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원(중소기업중앙회 前 상근부회장)
서승원(중소기업중앙회 前 상근부회장)

물가변동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 엄청나게 풀린 통화와 억눌렸던 내부적인 요인들이 분출되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외부적인 요인까지 겹쳐 물가관리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대통령은 물가를 포함한 민생 안정 대책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우선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의 인상을 억제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온바 있다.

중소기업, 특히 제조업의 경우 전기요금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전기요금의 추이에 중소기업인들의 촉각이 서있는 것은 당연하다. 제조원가대비 전력요금이 높은 열처리(26.3%) 등 뿌리기업과 섬유직물(12.2%)의 경우 전기료 부담증가 걱정이 심각하다.

그동안 중소기업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행 전기요금제도 개선이 필요함을 개진해 왔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도 정부와의 간담회 때마다 단골메뉴로 중소기업 전용 전기요금제도 도입 등 개선안을 제시했다. 중소기업계가 현행 전기요금제도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산업용과 가정용 전기요금 간의 불합리한 차별이다. 통계를 보면 2011년 이후 가정용은 전기요금이 하락하고 산업용 전기요금만 증가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에 비해 낮다는 사회적 비판을 수용한 결과다.

그러나 이 추세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주택용 전기는 2005110.82/kWh에서 2019104.95/kWh로 하락한 반면, 산업용 전기요금은 200560.25/kWh에서 2019106.56/kWh으로 76% 상승해 오히려 가격이 역전됐다. 산업용 전기는 고전압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가정용에 비해 전압을 낮추기 위한 변전설비를 필요로 하지 않고 따라서 그만큼 원가가 덜 드는데도 불구하고 판매가격은 오히려 높은 것이다.

산업용 전기는 제품의 원가에 반영되는 수치다. 그래서 각국은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산업용 전기를 싸게 하고 가정용 전기를 비싸게 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일본, 노르웨이, 스웨덴, 스페인, 스위스, 영국, 미국 등 OECD 평균은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 전기요금보다 낮고, 산업용 전기요금과 가정용 전기요금이 유사한 수준인 곳은 우리나라, 캐나다, 이태리 3개국뿐이다.

둘째 산업용 내부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부담하는 전기요금 부담률의 차이다. 한전이 2018년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의 전기요금에 비해 중소기업은 평균적으로 16%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고 하며 지난 5년간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11조원의 전기요금을 더 부담했다는 분석도 나온바 있다. 물론 대기업이 심야전력을 활용하고 ESS 등 제도를 통해 원가를 절감한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생산비용이 같고 ESS제도에 엄청난 보조금이 지급되는 점을 감안하면 중소기업이 과다한 지불을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에너지전환에 따른 비용이다. 독일의 경우 에너지전환에 따른 전력요금의 상승은 산업용에 부과하지 않고 가정용에 부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지난 2020년 말 도입된 연료비연동제에 따라 발전용 연료가 비싸지면 그만큼 전기요금을 올리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문제는 연료비연동제가 발전연료 종류의 변경으로 연료비가 증가하는 것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즉 전력생산단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자력과 석탄이 생산단가가 2-3배 높은 LNG로 바뀌면 생산비용이 증가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산업용이 더 많은 부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전체적인 전력운영체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보다 값싼 전기를 공급해주도록 크게 3가지의 제도개선사항을 요구하고 있다.

가정용보다 비싼 산업용전기

中企, 대기업 대비 11조 더 내

전력산업기반기금 유예해야

먼저, 전력수요가 높지 않은 토요일 낮 시간대에 가중해 부과하던 중부하요금을 경부하요금으로 낮춰달라는 주장이다. 토요일 최대부하가 평일 중간부하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요금을 중과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이 같은 제도는 지난 2015년 한시적으로 성공적으로 시행된바 있어 제도운영에 큰 부담은 주지 않으면서 중소기업 경영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전력예비율이 상대적으로 충분한 6월과 11월에 대해서는 봄/가을철 요금과 동일하게 적용해달라는 것이다. 6월과 11월 최대전력 수요가 3월이나 10월과 비슷한 수준이고 예비전력이 충분하므로 최대 30% 이상 저렴한 봄, 가을철 요금을 이 시기에도 적용하면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된다. 여기에 더해 중소 제조기업에 한해 전력산업기반기금의 부담을 국제경기가 안정될 때까지 만이라도 유예해 중소기업 부담을 경감시켜달라는 것이다.

한편, 전력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전기수요자인 기업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가정용 전력보다 중소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이 훨씬(4배 정도) 더 많기 때문에 당연히 소비자로서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행 전기사업법(47조의2)에서는 전력수급 및 전력산업기반조성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내에 전력정책심의회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 동 위원회의 위원자격은 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국토교통부 등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고위공무원과 전력산업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또는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사람 중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위촉하는 사람으로 돼 있다.

우선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인 고려를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위원에서 빠져 있다. 그리고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들은 쏙 빠지고 시민단체 관계자만 참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전기요금과 관련된 그동안의 정책, 특히 에너지전환정책을 수립하면서 소비자(가정용)의 부담은 줄이고 기업들(산업계)의 부담은 늘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관련 법령을 정비해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들의 입장이 정책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기업 또는 경제단체의 참여가 보장돼야 하며, 중소기업정책을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참여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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