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의 시기별 중소기업중앙회 발전사

1962. 우리나라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인 산업화의 시동을 걸었다. 바로 그해 514일에 중소기업중앙회가 설립됐고, 올해까지 60년 동안 한국경제의 주춧돌인 중소기업계를 대표할 뿐 아니라 정부의 시책을 펼치고, 중소기업계의 의견을 전달하는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소기업중앙회의 역사는 땀과 열정으로 온갖 역경을 헤쳐 온 한국경제의 역사, 그 자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말까지만 해도 12000개에 불과했던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은 1980년에는 48만개로 늘어났고, 현재는 무려 688만개에 달할 만큼 증가했다. 또한 중소기업계에 총 근로자수는 1744만명이나 된다.

중소기업은 전체 사업체 수의 99.9%, 고용의 82.7%를 차지하는 한국경제의 근간이자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다. 중소기업계의 치열한 노력과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보호정책이 만나 이뤄낸 역사적인 결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역동의 시기별 중소기업중앙회의 발전사를 살펴보는 것은 지난 60년의 대한민국을 다시 한 번 복기하는 것처럼 의미 있는 일이다.

 

중기중앙회 태동과 경제4단체 자립

먼저 중소기업중앙회의 태동과 자립은 1962~1970년에 이뤄졌다. 앞서 1961년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이 제정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중소기업중앙회 명칭) 창립의 발판이 마련됐다. 또한 중소기업 보호육성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성장가도를 향한 출발점이 됐다.

마침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발맞춰 중소기업중앙회가 창립되고 제1호 중소기업협동조합인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이어 중소기업중앙회는 정부 부처에 중소기업청 설립 등이 필요하다는 최초의 정책건의를 이어나갔다. 대한민국에서 한 번도 시행되지 않은 중소기업 기본실태조사도 이때 착수됐다.

1962년 태동, 정부-중소기업계 가교역 톡톡

1972경제4단체격상, 경제위기 탈출 한몫

단체수의계약제 법제화·공제사업기금 개시

87년 여의도시대 개막한강의 기적 견인차

이어 중소기업중앙회는 1회 기술지도강습회(1963) 1회 전국중소기업자대회(1964) 최초 중소기업 주간 설정(1964) 등 중소기업 자립을 위한 대외적인 위상 강화에 적극 나섰다.

1965년 비로소 중소기업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법에 기반한 사업들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우선업종 및 단체수의계약 품목지정도 이때 탄생했다. 무엇보다 중소기업계의 권익대변지인 중소기업뉴스의 모태인 일간 중소기업통보도 창간됐다.

1971~1980년은 중소기업중앙회가 경제4단체로의 자리매김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시기였다. 사실 6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3단체라는 용어만 있었고 국가 행사에 경제단체를 대표했다.

그러다가 1972년 중소기업중앙회를 포함한 경제4단체라는 용어가 구체적으로 사용되면서 위상이 한 단계 높아졌다. 마침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한 수출진흥회의가 경제4단체의 정립 배경이 됐다.

공교롭게도 1973년 제1차 석유파동, 19782차 석유파동이 연이어 터지면서 한국경제의 큰 위기를 경제4단체가 똘똘 뭉쳐 헤쳐 나가야 했던 중요한 시기였다.

특히 중소기업중앙회는 석유파동에 따른 대·중소기업 납품가격 문제가 불거지자, 1978년 처음으로 물가연동제도입의 필요성을 정부에 적극 건의했다.

이밖에도 70년대 중소기업중앙회는 첫 지방조직 설치(경북지부) 중소기업 수출입 대행사업 개시 4차 중소기업 국제회의(ISBC) 개최 등을 일궈냈다.

이 시기까지 계획적인 경제개발이 차근히 추진되면서 정부는 산업과 수출을 진흥시키고자 했다. 이로써 당시 산업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중소기업의 집중적인 육성을 위해 관련법 제정 등 각종 정책을 펼쳐나갔으며,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속화하는 사업들을 활발히 펼쳐 나갈 수 있었다.

 

中企의 도약으로 초고속 경제성장 기여

1981~1990년까지 중소기업중앙회는 한강의 기적과 함께한 도약하는 중소기업계를 보여줬다. 이 시기에는 자유주의 경제흐름에 의해 개방화와 탈규제가 급속도로 확산되던 때다. 한국경제 역시 개방화·규제완화·민영화라는 3대 패러다임 전환이 지속적으로 추진됐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러한 시대 흐름에 맞춰 각종 중소기업 보호 육성정책을 정부에 건의해 제도화의 결실을 맺었다. 1981년 단체수의계약제도의 법제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1984년에는 중소기업 공제기금사업이 개시되면서 금융지원의 직접적인 역할도 이어갔다. 1987년에는 여의도에 중소기업회관을 건립해 현재의 여의도 시대를 열어나갔다.

1988서울 올림픽이라는 세계대회를 개최하면서 국민소득은 5000달러를 달성했다. 대한민국의 달라진 위상과 경제성장을 두고 전 세계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감탄했다. 이 모든 원동력에는 중소기업중앙회를 주축으로 한 중소기업계의 숨은 땀방울이 있어 가능했던 결실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경제는 도전과 성장 그리고 위기극복의 복잡다단한 시대를 맞이한다. 먼저 1992년 중소기업중앙회의 500개 조합 회원사가 탄생한다. 이어 1993년에는 중소기업연구원을 개원해 체계적인 중소기업정책 연구가 시작됐다. 이어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제도 시행(1994) 여의도 중소기업 종합전시장 개장(1996) 등을 추진한다.

