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최근 저승사자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들이 방송된 바 있다. 초월적인 힘으로 죽음을 매개하는 이들은 사람을 죽음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때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그런데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 저승사자에게도 업무 착오가 있다. 조선에 박 참봉이 있었다. 중병을 앓아 정신이 혼미한데 어느 날 큰 소리로 저승사자가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 했다. 집 밖으로 나가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해 뒤를 쫓아가니 몇 개의 문을 열고 닫아 저승에 당도했다. 가운데 앉은 판관이 네가 박영래냐라고 묻자 박 참봉은 저는 박경래입니다라고 했고 판관은 살생부를 뒤적이더니 놀라면서 저승사자를 혼내었다. “이놈 박영래를 데려오라 했더니 박경래를 끌고 왔구나. 이 자는 한참 뒤에나 올 사람이니 다시 데리고 가거라”. 저승사자는 박 참봉을 데리고 나와 다시 집으로 보내 주었다. 무사히 집에 온 박 참봉이 아들에게 박영래라는 사람을 찾아보게 했더니 산 너머 마을에 살고 있는데 박 참봉이 다시 살아난 날 죽었다 했다. 같은 마을에선 비슷한 이름을 짓지 말라고 하고, 저승에서 살아 돌아오면 발자국을 쓸어 그 흔적을 없앤다는 민간의 이야기가 구전되는 걸 보면 저승사자의 착오는 생각보다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착오란 내심의 의사와 실제로 표시되는 의사가 일치하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의사표시를 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연대채무가 단순보증채무와 같은 것이라고 오해해 연대채무자가 될 것을 승낙하거나, 10만원이라고 써야 할 것을 100만원이라고 써 버린 오기도 착오의 일종이다. 착오가 있었다고 해서 그러한 의사표시를 모두 없었던 일로 하는 것도 사회의 안정을 깨는 것이지만, 잘못된 의사표시를 그대로 유효하다고 하는 것도 지나치게 가혹하다. 그래서 민법은 일정한 경우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법원은 그 요건을 일반인이 그와 같은 입장에 섰다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을 거라 여겨질 정도로 그 착오가 중요한 부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자조달 입력착오 구제 가능

개찰전 취소신청시 무효처리

이유있는 착오 보호수단 마련

착오는 개인간 거래관계뿐만 아니라 기업과 기업간의 관계, 정부와 기업이 당사자가 되는 공공조달 입찰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가 된다. 특히 조달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업체의 참여 비용을 절감한다는 이유에서 전자입찰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우리나라는 200011월 미국, 싱가포르, 홍콩에 이어 4번째로 정부조달 전자입찰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전자입찰에도 순기능과 함께 나름의 문제가 존재했고 도입 초기에는 해킹과 대리입력을 통해 입찰질서를 해치는 일도 발생했다. 무엇보다 전자입찰의 과제 중 하나로 지적된 것은 가격의 입력 착오였다. 수기입찰의 경우 입찰가격을 잘못 기재한 입찰서를 제출하더라도 개찰시 착오를 인지하고 입찰현장에서 취소 의사를 표시하면 낙찰로 인정되는 결과를 면할 수 있었지만, 전자입찰 도입 당시에는 한번 가격을 잘못 입력하면 낙찰을 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업체가 가격을 잘못 입력해 낙찰을 받은 경우 투찰한 금액으로는 도저히 계약을 이행할 수 없어 계약을 포기하게 되고 결국에는 정당한 이유없는 계약 미체결을 사유로 입찰참가자격제한 처분을 받는 사례가 빈번했다.

그러자 전자조달의이용및촉진에관한법령에 입력 착오에 대한 구제 수단이 마련된다. 원칙적으로 입찰자가 제출한 전자입찰서는 교환, 변경 또는 취소할 수 없지만, 입찰금액 등 중요부분의 기재 오류를 이유로 입찰자가 개찰 전까지 입찰 취소를 신청하면 당해 입찰서를 무효처리토록 하는 규정이 마련된 것이다. 법원도 입찰금액을 착오로 기재한 사실을 낙찰자 결정 후 인지하고 계약체결을 포기한 업체에게 부과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에 대해, 입찰금액에 큰 차이가 있고 계약의 공정성과 적정성을 해친다고 볼 수 없는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기계적인 처분 부과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속속 내리고 있다. 정당한 이유 있는 착오에는 보호 수단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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