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보면 형식과 내용이 균형을 잡지 못하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형식에 중점을 두어 업무를 처리하지만, 그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형식은 고정적이지만 내용은 동적이라서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그래서 내용이 바뀌면 본래의 형식과 맞지 않아 새로운 형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매년 중소기업협동조합들의 정기총회가 종료되고 나면 본격적인 감사시즌에 들어간다. 정기 감사는 회계와 조합원 관리,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정관과의 정합성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회계 처리나 조합원 관리와 같은 행정 처리는 형식적 요건에 맞추면 실효성이 확보된다. 하지만 이사장이나 대의원 같은 조합 대표자를 선출하는 의사결정의 경우에는 사안에 따라 고민스럽다.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은 중소기업협동조합뿐만 아니라 어느 집단에서나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다.

그래서 관련법과 정관은 선거권과 선거에 대해서는 절차와 형식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대의원회의 구성, 대리인의 자격과 의결 정족수, 그리고 현장출석 요건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구성원들이 합의한 절차적 요건을 충실히 지키면 선거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확보된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 절차나 형식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원천 무효가 될 수 있어 매우 조심해야 한다. 절차적 하자를 발견하면 대소를 따지지 않고 엄격하고 융통성 없이 처리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조합대표 선출시 형식 강조

절차적 하자땐 형평성 훼손

일관성 유지해야 갈등 봉합

조합의 자율성이나 전후 사정, 이미 끝난 선거 절차를 다시 시행하는데 따르는 물적 혹은 인적 비용을 따져보면 처분하는 입장에서도 답답할 때가 있다. 특히 민원에 의한 것이 아닌 정기 감사에서 절차적 하자를 인지하는 경우에는 난감하다.

수십 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중소기업중앙회가 감사에서 절차적 하자를 지적하며 선출의 효력을 부인하니 조합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일 것이다. 구성원 전체가 자율적으로 동의해 선출한 것인데, 문구에 얽매여 그 결과를 부정하는 것은 지나친 형식 논리라는 주장이다. 내용의 진실성을 보지 않고 형식만 보고 판단한다는 비판을 반박하기가 쉽지는 않다.

감사시 형식과 내용을 고민을 하면서도 재량이나 달리 해석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형식이라는 답답한 요건에 얽매여 결론을 내야하는 입장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에서 미련스럽게 형식을 고집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우선, 업무의 지속성과 예측가능성이다. 선출의 절차적 하자의 경우에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는 것은 조합마다 인지하고 있다. 사례별로 정황이나 무효에 따르는 불이익과 같은 정성적 요건에 맞추어 처분하기에는 형평성이라는 또 다른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처분에 따른 불편함이 큰 만큼, 형평성에 대한 예민도는 높아지고 결과에 대한 수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 업무 편의적이라고 비난 받을 수 있겠지만 개개의 사정을 고려해서 달리 처분하는 것 보다는 답답해도 형평성을 지키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판단이다.

다른 하나는 계속되는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민원에 의해 문제가 불거진 경우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객관적 형식이 가이드라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수십 년의 일관된 사례와 관례를 케이스별로 다르게 적용하면 분쟁이 끝나지 않고 계속될 개연성이 있다. 처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추가적인 갈등 없이 봉합한다.

감사에서도 형식보다는 그 내용의 진실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은 공감한다. 다만 현실에서 내용의 진실성을 확인할 수단과 방법이 한정돼 있어 형식에 맞춰 결론을 도출해야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내용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 형식은 바꿔야 한다. 온라인과 비대면이 확산되는 시대다. 이에 맞춰 중소기업중앙회도 조합의 대표자 선출시 전자투표제나 대리인 자격의 다양화 등 형식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만시지탄이나 다행이다.

 

장경순
중소기업중앙회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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