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석 딜리셔스 공동대표
장홍석 딜리셔스 공동대표

매일 나오는 신상! 확인하러 자주 시장 가기 힘드셨죠?” “인기상품! 오프시간에 맞춰 전화주문하기 힘드셨죠?” “매장 전화번호! 매번 관리실을 통해 확인하시기 힘드셨죠?” 느낌표와 물음표가 가득한 전단지였다. 빨간 바탕에 하얀 글씨로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딜리셔스 직원들은 촌스럽다면 촌스럽고 생경하다면 생경한 광고 전단지를 동대문 일대에 뿌리고 다녔다. 딜리셔스는 동대문 패션산업에 디지털 혁신을 일으킨 물류 플랫폼이다. 시작은 전단지였다. 딜리셔스가 중국집 배달 광고를 연상시키는 전단지 소통을 선택한 건 동대문의 도매상인과 소매상인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동대문의 아날로그 오프라인 패션 시장을 온라인 디지털화하기 위해선 우선 오프라인 아날로그 시장의 문법에 맞춰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느낌표 가득하고 물음표 그득한 문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딜리셔스가 도매상인과 소매상인들의 불편함을 편리함으로 바꿔주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는 회사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게 중요했다. 디지털로 동대문 바닥을 좀 아는 척 하는 낯선 젊은이들처럼 보여선 안 됐다. 딜리셔스는 전단지 1만장을 뿌렸다. 조금씩 동대문 패션 바닥에 딜리셔스를 알려 나갔다.


패션정보 비대칭 해소 견인

딜리셔스의 핵심 서비스는 신상마켓이다. 누적 거래액이 2조원에 달하는 디지털 패션 플랫폼이지만 사실 일반 소비자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동대문 패션 타운에서 주로 사용되는 B2B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대신 신상마켓은 동대문에선 필수제다. 12000명의 도매상과 12만명의 소매상이 이용한다. 그래서 신상마켓의 별명은 동대문 카카오톡이다.

동대문은 15조원 규모의 패션 시장이다. 무엇보다 동대문 DDP를 중심으로 반경 10킬로미터 안에 패션 제조에 필요한 모든 것이 모여 있다. 원단과 부자재부터 디자인과 봉제에서 판매와 유통까지 패션 커머스의 AZ가 모두 이뤄진다.

SPA브랜드들은 디자인부터 생산에서 소매판매까지 3주가 걸려서 패스트 패션이라고 정의된다. 동대문 패션은 3일이 걸린다. 동대문은 전 세계에서도 유사한 구조를 찾아보기 어려운 집약적 패션 제조 클러스터다. 역사적 시작은 190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옷감을 파는 광장 시장이 시초였다. 당시엔 가가호호 집에서 옷을 지어 입었다. 옷 시장이라고 하면 당연히 원단 시장이었다.

광장 시장은 지금도 동대문 패션 클러스트의 일부다. 20세기 중반 이후 이른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기성복 시장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패션은 언제나 개성만점인 시장이다. 유행은 수시로 바뀐다. 동대문 패션 시장은 수시로 바뀌는 유행을 따라잡기 위해 3일 생산이라는 초광속 패션 유통 시스템을 내부적으로 발달시켰다.

문제는 오프라인 기반으로 이뤄지는 동대문 패션 시장의 생산 방식에는 손품과 발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동대문 패션 시장은 크게 도매상과 소매상으로 나뉜다. 패션 회사로 비유하면 소매상은 마케터다. 도매상은 디자이너다. 소매상은 소비자와의 접점 역할을 한다. 트렌드를 센싱하고 신제품을 발주하고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한다.

도매상은 생산의 중추 역할을 한다. 상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생산한다. 동대문 패션 시장의 강점은 도매상과 소매상이 반경 10킬로미터 안에 밀집돼 있다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거대한 시장 안에서 도매상들과 소매상들이 수시로 연결되기는 쉽지가 않다. 소매상들은 도매상들이 생산하는 제품들을 일일이 발품을 팔아가면서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아무리 부지런해도 모든 걸 다 돌아보긴 어렵다. 도매상들은 무수한 소매상들을 관리하기도 어렵다. 바로 여기에 딜리셔스가 발견한 고객의 페인포인트가 있었다. 신상마켓은 거기에서 탄생했다.

앱 열면 언제든 도매상 신상품 확인, 도소매 거래 혁신

포장·배송까지 확대동대문시장 5일제자리매김

하반기 시장 진출, 현지 소매상·동대문 도매상 연결

이제 동대문 12만 소매상들은 힘들게 새벽 도매 시장에 가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언제든지 동대문 신상을 구경할 수 있다. 신상마켓에 동대문 12000곳의 도매상들이 다 모여 있기 때문이다. 전체 동대문 도매상인들의 80%에 해당된다. 딜리셔스는 신상마켓으로 동대문 패션 클러스트 안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해줬다.

이젠 앱을 켜면 언제든지 오늘 나온 도매상의 신상들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래스 신상마켓이다. 정보 비대칭만 해소해준 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비용도 줄여줬다. 도매상과 소매상 사이를 오가던 주문서며 견적서며 영수증 같은 문서부터 전화를 통하던 거래 방식까지 단순화시키고 디지털화시켰다.

