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이 채 끝나기도 전 상속세 징수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과세당국’, ‘노하우가 담긴 서류가방을 들고 국경을 넘는 기업인’. 지난 4월 방영한 <TV조선 특집다큐-100년 기업이 나라를 살린다>에 나온 과도한 기업승계 세부담을 풍자한 만화 중 하나다. 일반 국민에게 기업승계의 중요성을 이해시키기 위해 독일의 가족기업 정책재단에서 만든 것이다. 재단 관계자는 원활한 승계가 이뤄지지 못해 해외로 일자리와 기술이 넘어가게 되면, 우리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고 국가경제만 훼손시킨다며 기업승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긍정적 인식으로 기업승계 지원제도를 잘 갖춘 독일은 장수기업이 많기로 유명하다. 100년 기업이 만개가 넘고, 200년 된 기업도 1,500개가 넘는다. 그러나 우리는 100년 기업이 불과 10개로 독일의 0.1%도 채 되지 않는다. 짧은 산업화 역사 탓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기업승계 지원제도를 살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물론 우리도 중소기업의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가업상속공제제도와 증여세 과세특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제도라는 게 중소기업들의 일반적 평가이다.

일반 상속·증여와 기업승계를 동일시해 승계 전후로 각종 까다로운 요건을 요구하는 탓에 기업들이 제대로 제도를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혁신과 성장을 위한 업종변경도, 자산처분도 제한되고, 회사가 어려워지더라도 고용은 똑같이 유지해야 하는 요건들이다.

업종, 자산처분 등의 제한 없이 기업승계제도를 운영하는 독일은 연간 제도 활용건수가 만 건이 넘는 반면, 우리는 고작 93건으로 독일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원활한 기업승계를 위한 제도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중소 제조업 대표자 연령이 60세 이상인 경우가 35%에 달하고 있다. 중소기업 대표자 3명 중 1명은 승계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혹자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소기업을 맡으려는 전문경영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자녀를 통한 승계가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각종 요건 없이 기업승계를 활용토록 하는 독일, 기업승계시 실질적인 세부담이 0에 가깝게 징수를 유예하는 일본처럼 우리도 업종제한이나 자산처분, 최대주주 지분율 등 복잡한 요건들을 걷어내고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지난 22일 방송된 <TV조선 특집 토크쇼-대한민국의 힘! 100년 기업으로 가는 길>에 출연한 곽수근 서울대 교수의 발언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곽교수는 현대자동차와 도요타의 경쟁은 개별 대기업 간의 경쟁을 넘어 수천개의 협력기업이 있는 생태계 간의 경쟁이다. 경쟁력의 원천인 협력기업의 존속과 성장을 위한 기업승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원활한 기업승계를 주요 국정과제로 발표했고 최근 중소기업계와 만난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전향적인 제도개선을 약속하면서 중소기업계가 거는 기대가 크다. 중소기업이 수십년간 책임져온 기술력과 일자리가 폐업으로 소멸되는, 기업이 국경을 넘는 상황이 없도록, 올해가 100년 기업 육성의 제도적 토대를 만드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