대한민국은 전반적으로 성장의 탄력을 받던 시기였다. 1995년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 및 WTO 가입에 이어 1996OECD 가입을 이뤄냈다. 그러다 199711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바로 중소기업이었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전국 주요 공단의 30%가 가동을 멈췄다. 그러나 중소기업중앙회와 중소기업계는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노력을 이어나갔다.

먼저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대책반을 구성해 중소기업 피해 대책 등을 강구해 나갔다. 이어 1998년 중소기업 창업지원센터를 개소했다. 그 다음해인 1999년에는 제조물책임(PL) 공제사업도 추진했다.

 

혁신 中企와 함께 세계로 진출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소기업중앙회는 대내외적으로 대변화를 시작한다. 산업화 시대에서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2001년 중소기업 정보화 사업을 추진한다. 2003년에는 중소기업 IT체험관을 오픈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특히 2001~2010년의 중소기업 정책은 혁신과 글로벌화그리고 상생과 동반성장으로 요약된다. 21세기의 경제흐름이 과거 자본집약형 산업에서 새로운 기술·지식집약형 산업으로 전환됨에 따라 정부는 200010중소기업 기술경쟁력 제고 5개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정부는 중소기업 기술혁신 계획을 발표하는데, 이는 글로벌 중소기업 육성과 R&D 투자의 효율성을 추진하는 내용이었다.

1997년 중소기업대책반 구성, IMF 위기 극복

경제3제시, ·中企 양극화 해소 단초 마련

코로나 위기 속 ‘5차례 대출만기 연장성과 도출

노란우산 재적가입 150만 돌파, 희망 100년 가속

중소기업 기술혁신과 글로벌화 촉진 정책에 발맞춰 중소기업중앙회는 2003년 무역투자지원센터를 설치해 세계시장 진출과 마케팅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여기에 기술개발 촉진 및 인력구조 고도화, 금융, 판로개척, 지식서비스 등을 총 망라하는 각종 지원정책을 지원했다.

이밖에도 중소기업중앙회는 대·중소기업 상생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며 법·제도의 중심 이슈로 키웠다. 그 결과 20063·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이 제정됐고 수차례에 걸쳐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동반성장이 추진됐다. 기업형슈퍼마켓(SSM) 규제강화법안이 201011월 개정돼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의 사업영역이 보호가 두터워지기도 했다. 특히 이 시기에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중앙회 명칭 변경(2006) 일반중소기업단체 가입 등 회원구조 개방(2006) 노란우산 출범(2007) 1회 중소기업 리더스포럼 개최 경제민주화 시동(납품단가 현실화 궐기대회·2008) 등 위상을 제고했다.

 

경제민주화중소기업시대를 열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는 중소기업의 르네상스 시대개막이라고 할 만큼 역동적이었고 실질적인 中企 중심의 경제구조 구축의 초석을 열었다는 평가다.

2011년 중소기업중앙회는 한국경제 성장을 위해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처음으로 공식화한다. 이어 경제3’(시장의 불균형, 거래의 불공정, 제도의 불합리)을 제시하면서 대·중소기업의 양극화 해결의 방향성을 열었다. 2021년에도 10년 동안 달라진 경제 상황을 고려해 다시 한 번 현장의 애로를 담은 경제3을 제안하며 공정하고 합리적인 법·제도 정비의 단초를 마련했다.

2013년에는 중소기업 규제 문제를 정책이슈화하는 손톱 밑 가시라는 용어를 탄생시켰고,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이 용어를 인용할만큼 정책 브랜드화에 성공했다.

이밖에도 중소기업중앙회는 홈앤쇼핑 오픈(2012) 가업승계제도 제도개선(2014) 1차 중소기업협동조합활성화 3개년 계획발표(2016) 개성공단 재가동 국제여론조성(하원방문·2019) 협동조합 지원 지방조례 최초 제정(2019) 등 중소기업 성장시대로의 대전환을 주도했다.

2020년은 코로나 팬데믹 위기 발발이 있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비상대책본부를 운영하며 발 빠르게 전국을 돌며 현장 애로를 발굴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정부에 총 5차례 대출만기 연장 결정을 이끌어냈다.

이밖에도 2020년에는 ·중기 납품단가 조정위원회 출범 한국노총과 공동 불공정센터 개소 중소기업 규제 해소(최저임금·52시간·중대재해법 등) 총력 기초지자체 협동조합 지원조례 첫 제정 등의 성과를 냈다.

2021년과 올해는 중소기업중앙회가 100년의 희망을 준비하는 중차대한 시기였다. 지난해는 사상 첫 협동조합 중소기업 지위 인정을 일궈냈고, 노란우산 재적가입 150만명 돌파의 신기원을 열었다. 또 중소기업 금융지원을 혁신하기 위해 인터넷 은행인 토스뱅크의 주주로 참였다. 올해는 제3中企협동조합활성화 3개년 계획을 발표하는 뜻깊은 해다. 이 계획에 기반해 중소기업협동조합 최초로 R&D협업 지원사업이 첫발을 내딛고 40개의 조합이 선정됐다.

이처럼 지난 60년간 중소기업중앙회는 한국경제의 중심에서 우리 중소기업의 보호와 육성정책 그리고 혁신과 글로벌화에 기여하는 당당한 경제단체로 위상을 견고히 해왔으면 앞으로도 그 숙명적인 역할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이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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