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근(중소기업중앙회 공정경제위원장·변호사)
김남근(중소기업중앙회 공정경제위원장·변호사)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위해 모처럼 여야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에 대해 대기업을 대변하는 전경련 등이 반대하고 있는데, 반대논리를 면밀히 분석해 그 타당성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법률에 의해 가격을 통제하는 반시장적 정책이라는 주장이 있다. 현재 추진 중인 납품단가 연동제 입법은 납품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원자재 가격이 상당히(, 10% 이상) 인상될 경우 그 비중과 인상률에 비례해 납품대금이 인상되는 근거조항을 납품계약서에 두도록 하는 것이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는데도 납품단가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중소기업에 지나치게 불공정한 거래관계의 지속을 요구하는 것으로 공정하게 납품단가를 바로잡는 것이 납품단가 연동제다.

민법과 주택(상가)임대차보호법에 있는 차임(임대료)증감청구권, 고용계약 해지권,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대금 조정(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 등이 이와 같이 계약체결 이후의 사정변경에 따라 경제적 약자가 요구해 계약조건을 변경시킬 수 입법들이다.

전경련은 원자재가격이 상승하면 정부가 법에 정한 가격으로 납품대금을 인상하도록 대기업을 통제하는 것처럼 비난하고 있으나, 추진 중인 납품단가 연동제는 기본적으로 납품거래 계약의 틀 내에서 계약으로 정한 조건과 기준에 따라 납품단가를 변경하는 것일 뿐이다.

다음으로, 계약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으로 계약자유의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매매와 같은 단발성 계약과 납품거래와 같은 장기적 계속적 거래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단발성 계약은 계약체결 시에 계약 내용이 모두 완성되고 뒤에 이행의 문제만이 남지만, 장기 계속적 계약은 기본계약에서는 단가 등 기초적인 내용만 정하고 장래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조건에 대해서는 상호 협의·보충해 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대기업 통제 주장은 논리비약

계약자유의 원칙 위배도 억지

원가 상승분 분담이 헌법 부합

금융, 고용, 납품거래, 국제거래 등 현대의 장기 계속적 계약에 대해서는 관계적 계약이론이 발전하고 있다. 관계적 계약에서 계약당사자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계약관계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 상호 협력해야 할 지위에 있다.

미국의 증권관계위원회(SEC)가 보급하는 표준계약서에는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연동제를 규정하고 있고 대·중소기업간 부품·소재 납품거래에 사용되고 있다. Global Standard를 지향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주기별, 분기별, 협력사 요청시 이러한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연동제를 운영하고 있다.

나아가, 납품단가 연동제가 궁극적으로 최종 소비자가격을 올려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비판도 있다. 소비자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부품·소재의 납품가격만이 아니라 대기업의 인건비, 물류비, 경비 등 다양한 요소가 있다.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을 중소기업만이 아니라 대기업, 소비자 등 여러 경제주체 분담하는 것이 헌법 제119조 제2항의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라는 헌법이념에 부합하는 것이다.

또한, 중소기업들이 혁신과 거래처 다변화 등 원자재가격이 급등에 대응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는 비판도 있다. 기술개발과 생산력 향상을 위한 투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수준의 납품단가가 필수적이다.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가 부품결함으로 인한 리콜 사태로 시장에서 신뢰를 크게 잃은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불공한 납품단가로 건전한 납품거래 생태계가 파괴되면 대기업도 제품의 불량, 품질 저하 등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오히려 원자재가격 폭등 등 경제위기 상황마다 그 부담을 중소기업에 전가하는 관행이 중소기업의 기술(일터)혁신에 투자할 여력을 상실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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