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
반독점 규제로 단독인수 불가
인수하면 반도체 주도권 확보
삼성전자·애플도 참전 저울질

영국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ARM)’의 인수·합병(M&A)을 둘러싸고 세계 반도체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미국 종합반도체기업(IDM) 인텔에 이어 메모리 반도체 주력인 SK하이닉스까지 공동 인수론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이번 M&A의 특징은 반독점 규제로 인해 단독 인수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공동인수 형태로 인수할 경우 각 기업이 지분을 얼마나 확보하게 될지, 실제 경영권을 쥘 수 있을지 모든 게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ARM과 직·간접적으로 엮인 기업들은 어느 특정기업이 ARM을 단독으로 인수하면, 기존에 받던 로열티를 확 올리거나 경쟁사에는 ARM 설계도를 제공하지 않는 식으로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동 인수론이 불거진 배경이다. 왜 그럴까.

ARM은 일반적인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와 사업 모델이 다른 회사다. 반도체 IP를 팹리스나 IDM 등에 팔아 라이선스 수수료와 로열티(저작권료)를 받는 수익구조를 갖고 있다. 반도체 기업은 ARM이 그린 중앙처리장치(CPU),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기본 설계도를 받아 각자의 반도체 칩을 설계한다.

ARMIP는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 중요하다.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 엔비디아, 미디어텍 등 내로라하는 반도체 기업들이 ARMIP를 사용하고 있다. 세계 스마트폰의 95%ARM의 설계도를 활용하며, PC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도 ARM의 특허가 널리 쓰이고 있다.

ARM 인수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인텔, SK하이닉스 두 곳 외에도 삼성전자는 물론 미국 애플, 퀄컴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어떤 식으로든 인수전 참전을 노릴 거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회사들이 ARM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전 세계적으로 미래형 반도체 시장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시스템 반도체 아키텍처(구조방식)를 보유한 ARM과 주주 관계로 엮이는 게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미래반도체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세트(완성품) 업체의 주문대로 반도체(부품)를 만들어주는 부품 공급사 역할에 갇혀있었다면, 이제는 메모리 센트릭(Memory Centric) 컴퓨팅시대로의 전환을 준비 중이다. 메모리 센트릭 컴퓨팅은 정보통신기술(ICT) 기기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화두는 메모리에 AI 등 시스템 반도체를 결합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다.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에 연산 기능까지 추가한 하나의 시스템을 설계하려면, ARM의 시스템 반도체 아키텍처가 필요하다.

ARM의 소프트웨어를 흡수할 수 있다면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그게 실현 불가능하다면 지분 투자를 노려볼 수 있다.

현재 ARM의 대주주는 일본 이동통신사 소프트뱅크다. 2019년부터 매각설이 나왔고 2020년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 엔비디아에 매각하는 내용의 본계약까지 체결했으나 각국 규제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벽을 넘지 못해 올해 초 최종 무산됐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규제당국은 물론 퀄컴과 인텔, 중국 화웨이 등 기업들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ARM을 특정 업체가 인수하면 기술 제공에서 차별이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차례 매각 실패 후 대안으로 급부상한 게 ARM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분을 공동으로 나눠 갖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국가주의가 짙어지면서 반도체 기업을 사고파는 건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미래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이 이미 진행 중이다.

 

- 하제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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