미뤄지면 폐업·고용축소·법 위반 불보듯

중소기업계 여건을 고려한 합리적인 개선에 방점을 찍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최저임금 공약(公約)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공약(空約·공허한 약속)으로 후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426일 인수위원회가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국정과제에 포함하지 않기로 하고,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도 차등적용 문제에 대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윤석열 정부에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노동계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인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지난달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올해 첫 전원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인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지난달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올해 첫 전원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후보시절에 줄기차게 강조해온 최저임금 차등적용 및 급격한 인상 문제를 해결할 합리적 개선의 약속을 저버린 것에 대해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한 제조 중소기업 대표는 결국 선거용 공약이 아니길 바란다경기악화와 코로나 여파로 여전히 인건비 부담이 심각한 중소기업계 상황을 뒷전으로 하고 노동계 반발만 의식하다 보면 중소기업이 무참히 무너지는 건 시간의 문제라고 호소했다.

 

정부 인건비 지원 올해 종료

경제계는 지난 45일 최저임금위원회 첫 회의 때만 해도 차등적용의 현실화에 기대감을 높였다.

이날 회의에선 내년도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이 화두에 올랐다.

현행 최저임금법 41항은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에 따라 차등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업종별 차등적용은 최저임금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면 개정할 수 있다실제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첫 해인 1988년에는 2개 업종 그룹을 설정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차등적용이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

노동계의 반발을 너무 의식한 탓도 컸다. 게다가 그동안 최저임금위원회가 구체적인 최저임금의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하기 보다는 매년 인상률에 대한 노사의 치열한 공방에만 집중된 문제도 있었다. 그나마 지난 2017년에는 노사 합의로 간신히 최저임금위원회가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차등적용에 대한 심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현실성이 없다는 노동계의 주장으로 부결됐다. 지난해에도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투표에서 찬성 11표에 반대 15(기권 1)로 부결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올해 최저임금 제도개선은 뒷전이 되고 최저임금 인상률만 두고 그 어느 때보다 노사가 치열한 격전에 돌입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그동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충격에 대해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하던 사업도 올해 종료될 예정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률 논쟁이라는 불에 기름을 붓게 될 전망이다.

중소기업계는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의가 국정과제 후순위로 밀린 것에 대해 심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당선인, 중기중앙회 찾아 약속

앞서 윤석열 당선인은 최저임금에 대해 중소기업계에 현실성 있는 개선을 약속해 왔다.

특히 지난해 107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와 중소기업인 대화에서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그리고 근로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문제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은 최저임금의 불합리한 결정 방식을 개선하고 중소기업의 경제적 여력과 임금 지불 능력, 경제 상황의 객관적 수치에 기초해서 최저임금이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여건을 만들겠다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지역별·업종별 차등 적용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시작돼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최저임금의 불합리한 결정 방식 개선과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은 윤 당선인의 대표적인 대선 공약이었다.

노동자의 상당수가 최저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업종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 업체들의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였다. 차등적용이 현실화되면 최저임금이 올랐을 때 업체들이 고용을 줄이는 경향을 완화해 노동자들에게도 오히려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의 부작용은 상당히 심각하게 나타났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319만명에 달하고 이는 전체 임금근로자 중 15.6%에 해당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노동경제학회는 최저임금 10% 인상 시 최대 348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최저임금이 중소기업계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폭등해 노동시장의 수용성이 떨어지는 건 어찌 보면 예견된 결과다.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최저임금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농림어업(54.8%), 숙박음식업(40.2%), 도소매(19.0%) 등 일부 업종에서 최저임금 미만율이 다른 업종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미만율이 가장 낮은 정보통신업(1.9%)과 농림어업 간의 최저임금 미만율 편차는 52.9%포인트에 달한다.

최저임금 인상의 타격이 특수한 업종에 집중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소기업계가 요구하는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해 올해 최저임금위원회가 충분히 심의를 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노동계, 구분적용 논의조차 기피

하지만 윤석열 새 정부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홍근·김주영·권성동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최저임금 업종별 등의 차등화는 필요하다고 전했다그 내용을 살펴보면 추 후보자는 최저임금 차등화 정책 도입을 위한 현실적 준비가 미흡하다면 소모적 논쟁을 계속하기보다는 조속히 충실한 기초연구·실태조사 등을 위한 연구용역 작업이라도 빨리 시작해 건설적 논의를 위한 기초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차등화 정책의 논의를 내년으로 미루는 꼴이 됐다.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한 정부 의지가 뒤로 밀리면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겪게 될 중소기업계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은 자명하다.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법적 근거가 있는 업종별 차등적용을 통해 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을 감안한 제도개선이 필요한 시기라며 올해도 최저임금 인상률 협상 이슈에만 함몰되지 말고 실질적인 차등적용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경제계에 뒤덮인 코로나 팬데믹 여파와 대내외 경기 여건을 고려해 심의하는 것이 맞는 구조다. 반면 법적 근거가 있는 업종별 구분 적용을 서둘러 기준을 정해 시행해야 한다는 중소기업계의 절박한 요구다.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노동계와 일부 공익위원들은 구분 적용에 대한 논의조차 기피했다수많은 중소기업이 법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라는 강력한 처벌이 있음에도 높은 비율로 최저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부 업종의 지불능력이 최저임금 수준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 말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공급됐던 유동성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이 예상되지만, 코로나와 최저임금 급등으로 취약해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기초체력으로는 이에 대응하기가 너무 버거운 상황이다.

인천에 있는 한 부품가공 중소기업 대표는 인건비 비중이 높고 경기침체에 취약한 중소기업인 걸 누구나 알면서도 정부가 안일한 최저임금 정책 의지를 보여준다면 결국 중소기업은 폐업·고용축소·법 위반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주변을 살펴보면 이제는 폐업의 길을 가는 곳이 수두룩하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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