사실 동대문에서 신상마켓이 하는 일을 기업 안에서 대신하는 플랫폼이 슬랙 같은 디지털 협업툴이다. 오프라인 회의를 통해서 논의되고 서류 결제를 통해 진행되던 일들을 단순화시켰다. 최근 슬랙을 인수한 세일즈포스는 회사 안에서뿐만 아니라 회사 밖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결해줘서 유니콘이 됐다.


B2B 고수로 소매상 이탈 방지

세일즈포스는 이걸 기업의 소통 사일로를 해소해주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사일로는 곡식 저장 창고를 말한다. 경영용어로서 사일로란 특정 부서가 자기네들 먹을 곡식만 쌓아놓고 주변 부서와 협업을 하지 않는 팀별 이기주의를 뜻한다. 동대문은 하나의 거대한 패션 회사였지만 정작 내부적 소통에 비용과 효율이 떨어지고 있었다. 딜리셔스는 신상마켓으로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줬다.

일반 전단지로 소통을 시작했다는 건 딜리셔스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사실 딜리셔스 말고도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 안의 물류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 경쟁사들은 없지 않았다. 정작 다소 폐쇄적인 동대문 도매소매상인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아무리 편리해도 원래 하던대로 하는 게 사람이다. 작든 크든 변화 역시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딜리셔스가 동대문의 문법을 존중하는 부분은 전단지 뿐만이 아니다. 신상마켓은 자칫 동대문 소매상들과의 경쟁 플랫폼이 될 수도 있었다. 이젠 동대문 소매상들도 인스타그램으로 홍보하고 인터넷 쇼핑몰과 모바일 앱으로 판매한다. 만일 신상마켓에 올라온 신상들을 일반 소비자들도 살 수 있게 되면 경쟁과 마찰이 일어난다. 소매가가 도매가보다 2배 가까이 비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대문 소매상들이 신상마켓을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면 이탈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딜리셔스는 이런 D2C와는 거리를 뒀다. 철저하게 B2B를 고수했다. 이용자가 신상마켓을 이용하려면 소매상 사업자 인증을 받도록 허들을 높였다.

 

동대문 풀필먼트 서비스 구축

이제 딜리셔스는 동대문의 도소매의 거래를 연결해줄 뿐만 아니라 물류유통까지 책임지고 있다. 신상마켓이 활성화되자 소매상들은 아예 딜리셔스가 고객에게 제품을 배송해주는 것까지 맡아주기를 원하게 됐다. 풀필먼트 시스템을 동대문에 도입해주길 원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전단지를 돌려서 디지털 전환을 설득해야 했던 동대문의 분위기가 뒤바뀐 순간이었다. 딜리셔스는 딜리버드라는 동대문 풀필먼트 서비스를 만들었다. 4000평 규모의 거대한 물류센터를 통해 동대문의 물류유통을 책임지게 됐다.

이제 동대문 소매상들은 새벽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발품을 파는 대신 신상마켓에서 고객에게 팔 신제품을 고른다. 고객의 주문이 들어오면 딜리버드한테 포장과 배송을 맡긴다. 신상마켓과 딜리버드는 이제 동대문에선 없어서는 안 되는 플랫폼이 됐다.

딜리셔스 덕분에 동대문은 주6일제 시장에서 주5일제 시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새벽부터 밤까지 매장 문을 열지 않아도 충분히 매출을 일으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신상마켓 덕분에 워라밸을 되찾았다는 상인들이 생겨날 정도다.

딜리셔스는 김준호 대표가 창업한 회사다. 전단지를 돌리면서 동대문의 밑바닥에서부터 8년만에 딜리셔스의 신상마켓 서비스를 키워냈다. 딜리셔스의 공동대표는 네이버와 쿠팡을 거친 장홍석 대표다. 쿠팡에 제이커브를 그리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했다. 딜리셔스가 신상마켓에서 딜리버드로 확장하는데 역할을 했다.

딜리셔스는 2022년 하반기부턴 일본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일본엔 동대문 패션 시장 같은 도소매 클러스터가 없다. 소비자도 있고 소매상도 있는데 도매상이 없다는 말이다. 딜리셔스는 일본의 소매상들을 동대문 도매상들과 연결하려고 한다. 구조는 국제적이지만 원리는 동대문 안에서와 다르지 않다. 소매상들의 주문을 도매상과 연결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한류는 딜리셔스한텐 기회다. 일본 MZ소비자들도 한국 패션에 대한 관심이 크다.

딜리셔스의 2021년 거래액은 5723억원이다. 연간 15조원 정도로 추산되는 동대문 패션 시장 크기에 비하면 아직 시장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지만 딜리셔스는 동대문의 디지털화를 이끌면서 동대문 시장 그 자체가 돼 가고 있다. 동대문 카카오톡이라는 별명이 모든 걸 말해준다.

카톡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 필수제가 됐든 신상마켓도 동대문 상인들의 일상에서 필수제가 됐다.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가르치려고 들기보단 소비자가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질문과 공감의 승리다. 물음표와 느낌표의 힘이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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