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김태완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대신 하징서는 자기 집에 놀러 와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제나라 임금 영공을 시해한다. 이 소식을 들은 초나라 장왕은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의 수도를 공략하고 하징서를 죽이고 내친 김에 진나라의 땅 일부를 초나라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 사람들은 장왕을 칭송했고 장왕은 우쭐했다. 이 때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던 대신 신숙시가 돌아왔고 다녀 온 바에 대한 보고만하고 물러나려고 했다. 불쾌해진 장왕은 하징서가 무도하게도 제나라 임금 영공을 시해했기 때문에 과인이 그를 죽였다. 모든 이들이 칭송을 하고 있는데 그대는 왜 아무 말이 없는가라고 물었다.

신숙시는 임금을 시해한 자를 처단하신 전하의 의리는 대단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소가 내 밭을 짓밟았다고 해서 그 소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임금을 시해한 죄인을 처벌하신 전하의 의리는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남의 땅까지 탐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장왕은 신숙시의 충언을 받아들여 빼앗은 땅을 진나라에 돌려줬다.

여기서 하징서를 처단하는 것을 넘어 진나라를 범한 것은 죄에 비해 처벌이 지나치다는 혜전탈우의 고사가 나왔다. 죄에 비해 처벌이 지나치다는 것은 엄벌주의와 맥락을 같이한다. 다른 대체 규제 없이 일률적으로 모든 공공조달에의 입찰참가를 제한했던 과거의 부정당업자 제재에도 흔히 적용됐던 이해다.

국가계약법령에 규정된 20여 개의 부정당업자 제재사유 중 어느 하나에만 해당해도 최대 2년 동안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을 망라한 모든 공공조달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은 조달 비중이 많은 기업에 있어 경영활동을 접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위반행위의 경중을 묻지 않고 대체 규제 없이 입찰참여와 계약체결을 금지하는 것으로 기업에게 과도한 불이익을 준다는 비판이 계속됐던 것이다.

부정당업자 제재 경중 따져야

기업 봐주기시선에 시행 미미

제도 자체 모르는 기업도 다수

아이러니하게 정부에게도 독점공급자인 기업의 부정당업자 제재 시에는 적기 조달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공존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부정당행위의 위반 정도가 경미하거나 해당기업 외에 대체 조달기업이 없는 경우에는 입찰참가자격제한을 대신해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게 된다. 이른바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갈음하는 과징금부과 제도이고, 국가계약법령 개정을 통해 2013619일부터 시행됐다.

그런데, 과징금 대체 부과제도의 설계 당시 책임이 경미한 경우의 인정기준을 천재지변, 국내외의 급격한 경제여건 변화와 같이 매우 엄격한 사유로 설정했고, 처분청인 발주기관이 기재부나 행안부의 심의위원회를 거쳐 과징금 대체 부과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2단계의 업무구조를 만들면서 신설 제도의 활용은 미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과징금 대체 부과의 첫 사례는 시행일로부터 7개월이 경과한 2014123일에 나왔다. 정부가 제도 활성화를 위해 책임 경미의 해당사유를 늘리고 심의절차를 신속히 하는 한편, 일선 계약담당공무원들의 참고를 위한 업무가이드를 배포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공공기관을 포함한 수백여 개의 발주기관들이 매주 또는 매월 부정당업자 제재를 하는 상황에서 과징금 대체부과 사례가 2020년 기준 35건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점진적인 증가 추세라는 기재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제도 활용이 여전히 미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일선 자문현장에서 체감하는 문제는 많은 기업들이 입찰참가자격제한 대신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있고, 계약담당공무원은 과징금 대체 부과가 기업 봐주기로 오인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뒤 늦게 기업이 과징금 대체 부과를 호소하고 적절한 선례를 제시해 과징금 대체 부과가 결정되자 마치 처분 자체를 면한 것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여러 사례에서 목격하게 된다.

중국의 고사 혜전탈우에 담긴 의미는 죄에 대한 처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라는 것이다. 더욱이 수요기관의 현장 요구에 따른 규격의 변경 등과 같이 기업의 잘못이 실제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있는 사안이라면 잘 활용하라고 만들어 놓은 제도를 기피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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